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ide by Side by Side》 정현지 인터뷰

일상을 지탱하는 저마다의 마음이 있듯, 정현지 작가는 그 중심에 '균형'이라는 마음을 둡니다. 그런데 그 균형에 대한 정의가 조금은 뜻밖이었습니다. 완전한 상태가 아닌, 오히려 불완전함을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더 가깝다고 말이지요. 균형을 잃지 않기 위해 끊임없이 고민하고 마음을 쓰는 과정 역시 결국 균형의 일부라는 작가의 사려 깊은 이야기가, 서툰 우리의 일상 또한 그 자체로 충분하다는 다정한 다독임이 되어 막연한 기쁨을 차오르게 했습니다. 핸들위드케어에서 함께하는 세 번째 작품전을 준비하며, 네덜란드로부터 정현지 작가가 건네온 반듯하고 나란한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6년 전 핸들위드케어에서의 첫 만남인 《오• 마주• 봄》, 4년 전인 《가지런히•봄》, 그리고 이번 전시까지. 작가님과 벌써 세 번째 봄을 함께합니다. 어떤 마음으로 이번 전시를 준비하셨는지 궁금해요.A. 벌써 세 번째 전시로 다시 만나게 되어 반갑고 의미 있게 느껴져요. 그간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는 게 무색할 만큼 바쁘게 지냈던 것 같아요. 이번 전시는 이전 작업을 이어가면서도, 그동안 생각해 왔던 구조와 방식들을 조금 더 확장해 보고 싶다는 마음으로 여러 가지 작업을 두루두루 준비했어요. 전체적으로는 익숙한 방식 안에서 조금씩 변화를 만들어 보려고 했던 시도들이 담긴 작업이라고 생각해요. Q. 오랜만인 만큼 아무래도 근황 업데이트가 필요하겠죠. 지난 인터뷰에서 공유 작업실로 이사하셨다고 하셨는데, 여전히 같은 공간에서 작업하고 계신지요?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지내는 요즘 일상도 함께 나눠주세요.A. 집과 작업실을 자전거를 타고 오가며 이전과 비슷한 일상을 보내고 있어요. 변화가 있다면 조금 더 조용한 개인 작업 공간으로 이사해서 이전보다 작업에 더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된 것 같아요. 최근에는 집 근처에 공원이 새로 오픈하게 되어 주말 아침에 산책하는 루틴이 생겼어요. 그간 우기와 건기를 반복한 숲속이 모습을 드러내어 아직은 정돈되지 않은 거친 모습이지만 오랜 시간을 버텨온 나무들 사이를 거닐며 보내는 시간은 긴장감 높은 작업 시간을 잊게 해주고 평온함을 안겨줍니다. Q. 이번 전시의 국문 타이틀인 《반듯이, 나란히》는 가지런한 것, 정돈된 것, 반복되는 것에서 안정감을 느끼는 작가님의 태도는 물론, 작업 방식까지 아우르는 제목입니다. 작업실 밖, 작가님의 일상에서도 이러한 '반듯하고 나란한' 습관이나 모습이 드러나는 순간이 있는지 궁금해요.A. 가지런히 있는 것들, 정돈된 것들, 반복되는 것들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지고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아요. 왜 그런 걸 좋아하는지 생각해 보면 단순한 취향일 수도 있지만, 제가 걱정이 많은 편이라서 그런 것들을 볼 때 더 안정감을 느끼는 것 같기도 해요. 그런데 일상에서는 오히려 자주 허둥거리고, 물건도 잘 잃어버리고, 정돈된 상태와는 조금 거리가 있는 편이에요. 그래서 어쩌면 그런 제 모습과는 반대로, 가지런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동경하게 되고, 일상과의 간극을 작업을 통해 그 사이에서 균형을 만들어 가고 있는 게 아닐지 생각하기도 해요. Q. 이번 전시에서는 컬러 그리드, 드로잉, 조명 등 처음으로 선보이는 작업이 많아 무척 기대됩니다. 각각의 작업이 어떤 이야기를 담고 있는지 소개해 주세요.A. 작업을 하면서 반복되는 라인처럼 정돈되고 반복되는 구조를 좋아하면서도 한편으로는 같은 흐름이 계속 이어지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리듬에서 조금 벗어나고 싶은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기기도 합니다. 그래서 겉으로 크게 드러나지는 않더라도, 작업의 과정이나 결과 안에서 반복이 그대로 이어지지 않도록 작은 변화를 주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그래서 이전에 쓰지 않았던 다른 재료를 함께 사용하거나, 그리드에서 벗어난 새로운 도형을 조합해 보면서 반복적인 리듬 안에서 변주를 주는 시도를 하곤 합니다. 반복되는 라인들이 모여서 입체로 확장되면, 쌈솔로 이루어진 라인들은 단순히 표면 위의 요소가 아니라 형태를 지지하는 구조처럼 작용하게 됩니다. 얇은 천이 여러 겹으로 겹쳐지면서 만들어지는 구조는, 원래는 얇고 약한 재료로 여겨졌던 천이 구조적인 재료로도 가능성이 있다는 걸 보여주기도 합니다. 이전에는 메탈 프레임을 사용해서 천을 서포트 하는 역할을 하도록 했었는데, 요즘에는 구조적인 부분을 좀 더 보완해서 천 만으로 구조를 버틸 수 있도록, 천의 물성이 좀 더 자연스럽게 드러나도록 하는 방향으로 만들고 있어요. 또한 반투명한 재료의 특성 때문에 빛과 만나면서 색이나 결이 겹쳐 보이고, 그 안에서 물성의 다양한 표정이 만들어내기도 합니다. 특히 컬러 그리드 보자기 작업에서는 반복적인 라인들이 모이고 겹쳐서 그리드의 형태가 되고, 그 안에서 자유로운 컬러와 촘촘한 스티치로 서로 다른 리듬과 깊이를 만들어 보려고 했어요. 조명 작업에서는 벽돌이나 타일 같은 공간적인 요소들과 만나면서 자유롭게 조합되고 빛을 통해 형태가 드러나게 됩니다. 겹쳐진 천을 통과한 빛은 라인과 면의 밀도에 따라 다르게 퍼지고, 같은 구조 안에서도 색이나 깊이가 조금씩 다르게 보이기도 합니다. 저는 작업을 하기 전에 스케치를 많이 하는 편인데 요즘에는 조금 더 정리된 드로잉으로 표현해 보는 작업도 함께 하고 있어요. 화방에서 종이와 색연필을 고르고 작업실에서 사각사각 소리와 함께 그리다 보면 선명하고 뚜렷한 색과 텍스처가 종이 위에 올라오는 과정이 무척 재밌어요. 저도 모르게 흥얼거리면서 즐겁게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이번 드로잉 작업은 작업의 과정이나 구성 요소들을 조금 더 간단하게 보여주는 역할을 하고 있어요. 작업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하나의 레이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Q. 투박이, 옥사, 춘포 같은 부드러운 직물부터 가죽과 벽돌까지, 재료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작업하고 계시지요. 작업에 있어 재료를 선택하실 때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기준과, 작가님께서 느끼시는 각 재료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A. 투박이, 옥사, 춘포 모두 실크이지만 각각 고유의 결과 색감이 있어요. 특히 투박이는 함창 허호 선생님께서 만드신 천으로, 시골 강아지같이 귀여운 이름부터 또 그만의 거칠고 투박한 질감과 자연스러운 색감이 무척 매력적으로 다가옵니다. 투박이보다 얇은 진주 옥사는 투명하고 맑은 느낌을 주고, 춘포는 하얗고 불규칙한 결이 마치 하얀 색연필로 그린 드로잉 같아서 특히 애정하는 재료이기도 해요. 이 모든 고운 천들은 얇고 섬세한 재료이지만, 겹치고 연결되는 방식에 따라 다채로운 색감과 구조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점이 작업에서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Q. 천과 천을 겹쳐 라인을 만들어가는 쌈솔 기법은 작가님 작업에 있어 아주 중요한 언어이지요. 조각보에서 쓰이는 이 전통적인 기법을 현대적인 작업으로 이어오게 된 계기가 있나요?A. 쌈솔 방식은 예전에 규방공예를 통해 조각보를 만들면서 배우게 된 전통적인 기법이에요. 그 당시에는 조각보 자체를 만드는 과정이 재미있어서 시작했는데, 지금은 단순히 조각과 조각을 연결하는 방식을 넘어, 반복적인 라인을 만들어내는 시각적인 언어이면서, 동시에 입체적인 구조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작동한다고 생각해요. 면과 면을 연결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조를 형성하게 되고, 그 과정이 레이어를 쌓아가는 개념과도 연결되면서 지금 작업에서 중요한 방식으로 이어지고 있어요. Q. 반투명한 재료들이 빛을 만나 물성의 다양한 표정을 만들어내는 점이 참 매력적입니다. 이런 특성을 살려 기능을 지닌 '조명 작업'으로 확장하시면서, 평소의 조형 작업과는 또 다른 고민이나 과정이 있으셨는지 궁금합니다.​​A. 이전 공간에서의 보자기 작업이 빛이 스며들고 지나가는 느낌이었다면, 이번 조명 작업에서는 빛과 재료가 더 직접적으로 맞닿으면서 천의 물성과 컬러, 그리고 라인의 경계가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 같아요. 오랫동안 마음에 두고 있던 작업이었지만, 늘 프로토타입 단계에 머물러 있다가 이번 전시를 계기로 조금 더 구체화해 보았어요. 조명을 켜지 않았을 때와 켰을 때, 작업이 만들어내는 다양한 표정들이 흥미롭게 느껴졌습니다. Q. 자전거를 타고 가다 마주하는 풍경, 창문 너머 일상의 장면이 작업에 영감을 준다고 하셨어요. 이번 전시작의 바탕이 된 이미지나 장면 중, 특별히 기억에 남는 모티프가 있다면 들려주세요.​​A. 일상에서 순간순간 마주치는 풍경들을 기록해 두곤 합니다. 가지런하고 재밌게 조합된 벽돌들, 타일의 다채로운 색감들, 오래된 굴뚝의 형태들을 마음에 꾹꾹 눌러 담아 놓아요. 그리고 그러한 순간들이 스케치북과 사진첩에 차곡차곡 쌓여서 작업으로 스며드는 것 같아요. 특히 네덜란드 덴하그에 있는 Kunstmuseum을 좋아하는데, 건축가 Hendrik Petrus Berlage가 이 건물을 위해 특별히 제작된 노란 벽돌을 사용했다는 점이 인상 깊었어요. 촘촘하고 가지런히 쌓여 있는 노란 벽돌의 외관과 내부의 다채로운 타일이 만나 만들어내는 조합은 늘 저를 설레게 합니다. Q. “가지런하고 균형 잡힌 상태를 동경하며, 작업을 통해 그사이에 균형을 만들어간다”라는 작가님의 이야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작가님이 생각하시는 '가장 아름다운 균형의 상태'란 어떤 모습인가요?​​A. 가장 아름다운 균형의 상태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다만 제가 추구하는 모습이 있다면, 작업에서는 항상 완전하고 완벽하게 만들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생기는 의도되지 않은 미세한 흔들림이나 어긋남의 흔적들이 있거든요. 그런 불완전함을 자연스러움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오히려 균형에 가까운 게 아닐지 생각해요. 일상에서는 작업에만 몰두하기보다는 가족들과 시간을 보내려고 노력하는 것도 저한테는 중요한 부분인 것 같아요. 이렇게 어느 한쪽에 기울어지기보다는, 그 사이에서 계속 고민하고 마음 쓰는 과정들이 제가 생각하는 균형의 모습인 것 같습니다. Q. 벌써 2026년의 절반을 향해 가고 있네요.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작업이 있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A. 겨울에 네덜란드에서 전시를 앞두고 있어서 손바느질 작업과 드로잉 작업들을 고민하고 있어요. 드로잉을 통해 좀 더 구조적이고 다양한 표현을 계획하고 있는데요, 아직 이것저것 시도하면서 테스트하는 단계이지만 어떤 모습으로 만들어질지 무척 설레는 마음입니다. 정현지 작품전 《Side by Side by Side》는 2026년 5월 15일부터 5월 31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정현지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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