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아른거리는 3월의 초입, 후쿠시 하루카 작가님과 서면으로 긴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겨우내 다가올 봄을 떠올리며 진행한 작업을 면면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독특한 작업 방식부터 유리를 통해 마음속 심상을 그리는 다감한 시선까지. 한 편의 서정시를 닮은 작가의 세계를 여기 함께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어느덧 길었던 겨울이 저물고 봄이 왔네요. 최근 일과는 어떻게 보내고 계시나요?A. 지난 겨울 내내 봄을 동경하는 마음을 품고 전시를 준비했어요. 세계적으로 큰 걱정을 안고 있는 요즘이지만, 힘든 시기가 하루빨리 지나고 모두에게 따듯한 봄빛이 쏟아지길 기원하며 작업에 임했습니다. Q. 작품의 주제도 평온한 봄이 찾아왔으면 하는 바람을 담은 ‘Real Spring’이지요. 이번 작업에 관해 전반적인 소개 부탁드립니다.A. 주로 식물에서 모티브를 얻었습니다. 식물 고유의 생명력을 떠올리며 색과 형태를 조합하는 과정이 즐거웠어요. 봄을 맞이한 식물과 정경을 그리다 보니 포근한 색감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네요. Q. 다양한 공예 장르 중에서 ‘유리’를 택하신 계기나 이유가 궁금해요.A. 처음에는 투명하고 덧없는 모습에 이끌려 유리를 배우기 시작했어요. 다룰수록 투명도나 색채를 섬세하게 조절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았고, 자연스레 저만의 표현으로 연결해 나가게 되었습니다. Q. 작가님의 작품은 ‘투명하고 매끄러운’ 유리의 전형적인 이미지에서 한 걸음 물러나 있는 듯한 느낌이 들어요. 매트하면서도 햇볕 아래 두면 은은하게 빛나는 표면, 마음속 풍경을 그대로 떠낸 듯한 형태와 색감… 그림이나 조각이 연상되기도 하고요. 작업의 모티브는 어디서 얻으시나요?A. ‘투명하고 매끄러운’ 상태보다 희미하게 빛을 머금은 듯한 유리의 질감이 서정적이면서도 좋았어요.작업은 주로 일상에서 접하는 풍경이나 유년 시절부터 품어온 기억에서 출발합니다. 인상적이었던 이미지나 사건이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최근에는 구체적인 모티브를 두고 형태를 제작하거나, 추상적으로 색을 조합해보면서 탐구하는 기분으로 작업하고 있어요. Q. ‘파트 드 베르 Pâte de verre’ 기법에 관해서도 이야기 나누어보고 싶습니다. 원형이 되는 소조를 빚고, 유리 가루를 넣어 가공하는 흐름이 독특하면서도 흥미로워요. 자세한 작업 과정이 궁금합니다.A. 먼저 소재는 다양한 색채의 유리 가루나 유리알을 사용합니다. 설탕 가루만큼 작은 것부터 정제염과 비슷한 입자까지 다양한 크기를 섞어 쓰고 있어요. 월 행잉 작품의 경우 손으로 스케치를 그리는 과정부터 시작해요. 마음속 이미지를 그려내면, 스케치를 디지털화한 후 색감을 어떻게 구현할지 고민합니다. 디지털 파일로 바꾸는 것은 무게를 계산하기 위해 꼭 필요한 과정인데요. 구체적인 크기와 무게를 정하고 나면 스케치 파일을 인쇄한 후 폼보드로 작품의 원형을 만듭니다. 그다음 원형을 토대로 석고를 뜨지요. 석고 틀에 앞서 말한 유리 가루의 농도를 조절하여 채운 후 전기가마에서 하루 이틀 소성합니다. 마무리는 유리를 다듬는 공구로 표면을 세심하게 깎아내고, 은은한 윤기를 내기 위해 가마에 넣어 재소성하는 단계를 거쳐요. 이후 작품에 맞게 흰색 철사를 고정하여 완성합니다. Q. 같은 기법을 사용하는 다른 작가분들의 작업과 차별점은 무엇일까요.A. ‘파트 드 베르’ 기법을 사용하면, 유리 알갱이가 녹을 때 공기를 함유하면서 부드럽고 섬세한 빛을 띠게 되는데요.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모호하지만 친숙한 기억 속의 장면이 떠오릅니다.이 기법을 기반으로 유리의 선과 평면적인 형태를 이용해 그림을 그리듯 표현하는 점이 저만의 특성이 아닐까 싶어요. Q. 공중에 떠 있는 듯한 <Hang Series>가 인상적이에요. 액자처럼 걸 수 있는 유리라는 점도 재미있고, 프레임이 없어 여러 점을 함께 배치해도 연결된 작품처럼 조화롭습니다. 특별히 액자 형태를 고안하신 배경이 있나요?A. 이전 작업으로 브로치를 제작했던 것에서 영감을 받았어요. 브로치를 여러 개 장식하는 것처럼, 벽면에 유리 조형들을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두고 즐길 수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습니다.패널 액자는 여백을 한정하여 작품의 서정성을 강화하기 위해 고안한 방식이에요. 프레임 없이 부유하는 것처럼 보이는 작품, 액자로 인해 회화적으로 보이는 작품 모두 공간에 맞추어 선택해주시면 좋을 것 같아요. Q. 앞으로 계획하신 작업이 있다면 들려주세요.A. 최근 몇 년간 <Hang Series>를 꾸준히 제작해왔습니다. 월 행잉 작품을 기반으로 새로운 시도를 조금씩 더해보고 싶어요.이번 전시에서는 신작으로 플레이트와 액세서리도 준비했습니다. 올해는 음식이나 물건을 둘 수 있는 그릇 형태의 작품도 연구할 예정이에요. Q. 서울에서 열리는 작가님의 첫 개인전입니다. 관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으실지요?A. 안녕하세요. 한국 관람객 여러분. 처음 인사드립니다. 좋은 인연으로 한국에서 전시를 할 수 있게 되어 감사한 마음입니다. 제 유리 작품이 여러분의 일상에 작은 색채를 더해줄 수 있다면 매우 기쁠 것 같아요. 다가오는 이 봄이, 경쾌하고 밝은 기억으로 함께하기를 바랍니다. 《봄의 휘파람 - 후쿠시 하루카 작품전》은 2022년 4월 3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