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열린 국내 첫 개인전에서 많은 사랑을 받았던 후쿠시 하루카 작가님이 두 번째 전시의 시작을 맞아 한국에 방문했습니다. 겨울이 물러간 자리에 비스듬히 스미는 봄빛을 지켜보며 그간의 안부와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함께 나누어보았어요. 싱그러운 봄을 시작으로 사계절이 순환하는 풍경을 고스란히 떠낸 빛의 장면들. 그 반짝이는 순간의 이야기를 모아 이 자리에 나눕니다. Q. 안녕하세요. 《봄의 휘파람》 전시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지난 한 해 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A. 작년에 열린 개인전은 제 주변에서도 반응이 컸어요. 많은 분이 참 멋진 전시였다고 말씀해주셨습니다. 올해도 좋은 기회로 다시 만나 뵙게 되어 기뻐요.개인적으로 특별한 일이라면 작은딸이 가장 먼저 떠오르네요. 올해 2살이 되었는데 1년 새 스스로 걷기 시작하고, 함께 대화도 할 수 있게 되었답니다. 하루하루가 바쁘게 흘러가지만, 가족들의 도움 덕에 작품 활동을 이어 나갈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에요. Q. 전시의 첫날이 본격적으로 낮이 길어진다는 ‘춘분’이에요. 두 번의 전시 모두 봄의 초입에 시작하게 되어 더욱 각별한데요. 이번 작업의 주제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A. 팬데믹과 육아의 일상을 지나며 가까운 사물에 관심을 두고, 지난 기억을 되새기는 일이 많아졌어요. 그런 의미에서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시나 구절에서 떠오르는 장면을 축으로 삼아, 봄의 계어*를 따라 작품을 제작했습니다.또 ‘순환’도 작업할 때 자주 떠올리는 주제예요. 올해는 계절의 흐름, 반복되는 생활 속 풍경 등 순환을 테마로 한 작품이 많아졌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음식을 모티브로 만든 작업을 만나보실 수 있는데, 먹는 것도 순환하는 요소 중 하나라고 생각해요. * 계어(季語): 일본의 시 '하이쿠', '하이카이', '렌가'에서 춘하추동의 계절을 나타내는 단어 Q. 〈Watery Sky〉,〈Baked Sweet Happiness〉… 시각적으로도 아름답지만, 제목과 함께 감상하다 보면 개인적인 기억이나 이야기가 떠오른다는 점이 재미있어요.A. 제목은 작품을 완성하고 나서 결정해요. 평소에는 일본어 작품도 있지만, 이번 전시에서는 전달이 쉽도록 모두 영어로 지었어요. 하이쿠에 쓰이는 계어도 정경이 떠오르는 영어 단어를 찾아 만들었습니다. 각자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품을 감상해주신다면 더욱 기쁠 것 같아요. Q. 작품을 제작할 때 가장 마음을 기울이는 부분은 무엇일지 궁금해요.A.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은 질감이에요. 크게 보면 색채나 모양도 있겠지만, 서정적인 이미지를 만드는 ‘파트 드 베르Pâte de verre’ 기법 특유의 질감이 제 의도를 잘 전해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작품 제작 과정 중에서도 유리가 구워지고 난 뒤 표면과 선을 깎아 다듬는 시간이 가장 흥미로워요. Q. 작업을 하실 때 일본의 정형시 하이쿠 俳句에서 영감을 받으신다고 들었어요. 마음속 심상을 함축하는 시와 공예 사이에는 닮은 점이 참 많은 것 같습니다. 작업을 하면서 기억에 남았던 시가 있나요?A. 말씀하신 대로 시와 공예 사이에는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시’는 제게 동경의 대상이에요. 사실 특별히 ‘하이쿠’에 관해 잘 아는 것은 아니지만, 오랜 세월에 걸쳐 일본의 풍경을 기록한 문화라는 점에 끌렸어요.월 행잉 시리즈 중에서 〈Spring Sea〉가 계어 「봄 바다」에서 착안한 작품이에요. 일본의 시인 요사 부손이 지은 「봄 바다 온종일 쉼 없이 출렁이네」라는 하이쿠가 있는데, 온화한 빛과 느긋한 시간을 느낄 수 있는 구절이라 매우 좋아합니다. 이런 정경을 떠올리면서 만들었어요. Q. 이번 전시에서 새롭게 선보이는 시리즈가 있다면 소개해주세요.A. 손을 매개로 물건의 여정을 전하는 핸들위드케어를 생각하며〈Hand Flowervase〉시리즈를 만들었어요. 어린아이가 들꽃을 따서 건네는 장면을 담은 작품입니다. Q. 올해 새로운 작업 계획이 있다면 들려주세요.A. 감사하게도 올해 일본과 대만에서 각각 전시가 예정되어 있어 새로운 작업에 매진하고 있습니다. 다가올 여름 전시에서는 그릇이나 장신구를 비롯해 신작을 발표하게 되어 여러모로 기대가 돼요. 또 공방을 이사한 지 벌써 3년이 지나서 크게 리모델링을 계획하고 있습니다. 전시가 일단 진정되는 (웃음) 늦여름 무렵에 할 생각이에요. 《봄은 비스듬히 - 후쿠시 하루카 개인전》은 2023년 4월 9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