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날》 청학도방 송춘호 인터뷰

"저에게 흙은 또 하나의 언어입니다. 다듬어지지 않은 수많은 생각과 느낌까지 담아낼 수 있으니까요. 흙을 만질 때면 한없는 자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낍니다." 어떤 이에게는 글이나 말이, 또 어떤 이에게는 그림이 속마음을 전하는 매개가 됩니다. 송춘호 작가에게는 흙이 바로 그런 존재입니다. 삼십여 년 동안 흙을 만져왔지만, 여전히 흙으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일이 가장 즐겁다는 송춘호 작가. 오랜 시간에도 흐려지지 않은 애정을 읽어 내려가는 동안, 수비(水飛)를 거친 고운 흙처럼 맑고 생기로운 기운이 느껴졌습니다. 여름 끝에 불어오는 반가운 가을바람처럼 마음을 경쾌하게 만들어주었던 청학도방 송춘호 작가의 이야기를 나눕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핸들위드케어 전시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먼저 작가님과 청학도방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요.​​A. 청학도방은 하동군 청학동에 있습니다. 청학동은 제가 유년 시절을 보낸 고향이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와 작업한 지는 3년쯤 되었습니다. 지금은 하동에서 나오는 다양한 카올린(고령토)을 활용해 작업하고 있습니다. 자연을 그대로 표현할 수는 없겠지만, 자연처럼 감동을 줄 수 있는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고향인 하동 청학동에 작업실을 두고 계세요. 계곡이 흐르는 산골에 자리하고 있고, 어머님께서 운영하시는 식당 뒤편으로 작업장과 전시 공간이 이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매일 마주하는 청학도방의 풍경과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A. 청학동은 해발 800m에 자리한, 하늘과 아주 가까운 마을입니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한동안 계곡 물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는 마무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편 코골이에 적응한 아내처럼 무덤덤합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 도인촌과 삼성궁이 자연과 잘 어울려 있으며, 전통의 생활양식을 아직도 고집하며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저 역시 매일 흙을 만지며 지내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 이야기를 찾아보다 재미있는 문구를 발견했습니다. 바로 “하루를 이틀처럼!”이라는 말이었는데요. 평소 작업량이 상당하신 것으로 알고 있어요. 이 말은 언제부터 작가님의 모토가 되었나요? 실제로 하루를 이틀처럼 보내는 작가님의 작업 방식도 궁금합니다. A. 한국을 대표하는 세계적인 조각가 문신 선생님을 개인적으로 존경합니다. 마산에 있는 문신미술관 입구에 이런 문구가 있습니다. “서민처럼 생활하며, 노예처럼 작업하고, 신처럼 창조하리라”작업을 떠나 삶의 철학 또한 작가로서 무척 공감이 되었습니다. 물론 노예처럼 작업을 할 수는 없지만, ‘하루를 이틀처럼’이라는 말은 주어진 시간을 아껴 최대한 작업에 집중하자는 뜻으로 쓰고 있습니다. 그래도 하루는 하루일 뿐이죠. (웃음) Q. 이번 전시의 제목은 《흙과 나날》입니다. 작가님께서는 고등학교 진학 과정에서 무심코 내린 선택이 도예가로 살아가는 계기가 되었다고 말씀하셨지요. 당시에는 예상하지 못했던 선택이 오랜 시간 이어져 지금의 작업에 이르렀다는 사실을 돌아보면 어떤 기분이 드시나요? A. 중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의 권유로 진학한 고등학교에서 흙을 처음 만지게 되었습니다. 우연한 선택이었어요. 어린 시절의 저에게 흙은 즐거운 놀이이자 재미였던 것 같습니다. 그 후 30년이라는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변화와 어려움도 있었지만, “피할 수 없다면 즐겨라”라는 마음으로 흙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특별히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작업이 있을까요?A. 도자기를 성형할 때 물레는 좌우대칭의 원형을 만드는 데 가장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원형으로 만들어진 기물을 사각 형태로 변형하고, 사방을 각기 다른 문양을 조각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문양과 형태가 보이기 때문에, 기물을 돌려가며 보는 재미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Q. 하동과 합천 지역에서 나는 카올린을 활용해 작업하고 계신데요. 산에서 채취한 원토를 여러 차례 수비해 몸흙뿐 아니라 화장토와 유약으로도 사용하신다고요. 각각의 흙이 가진 특징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임에도 직접 채취한 지역의 흙을 사용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A. 오랜 시간 흙을 만지고 실험하며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모든 흙은 훌륭하다”라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동에는 다양한 카올린이 있습니다. 직접 채취하고 수비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흙마다 다른 성질을 알아가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제게는 또 하나의 재미이자 기대입니다. Q. 작가님의 작업 중 특히 박지기법으로 새긴 식물 문양이 눈에 띕니다. 파초나 호박, 엉겅퀴 같은 식물 문양은 분청사기의 오랜 전통적인 소재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문양을 작업의 주된 소재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A. 지금은 분청사기의 일곱 가지 장식 기법의 하나인 박지 기법을 활용해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문양의 소재를 선정할 때는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상징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결국 제가 보기에 마음에 드는가도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예쁘다고 느끼는 문양을 변형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Q. 문양뿐 아니라 형태에서도 작가님의 재치가 느껴집니다. 어떤 다관은 요술램프를 떠올리게 하고, 어떤 잔에는 별 하나가 콕 박혀 있기도 하지요. 새로운 형태에 대한 아이디어는 주로 어디에서 얻으시나요?A. 작업에 있어 형태와 색, 질감은 어느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요소입니다. 하지만 다관은 형태에서 오는 조형성과 기능성이 특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때로는 많은 문양의 조각이 형태를 가릴 때도 있지만, 지금의 저는 많은 것을 담고 싶습니다. 언젠가는 비우는 시간이 올 것이라 생각합니다. Q. 차도구 작업에 꾸준히 매진해 오셨고, 예술성과 기능성을 인정받아 여러 수상 경력도 쌓아오셨습니다. 작가님이 차도구에 깊이 빠져들게 된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요? A. 대학원 시절까지는 큰 규모의 오브제 작업을 주로 했습니다. 그러다 다도를 배우던 아내가 시험에 쓸 다구가 필요하다고 해서 처음으로 백자 다구를 만들어줬습니다. 나름대로 형태에 변화를 주면서 재미도 더했고요. 그런데 시험을 마치고 돌아온 아내에게 물어보니, 사람들이 “이런 건 못 쓰는 그릇”이라며 어디서 샀냐고 했다는 거예요. 당시에는 도저히 이해가 안 갔습니다. ‘그저 물을 담아 차를 우리면 되는 그릇 아닌가?’ 싶었죠. 이후 졸업하고 지역으로 내려와 찻그릇을 만드는 선배들을 만나면서 다구를 다시 보기 시작했습니다. 몇 년 동안 선배들을 찾아다니며 배우고, 일본과 중국을 오가며 여러 그릇을 살펴봤습니다. 그렇게 만들고 배우기를 반복하면서 지금까지도 제 다구를 조금씩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흙으로 만드는 모든 기물은 저에게 즐거움 그 자체입니다. 하지만 차도구 중에서 다관은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갖습니다. 다관은 몸통과 물대, 손잡이, 뚜껑, 뚜껑 손잡이를 각각 따로 만들어 하나의 형태로 조립합니다. 이 과정에서 조형미와 기능성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함께 잡아야 해요. 그 어려움이 있는 만큼 만드는 즐거움도 큽니다. Q. 차도구는 형태만 아름다워서는 좋은 도구가 되기 어렵습니다. 출수와 절수부터 찻물의 흡수 정도까지 세심하게 살피신다고 들었어요. 작가님이 생각하는 좋은 차도구는 어떤 것인가요? A. 저는 미(美)와 용(用)이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다관이 좋은 차도구라고 생각합니다. 흔히 다관에 있어 3수, 즉 절수·출수·금수 와 3평, 즉 물대·손잡이·몸통의 높이를 맞추는 것을 중요하게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제 생각은 조금 다릅니다. 디자인과 작가의 의도에 따라 때로는 그 기준에서 조금 벗어나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조금은 불편하다는 걸 알면서도 하이힐을 신는 마음과 비슷하달까요. Q. 국내뿐 아니라 중국 등 해외에서도 전시와 교류 활동을 활발히 이어오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여러 나라의 도자 문화를 접하면서 어떤 차이를 느끼셨나요? A. 중국과 대만, 일본은 가까운 나라이지만 지리와 환경, 문화의 다양한 차이로 인하여 각기 다른 도자 문화를 발전시켜 왔습니다. 우리의 분청사기 역시 고려의 청자와 조선의 백자 사이를 지나며 다양하게 발전하고 전승됐습니다. 지역의 문화와 성향, 환경에 따라 서로 다른 형태와 장식 기법이 생겨났고, 그것이 오랜 시간 이름 없는 도공의 손에서 손으로 이어져 왔습니다. 요즘은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다"라는 말을 새삼 실감하게 됩니다. Q. 분청의 따뜻한 인상이 유독 잘 어울리는 가을에 《흙과 나날》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A. 새롭고 재미있는 작업을 선보이고 싶다는 마음이 있지만, 작업이라는 게 늘 앞으로만 나아가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때로는 퇴보하기도 하고, 진일보하기도 합니다. 작가는 시대를 앞서가야 한다는 말이 있지만, “대중없는 작가는 공허하다”라는 말도 있지요. 조금은 부족하지만, 대중과 소통하며 시대를 반영할 수 있는 도자 작업을 하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청학도방 송춘호 작품전 《흙과 나날》은 2026년 9월 18일부터 10월 4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송춘호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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