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의 일상 정물을 구성하는 순하고 편안한 형태들.’ 전시작을 나누며 붙인 뷰로 파피에의 담담한 설명이 마음에 오래 남았습니다. 소사요의 기물을 마주하니 ‘순하다’는 말의 그 부드러우면서도 간질간질한 느낌이 곧바로 와닿았기 때문입니다. 순하다는 표현을 거듭 곱씹게 되는 이유는 소사요 김진완 작가와 뷰로 파피에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도 존재합니다. “어려울 것 없어요.” 라는 답을 주고받으면서도 늘 먼저 묻고, 한 번 더 살피는 대화. 그러한 관계를 헤아리다 보면 이들이 다듬어간 작업의 세계가 어떻게 순하지 않을 수 있을까 싶어집니다. 소사요와 뷰로 파피에가 나눈 다정한 대화는 서로에게 오래 남을 시간과 기억으로 쌓여 새로운 작업을 만들어냈습니다. 핸들위드케어에서 여는 두 번째 전시를 앞두고, 뷰로 파피에 문지윤 아트 디렉터와 나눈 이야기를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년 여름 《꽤 짙은 기억》 전시 이후 오랜만에 다시 인사드립니다. 공간을 스타일링하는 뷰로 드 끌로디아와 공예 기물을 소개하는 뷰로 파피에의 디렉터로서, 그리고 한 개인으로서 지난 일 년간 어떻게 지내셨나요? A. 안녕하세요. 말씀하신 세 역할을 점처럼 분절해 수행하는 것은 아니고, 하나의 축 위에서 관절처럼 연결된 상태에 가깝다고 느껴요. 올해는 그간 하지 않았던 일들을 계절마다 하나둘씩 경험하면서 새로운 기분으로 시간을 보냈습니다. 올봄에는 서울리빙디자인페어의 디자이너스 초이스에 PPS 구병준 대표님, WGNB 백종환 소장님과 함께 감독으로 참여했고, 프랑스 건축가이자 디자이너 샤를로트 페리앙의 딸 페르네트와 사위이자 연구학자인 쟈끄의 한국 방문 일정에서는 토크의 모더레이터와 통역을 맡았어요. 뒤이어 페리앙의 자서전이 출간되어 추천 서문을 쓰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전에는 운경재단과 함께 운경고택에서 계절의 미감을 바탕으로 제가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온 ‘서랍’에 관한 이야기로 전시를 열었습니다. Q. 올해도 소사요 김진완 작가와 함께 핸들위드케어에서 전시를 열게 되었어요. 작업 이야기는 곧 이어가도록 하고, 지난 전시 이후 소사요와 뷰로 파피에가 또 어떤 소소한 시간을 쌓아왔는지 먼저 여쭤보고 싶어요. 가령 함께한 찻자리랄지요! 함께 한 장면 중 마음에 남아있는 사적인 순간이 있을까요?A. 핸들위드케어와 작년 여름 전시를 진행하면서 올해 겨울 전시의 일정을 같이 상의했어요. 연말에 선물처럼 나눌 수 있는 전시가 되기를 바라면서 12월 전시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작년 흑자 전시와 함께 일부 선보였던 Soil 시리즈의 소지와 유약을 바탕으로, 올 초부터 소사요 선생님과 흙의 배합과 유약의 조합을 살피면서 많은 샘플 테스트를 거쳤어요. 사실 그 기간이 굉장히 길었어요. 도자 작업을 하시는 많은 분들이 공통적으로 어려움을 겪었던 소지 단종과 맞물려, 저희 역시 실험 과정에서 선택한 흙이 더 이상 판매되지 않는다는 소식을 듣거나 유약 재료 중 하나인 광물이 나오는 광산이 문을 닫았다거나 하는 이슈가 계속 있었어요. 이미 유한한 재료를 소진하면서 예견된 과정이기도 하지만, 실망하지 않고 그다음 흙과 친해지기 위해 시간을 쓰며 사귀는 과정을 즐기려고 했어요. 다행히 저희는 호기심이 많아, 여러 종류의 새로운 흙과 유약의 사용한 기물의 미감을 탐색하고 완성도를 높이는 일에 큰 즐거움을 느끼는 이들이에요. 그 사이 분명히 고통과 좌절이 있지만 충분히 겪어 낼 용기와 의지도 가지고 있고요. 덕분에 한 달에 2~3번씩 선생님과 모여 시편 테스트를 하고, 물레 작업과 몰드 작업도 병행하면서 샘플을 성형하는 등 많은 시간을 함께 보냈습니다. 선생님은 저와 황남주 실장을 위해 유튜브를 보시며 국과 밥을 차려주시기도 했어요. 처음에는 괜히 번거로우실까봐 저희가 김밥을 챙겨 가곤 했는데, 어느새 선생님의 식탁 앞에 앉아 밥을 기다리는 것이 익숙해졌죠.(웃음) 여름과 가을에는 선생님의 텃밭에서 난 제철 채소로 만든 음식들을, 겨울에는 황태 감잣국 같은 메뉴로 먼저 밥을 먹고 나서 작업이든 이야기든 시작하게 되었어요. 그만큼 자연스러운 사이가 되었다는 뜻이겠죠. 얼마 전에는 제가 푹 빠져있는 스페셜티 원두를 사다 드렸는데, 선생님께서 커피를 마시는 혼자만의 시간이 너무 행복하다며 문자를 주셨어요. 서로가 좋아할 만한 것들을 나누는 순간들이 있어요. 이번 전시에 다양한 크기의 커피를 위한 잔이 나온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고요. Q. 이번 전시 제목인 《어딘가, 우리가》를 직접 지어주셨어요. 어떤 마음에서 떠올린 제목인지, 이번 전시를 통해 건네고 싶은 이야기는 무엇이었는지 이야기 나눠주세요.A. 뷰로 드 끌로디아의 공간 연출이나 뷰로 파피에의 기물 기획 모두, 없던 새로운 것을 찾거나 발명하듯 만드는 일이 아니에요. 시간이 지나 되돌아보면 결국 우리 안에 오래 머물던 있던 것들이죠. 이야기하는 화자로서 저와 남주 실장은, 언젠가부터 내내 생각해왔던 장면들, 어딘가에서 우리가 이미 마주쳤을 법한 순간들을 인화하듯 꺼내는 작업을 하고 있다고 느껴요. 우리가 하고자 하는 이야기의 대부분은 지난해 겨울에 입고 옷장에 넣어 두었던 코트 주머니 속에서 다시 발견한 영화표라든지, 봄기운이 들면 산뜻한 차가 마시고 싶어 그에 맞는 차 도구들을 꺼내어 두는 일, 여름내 얇고 투명한 유리잔에 얼음을 띄워 냉커피를 마시다가 어느 날 아침 문득 손잡이 달린 도톰한 잔에 따뜻한 우유와 거품을 가득 올려 마시고 싶으면 ‘아, 가을이 왔구나’ 싶은 것 같은, 아주 사소하고 작은 것들이에요. Q. 전시에 관해 짧게 작성해 주셨던 소개 글에 ‘만나기 위해 애쓰지 않았지만, 눈이 마주치는 순간 이것이 기다려오던 것임을 지나침 없이 알아차릴 수 있기를 바란다.’라는 문장이 있었죠. 이 문장을 읽으며 소사요 김진완 작가와의 첫 만남을 얘기하던 디렉터님의 이전 인터뷰가 떠올랐습니다. 당시 너무 피곤한 상황이라 첫 만남을 고사했는데 ‘어쩐지 오늘, 이 시간이 아니면 다시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겠다’라는 마음에 늦은 밤 작업실을 찾았고, 그곳에서 필연인 듯 우연히 마주한 소사요의 작업에 심장이 두근거렸다는 이야기요. 그 첫 만남의 기억과 이번 전시 사이에 어떤 연결점이 존재하나요?A.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작년에 많은 사랑을 받았던 흑자 기물 작업 역시 흙의 단종 이슈를 피해 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 소식을 듣고 소사요 선생님은 최대한 남아 있는 흙을 확보하기 위해 전량을 구매하셨죠. 앞으로 남은 흙으로 차 도구와 뷰로 파피에 기물을 적당히 나누어 작업해 주실 테지만, 그것 역시 언젠가 이별이 정해져 있는 셈이죠. 선생님의 흑자와 어울리는 다른 라인을 구상한 것은 오래전부터이지만, 올해 이런 일들을 겪으며 조금 더 구체적으로 실현해 보자는 마음이 들었어요. ‘어딘가’라는 말은 비단 물리적 시간과 특정한 공간을 이야기하는 것만이 아니라, 어떤 구석이나 정서, 혹은 사물들까지 모든 것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마주하는 이들에게 불러일으키는 감정이 제가 소사요 선생님의 작업을 처음 보았을 때 느꼈던 것들과 교차할 수도, 평행할 수도 있겠지요. 전시를 통해 그런 만남을 위한 자리를 마련할 수 있다는 것이 큰 기쁨이에요. Q. 《꽤 짙은 기억》에서는 짙은 흑자 작업을 소개했다면, 이번에는 가장 평안한 형태와 흙의 질감이 느껴지는 ‘순한 작업’을 선보입니다. 이번 작업을 함께 발전시키는 과정에서 소사요 작가와 어떤 대화를 나누었는지, 그리고 흑자 작업과 다른 이번 기물의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듣고 싶습니다.A. 표면에는 유약을 바르지 않고 연마로 그 질감을 내는 흑자 작업은 분명 고유의 단단한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다양한 형태의 기물이 한데 모였을 때의 두근거림도 크고요. 이견 없는 주인공 외에 식탁 위에 함께 오를 수 있는 부드럽고 담백한 얼굴들을 생각했어요. 흑자가 모노크롬 사진처럼 또렷한 작업이라면, 이번에 소개하는 작업은 희미하지만 입자가 살아있는 질감의 검프린트로 인화한 듯한 느낌이 들어요. 유화 속 기물 같기도 하고요. Q. 앞서 언급해주셨지만, 지난 전시에서도 따뜻하고 부드러운 색을 입힌 테이블웨어인 ‘소일 시리즈’를 일부 소개하기도 했었죠. 이번 전시작 또한 소일 시리즈의 연장선이라고 볼 수 있을까요? A. 맞아요! 소일 시리즈를 바탕으로 소지의 비균질한 표면이나 유약의 두께 등을 계속 실험하면서 매일의 식탁에 자연스럽게 어울릴 만한 형태를 찾아갔습니다. Q. “가장 잘 만들 수 있는 게 차 도구다”라는 소사요 김진완 작가의 이야기처럼, 소사요는 차 도구로 익숙한 작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뷰로 파피에와의 협업에서는 일상 기물이 중심을 이루고 있어요. 본격적인 다구보다 일상 기물에 집중하는 것은 소사요의 개인 작업과 구별되는 지점을 만들고자 하는 의도일까요?A. 선생님의 차 도구를 정말 많이 소장하고 있고, 매일 사용하고 있으니 그 설계의 탁월함과 아름다움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어요. 종종 소개하고 판매도 하고요. 다만 작은 다관을 이용해 차를 마시지 않는 분들에게는 소사요 선생님의 차 도구가 아름답기는 하지만 무용한 기물일 테니, 그들에게 선생님의 다른 도구를 소개하고 싶다는 마음에서 시작했어요. 차 도구 이전에도 선생님은 청자, 백자, 분청을 오랫동안 작업하셨고, 당연히 식기와 오브제, 다완 등을 선보여 오셨어요. 그런 넓은 작업의 스펙트럼을 먼저 보았기에, 제가 몇 년을 기다려 일상 기물 작업을 해주시기를 청했던 것이고요. 뷰로의 시선과 오늘날의 식문화를 함께 나누면서요. 선생님의 특정 작업과 뷰로 파피에의 작업을 구분 짓기보다는, 다양한 쓰임을 고려해 더 많은 이들의 손에 닿기를 바라는 마음이에요. Q. 소사요 작업을 계기로 차 도구에 관심이 깊어지고, 그 쓰임을 이해하고자 본격적으로 차를 공부하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는 “지식을 습득하는 것보다는 좋아하는 것을 마음껏 누리고자 하는 자세였다”고 말씀해 주신 것이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첫눈에 반했던 그때의 감정과 차에 대해 더 알게 된 지금, 보다 깊이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게 된 소사요의 작업은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A. 해가 지날수록 더 느껴요. 좋아하는 것을 바로 알기 위해 평생 배우는 것이 전부이겠구나. 끝내 알게 되는 것이 있을까 싶도록 살면서, 그리고 더 무궁한 미지의 세계에 스스로를 들여보내면서요. 무언가를 더 알게 되어 시선이 달라졌다기보다는 내가 무엇을 더 아끼게 되는가의 관점이에요. 지나칠 것들은 아쉬움 없이 보내고 귀한 인연들은 더 가까이 두고요. Q. 디렉터님은 아름다운 것에 늘 둘러싸여 사는 사람이면서, 그 아름다움을 많은 이들에게 이해받도록 만드는 일을 하고 계시지요. 그런 디렉터님이 생각하는 ‘아름다움’의 정의는 무엇일지 묻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아름다움의 기준이 소사요의 작업 중 어떤 부분과 맞닿아 있다고 느끼시는지도 궁금해요. A. 우리를 압도하는 것에 거시적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지만, 아름다움의 완만한 호에 제 일상을 실어 굴러갈 수 있는지가 꽤 중요해요. 어느 구석이든 내가 들어갈 틈이 있고, 머무를 수 있는 처소가 되는지요. 그 아름다움이 내게 묻어 어떠한 흔적을 남기는가. 일상적이고 하찮고 비주류라 하더라도도, 그것이 나의 삶에 상흔을 남긴다면 그것은 평생 나의 것이 될 테니까요. 소사요 선생님께서 옛 도공들의 하루를 떠올려 본다고 하신 적이 있어요. 흙을 고르게 펴는 토련기도 없고 초벌을 덮어 놓을 비닐도 없던 시절에 도공들은 어떻게 살았을지 헤아리면서 그에 맞게 작업을 하면, 그 시절의 기질이 어느 정도 도자기 위에 드러난다고 하셨어요. “그들은 아마 너무 잘하려고도 애써 못하려고도 안 했을 거예요.”라는 말씀이 제게 크게 다가왔어요. 제가 바라고 추구하는 아름다움이라는 것이 그 지점 어딘가에 있다면 좋겠어요. 이루기 위해 너무 애쓰지 않고 모든 것이 적절한 힘으로 지속될 수 있는 상태로요. Q. 소사요와의 협업, 그리고 단짝처럼 함께해온 뷰로 파피에 팀원과의 오랜 동행을 떠올려 보면, 디렉터님께서는 ‘함께 하는 것’의 가치를 누구보다 크게 느끼실 것 같아요. 이에 대해 어떤 마음가짐을 갖고 계신지 이야기 나눠주세요.A. 모순되게도 저는 유년 시절부터 개인적인 삶에서는 혼자 해내는 것을 큰 미덕으로 생각해 왔어요. 부모님께서 제가 크게 무엇을 구하거나 바라지 않아도 온당한 바탕을 마련해주시고 조력해 주셨기에 가능했던 태도였던 것 같아요. 뷰로 드 끌로디아를 시작한 지 새해가 되면 16년이 되어가고, 함께 하는 황남주 실장과는 열세 번째 새해를 함께 맞이합니다. 대단한 마음가짐이랄 것은 없지만, 어떤 일을 앞두고 무엇을 결정하고 계획하든 우리가 함께하고 싶은지에 대해서 서로 묻고 듣는 것이 다예요. 그녀가 제 팀원으로 시작했지만 지금은 뷰로 드 끌로디아와 뷰로 파피에를 이끌어가는 공동의 주인인 것처럼요. 소사요 선생님과도 다를 것 없죠. 늘 선생님께 여쭤보아요. “선생님 하고 싶으세요. 하실 수 있으시겠어요.” 그럼 선생님은 늘 이렇게 답해주세요. “그럼요. 어려울 것 없어요” 무리 없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함께 도모할 수 있다는 사실이 가장 큰 동력이기도 합니다. Q. 《어딘가, 우리가》는 2025년 한 해를 마무리하며 2026년 새해를 여는 전시입니다. 올해 소망하시던 것을 이루었는지, 그리고 내년에는 어떤 시간을 기대하고 계신가요?A. 올해와 크게 다르지 않게, 다가오는 것을 분별하여 분수에 맞는 삶과 일터를 꾸려가고 싶어요. Q.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려요. A. 제가 스무 살이 되면서 커피를 마시기 시작하고 처음 모으기 시작한 것이 에스프레소 잔이에요. 그 작은 기물 하나에 담길 수 있는 한 사람의 기호와 세계가 지금의 뷰로까지 견인했다고 생각해요. 작은 커피 테이블 위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생각하고 계획하고 기억할까요. 전시 기간 동안 핸들위드케어에 뷰로 카페를 열어요. 올해 겨울은 에스프레소와 설탕이 담긴 작은 컵, 물동이를 닮은 밀크 저그, 흙의 여러 가지 색이 담긴 접시가 있는 4층의 작은 카페의 날들이 남겠네요. 소사요 × BÜRO PAPIER 작품전 《어딘가, 우리가 Quelque Part, nous》는 2025년 12월 19일부터 2026년 1월 4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뷰로 파피에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