본격적인 겨울을 맞이하는 12월의 초입, 전시를 앞두고 모습의 두 작가와 서면으로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오랜만에 선보이는 한국에서의 전시, 모습의 마음을 담은 작업과 제주 일상에 대한 이야기까지 흥미로웠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모습의 선경, 승민 작가님. 핸들위드케어에서는 이번 전시로 처음 인사드립니다. 모습의 소개를 부탁드려요.A. 모습은 세라믹 피겨린Ceramic Figurine을 창작합니다. 선경, 승민 두 작가가 함께 만들어요. ‘모습’은 像, Figure를 뜻하면서 무덤덤한 어감의 한글 이름이라 마음에 들었어요. 모습의 작품을 구매하면 작은 리플렛을 함께 받게 되실 텐데요, 거기엔 아래와 같은 글이 적혀 있어요. ‘세상의 작은 존재, 소소하면서 여린 것들의 이미지를 담습니다. 이것들은 우리 곁의 생명들과 자연이기도 하고 일상의 구석으로 치워버린 환상이나 오랜 과거이기도 합니다.’ 이 글이 저희의 작업 지향점을 잘 표현하는 두 문장이라고 생각해요. Q. 두 작가님은 현재 제주도에서 생활하고 계시지요. 자연을 곁에 두고 묵묵하고 고요하게 작업을 이어가는 작업실 풍경을 상상해 봅니다. 두 분의 일상은 어떻게 흘러가나요?A. 제주에서도 이곳 중산간 지역은 비바람이 많고 겨울은 몹시 추워요. 아름다우면서 혹독한 곳이죠. 그래서 자연 가까이 살고 있지만 생각만큼 즐기면서 지내지 못하고 있어요. 해 질 녘에 동네 산책을 하는 정도랄까요? 요새처럼 모습의 일이 많을 땐 다른 일상이 사라져 버려요. 집과 작업실이 분리되지 않은 탓도 있지요. 그림과 음악, 모습 작업, 생활에 균형을 맞추어 살고 싶지만 다짐만으로는 잘되지 않아서 의도적으로 시간을 배분하려고 노력 중입니다. Q. 모습은 세밀한 핸드 페인팅이 그려진 도자 오브제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모습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표현의 주된 방식으로 도예를 선택하게 된 건 자연스러운 일이었는지도 궁금합니다.A. 처음 시작할 무렵엔 저희 둘 다 그림책 일을 하고 있었고 도예에 대해선 아무것도 몰랐죠. 헌책방에서 우연히 사게 된 슬립 캐스팅 기법에 관한 원서를 보고 ‘어 이거 재밌겠다!’ 하고 가볍게 시작했어요. 유약 비중도 맞출 줄 모르면서 빈틈없이 가마를 채우고 망치는 참으로 무모한 시절이었죠. 무엇이 좋은 작품인지 알지 못했기 때문에 좌절하지도 않았어요. 핸드 페인팅 작업으로 완성도 있는 조형 작품을 만드는 과정은 무척 까다로워요. 이렇게 지난한 일인 줄 미리 알았다면 도중에 포기했을 거예요. Q. 《Silently》는 오랜만에 서울에서 여는 전시입니다. 국내 전시를 진행한 지 5년이 지난 만큼 모습의 신작을 손꼽아 기다려온 분들이 많으실 텐데요. 이번 전시에서 작가님의 시선으로 포착한 작고 여린 존재는 무엇인가요? A. 2024년은 누군가 돌봐야 하는 일이 많은 한 해였어요. 얼마 전엔 가까운 가족을 떠나보내기도 했습니다. 한동안 작업에 몰두할 수 없었어요. 건강하던 사람이 얼마나 순식간에 사그라들 수 있는지 실감한 한 해였죠. 작고 여리기는 인간도 예외가 아니지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메멘토 모리> 작업은 조금은 어둡고 삐뚤어지고 싶던 올해의 ‘모습’을 상징하는 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메멘토 모리를 주제로 한 여러 신작엔 안톤체홉의 단편소설 ‘공포’의 인물들도 등장해요. 불가해한 삶과 나이 듦, 두려움, 죽음. 여러 감정을 이번 작품에 담았습니다. 여성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생물이 함께 있는 작품들도 있습니다. 자신에게 주어진 삶의 무게를 마주하고 기꺼이 견디는 모습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이 외에 모습이 만들어온 사람과 동물들, 신화적인 이야기들, 상처와 생명력에 대한 새로운 작품들도 보실 수 있을 거예요. 핸들위드케어의 전시 공간은 독특하죠. 원목 가구와 선반은 아름답지만, 그 자체로 존재감이 커요. 이곳에서 작품을 어떻게 보여줘야 할지 고민이 많았어요. 잘못하면 그저 작품의 나열로 보일 것 같아서요. 이번 전시엔 핸들위드케어 공간과 가구 각각의 느낌과 어울릴만한 작품들을 6~7개 파트로 나누어 준비했어요. <메멘토 모리> 신작은 검은색 3단 진열장에 놓을 예정이에요. 각 원목 가구와 매혹적으로 어우러질 모습의 작품이 기대됩니다. Q. 모습의 작품을 들여다보면 실제 동물의 외형을 빼닮은 섬세한 굴곡과, 그 작은 피겨에 새겨진 세밀한 표정 하나하나에 감탄하게 됩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에 약 한 달의 시간이 소요된다고요. 핸드 페인팅 등 작업 과정과 관련해서 이야기해 주실 수 있을까요? A. 모습의 작품엔 그림, 조소, 도예 세 가지 장르가 고루 혼합되어 있어요. 입체 형상에 페인팅해 자기로 구워내는 거죠. 핸드 페인팅 안료는 발색이 제한적이고, 기물을 굽기 전까진 어떤 느낌으로 나올지 예상하기 힘들어요. 적당한 색과 표정, 무늬를 찾으려면 오랜 실험이 필요하죠. 채색을 수정하고 굽고 다시 수정하고 굽는 과정을 2~3개월 반복하면서 차츰차츰 완성도를 높여갑니다. 실패한 걸 제외하면 일 년에 새로 만들어지는 작품은 5~7종 정도예요. Q. 모습은 우리 곁의 작은 생명과 자연을 소재로 한 도자 오브제를 만듭니다. 작품 그 자체이자 작품의 주제가 되는 인물, 동물, 자연 풍경을 고르는 기준은 무엇인가요? A. 그때그때 우리가 갖고 싶은 걸 만들어요. 모습의 두 작가가 자유롭게 만들지만, 완성도와 최종 공개 여부에 대해서는 꼭 의견일치를 보아야 해요. 우리가 사랑하는 대상이어도 자기의 재질과 어울리는 것, 핸드 페인팅의 표현 한계를 감안해요. Q. 모습의 작품에는 ‘단발머리 소녀’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대개 동물이나 자연의 품에 안겨 있어요. 아이를 포근하게 품은 모양새를 바라보면 절로 따뜻한 온기가 느껴집니다. 모습의 작품에서 소녀는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A. 언젠가부터 사람이 동물 위에 올라타 있는 형상을 만들기 주저해요. 굳이 만든다면 동물이 인간을 구원하듯 기꺼이 태워준 느낌이 들어야 하죠. 동물과 사람이 함께 등장할 때 가장 무해해 보이는 형태는 어떤 것일지 고민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자아이가 자주 등장하게 되었어요. 물론 기술적인 이유도 있는데, 적당히 풍성한 머리로 얼굴을 감쌀 때 표정이 더 두드러져서 좋더라고요. 아이의 붉은 볼은 작품의 생기를 돋게 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죠. 배색 구상을 하다보면 어떤 색은 꼭 들어가야 하는데, 붉은 색조가 그래요. Q. <흰 비둘기와 노래하는 사람>처럼 모습의 작품은 하나의 형태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두 사물을 조합하는 구성이 많다는 점이 흥미로웠습니다. 두 사물을 하나로 붙여 제작하지 않고 분리하여 작업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관람객에게 저마다의 활용법을 열어두기 위한 의도인지요. A. <흰 비둘기와 노래하는 사람>에서 사람과 동물을 분리해 만들지 않았다면 비둘기는 그저 작은 장식이 되어버렸을 거예요. 신기하게도 분리되었을 때 주연과 조연 없이 대등한 존재감을 갖게 되더군요. 산양과 누워있는 사람, 눈 나무와 작은 아이처럼 두 존재 사이의 묵묵한 이야기를 강조하기도 합니다. 물론 만드는 재미도 있고요. Q. 이번 전시는 12월의 한가운데에 시작됩니다. ‘이누이트, 얼음 나무, 눈밭’처럼 겨울이 떠오르는 풍경을 배경으로 한 작품들 때문일까요, 유독 이 계절과 잘 어우러지는 듯해요. 작품의 흰 부분이 새하얀 눈을 연상케도 합니다. A. 모습의 작품에서 흰색은 그저 바탕이 아니라 우리가 세심히 만든 흰색이에요. 그러니까 ‘채색된’ 흰색이면서 가장 중요한 기본색이지요. 가마에 구웠을 때 투명유의 반짝거림을 덜어내는 것도 중요해요. 얼음 같은 광택 대신 눈을 뽀득뽀득 뭉친 듯한 질감을 만드는 거예요. 조금 까다로운 작업이죠. 단번에 할 순 없고 여러 번 굽기를 반복해야 해요. 그렇게 만들어진 흰 바탕에 늦가을 풀잎 같은 녹색을 입힌 작품들이 모습의 겨울나무들이에요. 이 흰색과 녹색의 정갈한 대비를 무척 좋아해요. Q. 선경 작가님은 싱어송라이터이기도 하십니다. 음악으로 전하고자 하는 이야기와 모습의 작품으로 전하는 이야기엔 어떤 공통점과 다른 점이 있을까요?A. 모습은 두 사람이 만들어가는 것인 만큼 두 사람 모두가 관심이 있는 이야기들을 하게 돼요. 앞서 얘기했듯이 두 사람의 의견일치가 된 것들만 ‘모습’으로 공개하고 있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 이상으로 이제 모습은 나름의 독립된 생명체가 된 것 같아요. 두 사람을 합친 것이 모습이 아니라 모습은 그냥 모습인 거죠. 모습의 작업과 선경, 승민의 개인 작업은 결론적으로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더라도 표현 방식이 다르니 전혀 다른 느낌을 준다고 생각해요. 동일한 주제로 이야기한다고 해도 사용하는 단어나 말하는 방식에 따라 달리 느껴지는 것처럼 말이에요. Q. 작년 일본에서의 첫 전시를 연 데에 이어 올해 10월에도 시모니타마치에서 전시를 진행하셨지요. 일본에서 전시는 어떤 계기로 진행하게 되었나요?A. 일본은 워낙 공예의 폭이 깊고 다양해서 모습 작품이 비집고 들어갈 틈이 있을까 의문이 있었어요. 그런 저희에게 일본 전시를 공동 기획한 미사토 님, 토모카 님 두 분이 직접 제주에 찾아와 용기를 주셨어요. 모습 작품엔 모습만의 이야기가 있으니 걱정하지 말라 하더군요. 전적으로 그분들을 믿고 맡기는 중이에요. 빈틈없고 예의 바른 분들이죠. 언어의 벽이 있음에도 소통에 별 어려움이 없고 신뢰가 쌓이는 게 느껴져요. 일본의 이곳저곳에서 ‘모습 쇼케이스’를 열며 즐기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Q. 전시가 끝나면 곧 새해를 맞이합니다. 2025년, 작가님이 계획하신 일이나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A. 휴가가 필요해요! 언젠가부터 산타의 저임금 노예로 살아온 느낌이 들어요. 친구들에게 모습은 바쁜 사람들이라는 이미지를 내년엔 벗고 싶습니다. 모습의 작품전 《Silently》는 2024년 12월 13일부터 29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모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