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주 콜렉션을 준비하며 이따금 어떤 얼굴들을 머릿속에 그려보곤 했습니다. 자신의 속도와 보폭으로 다양한 층위를 쌓으며 살아가는 우리 주변의 동료와 친구들입니다. 귀하고 소중한 날 지어 입은 명주 옷이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의 매일 매순간을 기념하는 조용한 후광이 되길 고대하며,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히 활동하는 4명의 동시대 여성을 만나보았습니다. 명주로부터 시작된 그 이야기를 여기 함께 나눕니다. 《Layered on Layers》 Interview Series01. Studio Ohyukyoung 오유경 대표02. 두오모 허인 셰프03. 박선영 컬럼니스트&모더레이터&오거나이저04. 믹히 타투이스트 Q. 뜻밖에도 명주를 매개로 인사를 드리게 되었어요. 《Layered on Layers》 전시를 준비하며 명주 옷을 입고 일상을 누비는 누군가의 얼굴을 떠올리곤 했는데 그중 한 사람이 바로 허인 셰프님이였습니다. 자기 소개를 부탁드려요. ‘두오모’ 사장이죠. 요리하는 사람이자 두오모를 운영하는 사람. 사람들은 오너 셰프라는 말을 쓰는데 제가 썩 좋아하는 말은 아녜요. 맞는 말이기는 한데, 지금은 두오모 사장으로 불리는 게 더 편한 상황이 됐어요. 코로나를 겪으면서 운영이 힘들다 보니 관리에 신경을 더 쓰고 있죠. 식당을 해보니까 음식만 파는 곳이 아니더라고요. 여러 관계가 엮여 있으니 그걸 다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이 ‘오너’더라고요. 코로나 기간 동안 많이 배웠어요. 이전까지는 이렇게 버겁지 않았거든요.(웃음) 코로나 상황으로 혹독한 훈련을 겪으며 오너 역할을 하느라 요리사로 못 살았죠. Q. 두오모를 시작하기 전 다양한 일을 해오셨던 걸로 알고 있어요. 과거를 묻지 마세요.(웃음) 인생이 너무 갈짓자라. 마지막으로 다닌 회사는 디자인 회사였어요. 저는 에디터 출신이에요. 인터뷰도 하고 책도 기획하고. 공공디자인을 하는 회사에서 마침표를 찍은 뒤, 뭔가 나에게 재밌는 선물을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때 제가 몸이 너무 안 좋아서 1년 동안 쉬면서 내가 제일 하고 싶었던 걸 하게 해주자 한 게 요리였어요. 그런데 여기서 학원을 다니는 것만으로 될 일이 아니라, 떠나고 싶은 거예요. 그래서 이탈리아로 유학을 가게 된 거죠. 사실 돌아와서 식당을 할 생각은 전혀 없었어요. 원래 하던 일로 돌아가겠거니 생각하고 있었는데, 기회가 계속 생겨 여기까지 왔네요. Q. 특별히 서촌에 자리를 잡은 이유가 있으신가요?이 동네를 정말 좋아했어요. 당시만 해도 서촌에는 정말 아무것도 없었죠. 지금은 문을 닫은 ‘효자동 레시피’라는 식당에 가려고 종종 서촌을 왔는데 아무것도 없어서 좋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이 동네에 자리를 잡게 된 거죠. Q. 두오모라는 이름도 인상적이에요. 이국적인 뉘앙스를 풍기기도 하고요. 식당 이름을 두오모라고 지은 건 제가 이탈리아에서 지내는 동안 눈물을 가장 많이 흘리고, 위로를 받았던 곳이 바로 성당이었기 때문이에요.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작은 성당 안에 들어갔을 때 느끼는 위로 같은 게 있었어요. 저에게 ‘밥’은 집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듯 해요. 엄마의 가정식 이런 게 아니더라도, 밥이란 위안 없이 맛과 보기 좋은 예쁨만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했죠. Q. 그런 배경 때문인지 두오모는 단순히 맛있는 음식을 먹기 위한 식당이 아니라 문화 공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단순히 허기를 채우는 공간 이상의 느낌이 강하달까요. 감사합니다. 저는 음식이라는 게 여행과 닮았다고 생각해요. 여행을 좋아하는 분들 대부분은 다른 나라의 문화를 누리고, 읽고 먹는 행위에 열려 있는 사람이 아닐까 싶어요. 저 역시 여행을 몹시 좋아하고 그 나라의 음식을 먹는 게 여행과 맞닿아 있다고 생각해왔고요. 음식이 그런 역할을 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어요. Q. 애초에 식당을 열 계획은 없었다고 하셨는데 생각이 바뀐 사건이나 계기가 있을까요? 이탈리아에서 한국으로 돌아오기 바로 전, 올리브 농장에서 2주 정도 일을 했어요. 산꼭대기에 있어서 시장을 가기 무척 어려웠는데요. 식재료를 따로 구매하지 않아도 텃밭에서 나는 작물들, 그리고 올리브 농장에서 운영하는 작은 숙소에 머물다 간 손님들이 놓고 간 파스타 같은 식재료만으로도 먹을 것이 충분했던 기억이 있어요. 충만한 시간이었죠. 마침 그때가 올리브를 수확하는 시기였는데, 제가 식사를 준비해가면 이탈리아 아저씨, 네덜란드와 캐나다에서 온 우퍼(농가에서 일손을 돕는 대신 숙식을 제공받는 봉사자)들과 상자를 엎어 놓고 밥을 먹었었요. 그 기억이 너무 좋았어요. 음식을 먹는 행위는 이런 것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했죠. 어쩌면 내가 한국으로 돌아가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용기를 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고요. 식당이 음식을 먹는 장소인 동시에 이런 내 마음을 알아주는 사람이 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실제로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레 그런 분들이 많이 와주셨고 또 단골분들도 이해해주셨죠. 제가 뭔가를 내세우지 않아도 알아주는. 시간이 많이 걸리기는 했지만 여기 오기까지 그런 생각이 있었던 것 같아요. 그걸 느껴주시면 너무 좋은 것이고요. Q. 기억에 남는 손님이나 에피소드가 있다면 들려주세요.서촌 주변에 계신 분들이 주로 오세요. 갤러리스트, 건축가, 디자이너 분들도 많이 오시고요. 덕분에 이 동네에서 사랑받고 있다는 생각을 작년에 많이 했죠. 그분들이 없었으면 문 닫았을 거예요. 동네 식당의 불빛이 이 골목을 오가는 단골들에게 위안이 되고, 불이 꺼져 있으면 안부 전화가 오고. 저는 그런 게 좋아요. 그중에서도 가장 기억에 남는 건 꼬마 손님이에요. 두오모를 오픈하자마자 온 네 살 정도의 꼬마였는데 그 친구가 토마토를 정말 좋아했나 봐요. 보통 브루스케타는 빵에 서너 가지 재료를 토핑하는 메뉴인데, 전체를 토마토로 토핑해달라고 하더라고요. 이 친구는 지금도 와요. 거의 한 달에 두 번 정도는 보는데 많이 컸죠. 고등학교에 가려나? 키도 살짝 올려 봐야 할 만큼 컸고요. 그런 시간을 지켜보는 게 너무 좋아요. 사실 어른들의 변화는 크지 않아서 느끼기가 어렵잖아요. 10년을 봐도 여전한 것 같은데 아이들의 변화는 눈에 금방 들어와요. 한번은 버섯을 못 먹는 아이의 크림 파스타에 버섯을 넣어보았더니 “이 식당은 신기해. 나는 버섯을 못 먹는데 버섯을 먹게 해” 하더라고요. 그 말에 감동 받았어요. 큰 칭찬이잖아요. 자기는 가지를 싫어하는데 두오모는 가지가 맛있다고 하는 등 어린이 단골 손님들이 좀 있어요. 저는 그 친구들의 칭찬이 너무 좋아요. 최근에는 앉자마자 “늘 먹던 걸로 주세요”라고 말하는 초등학교 2학년 단골 손님도 있었어요. 그런데 그 아이가 두오모 파스타를 온 학교에다 소문냈나 봐요. 그 친구가 왔다 가면 한동안 그 또래의 아이들이 엄마랑 와서 같은 메뉴를 시켜요. 그럴 때 물어보고 싶어요. “너 율이 친구니?” Q. 2008년에 두오모를 여셨어요. 한 자리에서 14년 동안 식당을 끌고 올 수 있었던 원동력은 무엇일까요?곰 같은 힘? 딱히 다른 거 할 생각이 없어서.(웃음) 사실 정말 이렇게 오래 할 줄 몰랐어요. 아주 작은 식당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는데 작지 않더라고요. 작은 일이 아니었어요. 가볍게 생각했다가 된통 코를 꿴 거죠. ‘늘 가도 한결같은 맛이야’라는 소리를 들으려면 계속 잘해야 하는 거잖아요. 늘 비슷해라는 말을 듣기 위해 계속 실력을 쌓는 거죠. 그렇게 시간이 쌓이다 보니 여기까지 온 건데요. 사실 언젠가 일본과 스페인에 가서 요리를 배운 뒤 일본식 두오모, 스페인식 두오모를 해나가는 게 꿈이기도 해요.(웃음) Q.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가요?1년 반 넘도록 코로나가 유행하는 상황을 겪는 동안 사실 지지 않으려고 했어요. 일상을 계속 유지하는 것. 하던 걸 하는 거죠. 영화도 보러 가고, 전시도 보러 가고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소홀하지 않으려고 엄청 애를 썼어요. 그런데 굉장히 힘들더라고요. 그 일상을 계속 유지할 만큼 제 에너지가 안 되는 거예요. ‘TWL에서 전시를 한다’, ‘누가 영화를 만들었다’ 하는 이 모든 일들이 정말 애를 써서 하는 것이거든요. 저도 마찬가지지만 누구 하나 기쁘지 않은 상황에서 어쨌든 아름다운 것을 유지해 나가려는 사람들을 보는 게 힘이 됐어요. 지금은 무섭다기보다, 무너지지 않으려고 해요. 전시가 있으면, 보고 싶은 공연이 있으면 용기를 내어 가려고 해요. 5인 이상 집합금지가 시행됐을 땐 그게 저를 너무 우울하게 만들었는데 거기서 올라오기까지 시간이 걸렸어요. 이번에는 무너지더라도 살살 무너지고, 나를 달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일상이 무너지지 않게 돌보는 것. 걱정을 미리 하지 않으려고 하는 것이 요즘 제가 마음을 쓰는 일입니다. Q. 마지막 질문이에요. 만약 어디든 갈 수 있는 상황이라면 명주 옷을 입고서 가보고 싶은 장소가 있으신가요?명주 옷이 사진으로 보는 것보다 눈으로 직접 보는 게 훨씬 더 아름다워요. 제주도 바닷가에서 입으면 너무 좋을 것 같아요. 가까운 일본도 가고 싶고요. 여행 갈 때 평소와 달리 멋을 많이 내잖아요. 이 옷을 입고 여행을 가고 싶습니다. ※ 본 인터뷰는 지역으로부터 가치 있는 물건과 이야기를 전하는 ROBUTER에서 진행했습니다. 《Layered on Layers - Studio Ohyukyoung 2021 Myungju Collection》은 현재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