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관찰자가 된다는 김도헌 작가의 이야기를 되짚어봅니다. 의도를 뛰어넘어 매번 눈이 부시도록 새로운 풍경을 열어주는 미립의 세계. 탐구할수록 끝없이 넓어지는 그 세계를 마주하며 작가는 더없는 발견의 즐거움을 느낍니다. 새로운 계절의 문턱에서 듀오 작품전 《미세》를 앞두고 김도헌 작가와 나눈 작업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핸들위드케어 전시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먼저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도자 작업을 하는 김도헌입니다. 평소 자주 찾던 TWL 핸들위드케어에서 이렇게 인사드리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Q. 재료와 물질을 깊이 연구하시는 만큼, 어떤 공예와 인연을 맺을 것인가에 대해 무척 신중하셨을 것 같아요. 여러 재료 중에서도 흙에 매료된 이유는 무엇이었나요?A. 사실 시작은 전혀 신중하지 않았어요. 돌아보면 왜 도자기를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는지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그렇게 몇 년간 작업을 이어오다 3년 전쯤, ‘나는 왜 이 일을 하고 있지?’ 하고 스스로에게 묻는 시간이 있었어요. 그때 비로소 도자의 물성에 깊이 매료된 것 같습니다. 흙과 유약이 만나 만들어내는 변화를 바라보며, 제가 의도하거나 통제할 수 없는 영역을 물질은 언제나 자연스럽고 완벽하게 해낸다는 점이 크게 다가왔거든요. 물질이 제 작업을 완성해 준다고 생각해요. 예측할 수 없음에서 오는 새로움이 작업을 할 때마다 여전히 즐거운 이유인 것 같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을 바라보면, 작은 그릇 안에서 광활한 우주와 자연의 깊이가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작업을 관통하는 키워드인 ‘미립의 세계’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A. ‘미립의 세계’는 작은 알갱이들이 모여 만들어내는 다양한 풍경을 의미해요. 제가 흙으로 하는 일은 용도를 정하고, 크기와 형태, 색의 방향을 잡아주는 정도입니다. 그 이후 유약의 표면 위에 별처럼 피어나는 결정과 패턴들은 물질 스스로가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입니다. 그래서 저는 작업을 하면서도 동시에 관찰자가 되는 것 같아요. 매번 새로운 장면이 태어나는 과정과, 그로 인해 기물마다 펼쳐지는 전혀 다른 풍경을 지켜보는 것이죠. ‘미립의 세계’는 그렇게 물질이 만든 미세한 변화의 장면이 쌓여 이루어지는 세계이며, 탐구할수록 계속해서 넓어지는, 어쩌면 끝이 없는 세계라고 말씀드릴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이번 전시 <미세>는 이유진 작가와 함께합니다. 두 분 모두 가마 속에서 유약이 스스로 만들어내는 미세한 아름다움을 마주하는 우연성을 즐기시지요. 작가님이 보시기에 두 분의 작업에서 닮은 점과 또 서로 다른 고유한 매력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A. 유진 작가와 결혼하고, 이렇게 둘이 함께 전시하는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그래서인지 이번 전시는 각자의 차이보다는 저희가 얼마나 닮아 왔는지를 보여주는 자리가 될 것 같아요. 다루는 재료나 형태에 대한 취향은 조금씩 다르지만, 오랜 시간을 함께 보내면서 작업을 바라보는 시선과 태도가 많이 닮아 졌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가마 속에서 일어나는 미세한 변화를 기다리고 받아들이는 마음 같은 것들이요. 이번 전시에서는 작업뿐 아니라, 함께 흘러온 시간과 그 안에 자연스럽게 스며든 이야기도 함께 느끼실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Q.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품을 소개해 주세요. 각각의 전시작에 담긴 이야기와 함께, 인상 깊었던 작업 과정이 있다면 이야기 나누어 주세요.A. 〈저녁 산〉 작업을 소개해 드리고 싶습니다. 최근 작업실과 집을 북한산 근처로 옮기게 되었는데요. 출퇴근길 마다 보게 되는 칼바위 능선의 풍경이 이 작업의 시작이었어요. 특히 해 질 무렵 산 능선을 바라보며 느꼈던 색감과 공기의 분위기가 인상 깊게 남아, 그 기억을 작업으로 옮겨보려 노력했습니다. 집에서 10분 거리라 일주일에 두 번 정도는 직접 산을 오르기도 하는데, 그렇게 걷고 바라보며 쌓인 애정이 고스란히 담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매일 스쳐 지나가던 풍경을 자연스럽게 그려보게 되었고, 그 시간을 천천히 유약의 표면 안에 옮겨보려 했던 과정이 특히 기억에 남습니다. Q. ‘보리’, ‘잔디’, ‘연잎’ 등 자연에서 빌려온 작품명이 눈에 띄기도 합니다. 작업에 있어서 자연은 작가님께 어떤 영감을 주나요?A. 자연의 재료로 작업하는 공예가에게 자연은 떼어놓을 수 없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특히 유약을 바르고 가마에서 구워냈을 때 드러나는 색과 패턴은 종종 자연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해요. 그때마다 떠오른 자연의 이미지를 유약의 이름으로 차용하곤 합니다. Q. “작업에 ‘나’를 많이 담지 않으려 노력하며 절반 정도는 물질에 맡긴다”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어요. 하지만 우연이 만드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면서도, 그 우연을 마주하기 위해 끊임없는 실험을 지속하신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이 상반된 두 요소가 작가님의 작업 속에서 어떻게 균형을 이루고 있나요?A. 저는 작업의 마무리를 제가 완전히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절반 정도는 물질과 가마의 시간에 맡겨둔다고 느껴요. 제가 하는 실험은 그릇이나 사물로서 안정적으로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가마에서 잘 나올 수 있도록 조건을 맞추는 데에 가깝습니다. 또 여러 재료를 혼합하며 더 좋은 질감과 색의 방향을 찾는 과정에 가까워요. 하지만 고온의 가마 안에서 형성되는 유약의 패턴이나 결정의 형태는 제가 의도적으로 만들거나 배치할 수 없는 영역입니다. 그릇마다 모두 다르게, 매번 새롭게 나타나는 그 자연스러운 결과가 좋아서, 만들 때마다 여전히 즐거운 마음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Q. “이야기가 많은 삶을 살자”는 가치관이 작가님의 인생을 이끌어왔다고 들었습니다. 도예가로서 작업을 하며 쌓아온 수많은 이야기 중, 특히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는 장면이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인가요?A. 제 작은 조각 같은 작업을 좋아해 주시는 분들과 직접 만나 이야기를 나눌 때가 가장 마음에 오래 남습니다. 왜 이 작업이 좋았는지, 어떤 부분이 마음에 닿았는지 서로의 언어로 이야기하다 보면, 제가 느꼈던 물질의 아름다움을 같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는 걸 확인하게 됩니다. 그 순간들이 계속해서 작업을 이어가게 하는 큰 힘이 되어줍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새롭게 도전해 보고 싶은 작업이나 계획하고 계신 일이 있다면 들려주세요.A. 이번 전시에서 처음 선보이는 〈여如〉 시리즈를 말씀드리고 싶은데요. 타고난 성향이 조금 딱딱한 편이라, 이 작업은 저에게 꽤 큰 도전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유약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조금 더 자유로워지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물레 위에서 흙을 다룰 때 미리 정해놓은 형태에 맞추기보다는, 흙이 지닌 유연한 물성과 흐름을 그대로 받아들이려 노력했습니다. ‘여(如)’라는 제목 역시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인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아직은 저에게도 낯설고 새로운 시도이지만, 그만큼 즐거운 작업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분께 이 변화를 보여드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김도헌&이유진 작품전 《미세》는 2026년 3월 6일부터 3월 15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김도헌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