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개의 영롱한 빛이 쏟아지는 가을의 끝 무렵, 김선갑 선생님과 남미혜 작가를 핸들위드케어에서 만나보았습니다. 자개라는 공통분모로 맺어진 두 분의 특별한 인연이 이번 전시를 통해 하나의 결실을 맺은 것 같아 이야기를 듣는 내내 들뜬 마음을 가라앉히기 어려웠어요. 시대와 세대를 뛰어 넘는 두 예술가의 속 깊은 우정과 교류의 현장을 함께 나누어봅니다. Q. 두 분이 함께 전시를 하게 된 소감이 궁금합니다. 소회가 남다르실 듯해요.김선갑(이하 김): 남미혜 선생과 이렇게 함께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지요. 제 작업이 전통적이라면 남 선생은 현대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는데 이 자리를 통해 나전의 발전 과정, 미래에 대한 예측을 보여줄 수 있게 된 것 같아 기쁩니다.남미혜(이하 남): 선생님의 작품을 목격하고 찾아뵈었던 게 어느덧 6년 전이에요. 그 이후 작업이 잘 풀리지 않거나 고민이 있을 때마다 선생님께 두서없이 이야기를 늘어놓곤 했는데, 이렇게 작품이 함께 걸리게 되다니 저로서는 큰 영광이고 감격스러운 일입니다. 귀한 작품을 내어주셔서 감사한 마음이에요. Q. 인연을 맺게 된 계기가 특별하지요. 그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남: 일본에서 개인전을 마치고 막 귀국한 시점이었어요. 프랑스 생테티엔에서 열리는 디자인 비엔날레에 작가로 참여하게 되었는데, 당시 제안받은 주제가 ‘한국의 미’였습니다. 자료를 모으기 위해 박물관과 미술관을 다니면서 자개를 발견하게 됐지요. 마침 젊은 작가들 사이에서 자개를 사용한 작품이 하나둘 나오던 시점이기도 했고요. 저는 자개의 화려함이 아닌 그 뒤에 숨겨진 자개의 고요함을 캐치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김선갑 선생님의 작품을 만나게 됐고 수소문 끝에 정릉의 공방으로 찾아가 인사를 드렸어요. 다짜고짜 찾아가 생각을 늘어놓았는데 선생님께서 편하게 이야기를 받아주셨죠. 이후 한 달 정도 공방으로 아침마다 출근을 했어요. 당시 저는 디자인을, 선생님께서는 제작을 맡아주셨는데 디자이너가 디자인을 제대로 하려면 제작 과정을 알아야 한다고 말씀하셨거든요. 그렇게 선생님과 함께 처음 완성한 작품이 ‘반월반 테이블(Half Moon Table)’입니다. Q. 그 인연이 ‘나전월광문반’에까지 이어졌지요?남: ‘나전월광문반(Moonlight Tray)’은 디자인 비엔날레를 마친 이듬해 한국공예디자인진흥원의 지원을 받아 개발, 전시하게 된 작품이에요. 그런데 이때는 제 힘으로 먼저 시도해본 뒤 선생님께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그간 선생님을 너무 괴롭힌 게 아닌가 싶어서(웃음). 디자인 역시 지금과는 형태가 전혀 달랐고요. 젊은 사람들이 인스타그램에 자개 사진을 올리는 모습을 상상하며 자개에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방향을 고민했는데 우여곡절이 많았어요. 결국 전시를 한 달 앞두고 선생님께 달려가 상황을 설명드렸죠. 그리고선 다음날 아침, 전화를 주시더니 좋은 생각이 떠올랐다며 당장 정릉으로 오라 하셨어요. 라인을 파서 자개를 상감하는 처음의 방법 대신 나무 표면에 자개를 그대로 올려 붙이자는 아이디어였죠. 급하게 제작을 마무리하고 전시를 오픈했는데 반응이 무척 뜨거웠어요. 김: 공예의 나라인 일본에서 공부한 남 선생이 저를 찾아와 고민을 나눈 것 자체가 고마운 일이었습니다. 그런 만큼 확실하게 도움을 주고 싶었고요. 고정관념을 벗어나는 게 현대 작가의 몫이라면, 남 선생이 그러한 역할을 잘 해내주었지요. Q. 김선갑 선생님께서는 5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나전을 시작하겠다고 처음 결심한 순간이 떠오르시는지요. 김: 어렸을 때 그림을 꽤 잘 그렸습니다. 만약 대학에 진학했다면 미술을 전공했겠지요. 하루는 할아버지께서 네가 그림을 잘 그리니 나전을 배워보면 어떻겠냐 하시더군요. 그렇게 공방에 들어가 수련하기 시작한 게 18살이었습니다. 처음부터 저는 자개를 그림으로 여겼던 듯합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좀더 생동감 있고 자연스럽게 표현할 수 있었고요. 그러다 30대가 되었을 때 고비가 찾아왔습니다. 꿈은 컸는데 작업이 성에 차지 않더군요. 이 상황을 어떻게 타개할 것인가 고민한 끝에 이론을 공부하자는 결론에 이르렀습니다. 기술만 가지고는 부족하다고 느꼈지요. 장인이 아닌 작가가 되어야겠다는 생각도 그때부터였고요. Q. 스스로를 명인이 아닌 작가이자 화가로서 정체화하신 부분이 인상적입니다. 자유로운 창작을 위해 수묵화, 동양철학 등을 꾸준히 공부하신 점도요. 김: 20여 년 동안 수묵화를 그리러 전국 방방곳곳을 다녔습니다. 40만 킬로미터를 달리고 폐차했지요. 소나무가 뻗어나가는 형상, 이파리의 생김새 등을 살피며 자연의 섭리를 배웠습니다. 나전은 미술사적으로 학문이 체계화되어 있지 않았기에 저 스스로 공부하며 나름의 이론을 정립해나가야 했어요. 그러면서 ‘나는 자개로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구나, 화가구나’라는 생각이 점차 확고해졌습니다. 인간문화재와 명장으로 지정하려던 것도 거절했고요. 장인이 기능보유자라면 작가는 기능을 뛰어 넘는 사람인데, 제가 바라는 것은 작가였습니다. Q. 디자이너와 디자인을 실제로 구현하는 이의 영역이 분리되어 있는 최근의 경향과 달리, 남미혜 작가님께서는 그 둘을 동시에 해냄은 물론 아름다운 결과물로 선보이셨어요. 연구자의 시선과 공예가의 손재주, 실행력을 동시에 갖췄을 때 드러나는 차별점이 있을까요. 나름의 시행착오도 많으셨을 것 같고요.남: 어떤 일을 하든 디자이너와 메이커의 영역을 구분해서 생각하지 않았어요. 그래서 사무실 이름도 취미사라는 애매한 이름으로 지었고요. 그동안 자료를 꾸준히 수집해오고, 다양한 장르의 일을 진행했던 배경이 있었기에 지금의 작업이 가능했다고 생각합니다. 궁금한 점이 생기면 어떻게든 나름의 확인을 해야 직성이 풀려요. 인터넷에 떠도는 정보는 신뢰하지 않는 편이라 생소한 분야에 궁금증이 생기면 관련 서적을 훑어본 뒤, 이야기가 잘 통할 것 같은 전문가를 찾아가거나 샘플 제작을 의뢰하는데 그러다 보면 발품과 시간이 많이 들곤 해요. 그런데 제가 직접 작업을 진행하면서부터는 “이런 표현이 가능할까?” “과연 보기에도 좋을까?” 하는 의문이 생겼을 때 곧바로 자리에 앉아 직접 확인해 볼 수 있더라고요. 김선갑 선생님을 비롯해 목작업을 맡아 진행해주시는 분, 제가 원하는대로 자개를 가공해주시는 분, 각자의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는 친구들까지 정말 많은 사람들의 도움으로 나전월광문반이라는 작업을 직접 진행하고 완성할 수 있었어요. 그 과정에서 하나 확실해진 것이 있다면 어떤 일이든 실행에 옮기면 된다는 자신감이 생겼다는 점이에요. 작업에 필요하다면 지금 당장 강화도에 달려가서 화문석을 짤 수도 있어요(웃음). Q. 두 분이 생각하시는 자개의 매력은 무엇일까요?김: 인간이 결코 만들어낼 수 없는 아름다운 빛깔과 생명력 아닐까요. 서양 물감은 3~500년이 지나면 복원이 필요하지만 자개는 그럴 필요가 없습니다. 옻칠 역시 3천 년이 지나도 거뜬하고요. 자개와 옻칠에 깃든 변하지 않는 가치야말로 가장 큰 매력이라 여겨집니다.남: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긴 했지만 지금처럼 작업자가 되어 작가라는 호칭을 듣게 될 줄은 몰랐어요. 여전히 ‘괜찮은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다보니 자꾸 손을 보게 되더라고요. 손끝으로 확인한 뒤 스스로 안심할 수 있어야 가져간 사람도 안심할 테니까요. 제가 할 수 있는 건 최대한 애정을 담아 자개를 갈고, 닦고, 문지르는 일이에요. 그러다보면 자개의 오묘한 온도가 느껴지기도 하는데 직접 만들어보기 전까진 몰랐던 사실이에요. 어느날은 제 체온이 자개에 스며들어 따스함이 느껴지는가 하면, 어떤 날은 바다의 시원한 기운이 전해지고요. 계속해서 작업을 하게 된다면 자개의 이러한 촉감과 은은함을 잘 표현하고 싶어요. Q. 작업 과정 중에 가장 즐거운 때는 언제인지도 궁금합니다. 남: 하나라도 허투루 했다가는 큰일이 난다는 생각으로 작업에 임하곤 합니다. 그 과정마다 항상 발견이 있고, 그 재미 덕분에 지금까지 계속해올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자개를 올리기 전 한참 동안 나뭇결을 바라보는데 어느 곳에 달빛이 있을 때 가장 공간적인 느낌이 날까, 나뭇결을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위치가 어디일까 고민합니다. 그때마다 마음을 깨끗하게 유지하려고 노력해요. 좋아하는 음악을 틀어 놓고, 자개를 올릴 자리를 결정할 때까지 천천히 작업을 이어가지요. 때로는 이 과정에서 이상한 감정이 들기도 합니다. 울컥하기도 하고요. 그동안 고민했던 것에 대한 답을 주는 듯한 장면들이랄까요. 자개를 붙이고 그 위에 종이를 얹은 뒤 10일 쯤 말렸다가 물에 불려 벗겨내는 순간 역시 희열이 있습니다. 자개가 반짝하며 모습을 드러내는 모습이 마치 발굴과도 닮았고요. 그때마다 매번 사진을 찍고 SNS에 과정을 공유하며 행복하다는 말을 하곤 했는데, 제 작업을 좋아해주시는 대다수가 이 지점에 공감하신 분들이 아닐까 싶은 생각이 들어요. 김: 작업이 만족스러웠던 적은 사실 없습니다. 만족하면 발전이 없다고도 생각하고요. 지향점에 항상 못 미치지만 ‘그래도 이만큼은 했네’ 싶은 때가 가끔 있긴 합니다. 특히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성장하는 순간이 그렇습니다. 기존의 방식과 달리 삼베의 결이 드러나게끔 옻칠을 한다거나, 오동나무를 사용해 가구를 짠 것은 나름의 자부심으로 남아 있지요. 베니어판이 상용화되기 전까지는 통나무를 사용했는데 무게가 무척 무거웠어요. 오동나무는 그에 비해 훨씬 가벼울 뿐더러 나무 표면을 태우는 낙동법을 사용해 무늬를 살리고, 보존성을 높였지요. 여기에 옻칠까지 더해 그야말로 천 년을 가게끔 만든 것입니다. 천 년 뒤도 작품이 남아 ‘잘했네’라는 소리를 듣게 된다면 더는 바랄 게 없습니다. Q. 남미혜 작가님은 고궁과 사찰의 문양에 관심이 많으시지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발전시켜보고 싶은지, 그 외 새로운 작업 계획이 있다면 궁금합니다.남: 문양은 아마도 제가 평생 관심을 가지고 살아갈 대상이 아닐까 합니다. 사람이 많지 않고 천천히 뒷짐지고 걸을 수 있는 곳을 찾다보니 고궁이나 사찰을 자주 찾게 되는데, 평소 어딜 가든지 건축물이나 물건, 옷가지에 들어 있는 무늬를 보고 기억해뒀다가 나름의 의미를 붙이는 걸 좋아해요. 어디에 쓰겠다 하는 구체적인 계획은 없지만 앞으로 하는 일에 어떤 식으로든 도움이 될거라 믿고 있고요. 새로운 물건이 쏟아져 나오는 시대를 살면서 굳이 또 하나의 물건을 만들겠다고 선언한 이상 ‘앞으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는 생각을 매일같이 합니다. 지난해부터 수집과 기록의 의미, 버리지 못하는 마음, 길을 걷다 나뭇잎 하나라도 주워오게 되는 마음같은 것들을 주제로 작품을 만들고 전시를 기획하는 일을 진행해오고 있어요. 당분간은 이 작업에 집중해서 작품 수를 늘려볼 생각입니다. 관련한 책을 빠르면 내년에 완성하고 싶은 욕심이 있고요. Q. 김선갑 선생님께서는 오랜 시간 작업해오며 얻은 배움과 기술이 켜켜이 쌓여 있으리라 생각됩니다. 기술을 전수하거나 제자 양성도 염두에 두고 계신지요? 김: 물론 있습니다. 단, 가르치는 게 아니라 배운다는 말을 앞에 두고 싶어요. 남 선생과도 가르친 게 아니라 대화하면서 나눈 것이지요. 그로 인해 상대가 보다 성장한다면 그보다 더 보람찬 일도 없을 테고요. 만약 누군가 나를 찾아온다면 한국의 미에 대해서 꼭 이야기하고 싶습니다.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적당함, 자신의 위치에 맞게 삶을 영위해 나가는 자연스러움은 앞으로 인류가 지향해야 할 가치와도 맞닿아 있다고 생각합니다. 《오롯이 우주 - 김선갑 & 남미혜 작품전》은 한남동 handle witch care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현재 전시 둘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