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장마의 빗소리가 가득한 7월, 전시를 앞두고 박종민 작가님과 긴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도예에 입문한 뒤로 현재까지, 다양한 작업과 실험을 이어오며 묵묵히 걸어온 그간의 여정에 대한 이야기를 여기 나눕니다. Q. 안녕하세요. 작업실의 큰 창으로 보이는 풍경이 아름다워요. 봉화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A. 작업실이 집과 마당을 곁하고 있다 보니 대부분의 시간을 작업실에서 보내고 있습니다. 하루 두 끼 식사를 하고, 식후에는 말씀하신 통창을 마주한 채 차를 한 시간 정도 마셔요. 차를 마시면서 작업 구상을 하거나 최근 2, 3년 간은 유튜브 등을 통해 여러 작가님들의 작업들을 보면서 공부하는 날들이 많아졌어요. 이 때가 제게는 유일한 휴식이자 노는 시간이구요. 그 외에는 밤 늦게까지 실제 작업으로 채워집니다. 일주일 단위로는 월요일, 목요일, 토요일에는 근력 운동이, 화요일, 금요일에는 스트레칭이 일과에 포함되어 있어요. 화요일과 금요일은 서예 수업에 참석하는 날이기도 해서 시간을 잘 쪼개어 움직여야 작업을 충분히 할 수 있습니다. 작업을 오래도록 잘 하고 건강을 지키려고 하는 운동과 서예 등인데, 루틴을 우선하다보니 작업이 뒤로 밀리는 경우도 종종 있어서 가끔 의문이 들기도 해요. 계절로 보면 겨울이 조용히 작업하기에 좋구요. 봄, 가을에는 그림 작업을 위해 스케치를 모으거나 하는 비중이 늘어납니다. 작업실이 해가 짧고 추운 곳이라 여름에 물을 오래 만져야 하는 수비를 합니다. 길게는 이듬해까지 사용할 태토를 수비하는데, 겨우내 만들어진 재도 이 때 수비 작업을 거칩니다. Q. 이번 전시는 백자를 기반으로 문경 작업장 시기의 초기작업부터 현재까지, 작가님의 방대한 작업물을 선보이는 자리이기도 합니다. 직접 지어주신 전시명 《백림백산 百林白山》에 담고자 했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A. 언젠가 새벽 어스름에 백자 항아리며 완, 그릇들이 제각각의 모습으로 어울려 하얀 능선처럼 포개진 풍경을 보았습니다. ‘백산(白山)을 언젠가는 쌓아 올리겠구나. 그 즈음이 되면 내 작업들을 두고 지금보다는 덜 부끄러울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직은 백산으로 가는 길목에 작은 숲 하나(白林) 정도 만들었다고도 못하지만, 긴 여정의 목표와 함께 현 지점을 바라보는 제목으로 ‘백림백산’이라는 이름을 붙였습니다. 백산(白山)의 경치 속으로 들어가면 마냥 백색의 세계일 수는 없을 거에요. 다양한 생태와 생물들이 한 데 모여 하나의 큰 세계를 이루는 거니까요. 백림(白林)은 그래서 백림(百林)이기도 하고, 백산(白山)은 언젠가 백산(百山)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Q. 도예에 입문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재수 생활이 참 길었습니다. 7수생 이었거든요. 공부를 곧잘 하는 편이라 오히려 재수기간이 길었던 것 같아요. 웃긴 얘기지만 재수, 삼수 시기에 한가하니까(?) 아버지 일을 돕곤 했었습니다. 택시나 용달 등의 스페어 기사 역을 한 셈인데요. 이 때 들어온 선물 중에 거름망이 있는 개완과 같은 차도구를 처음 접했습니다. 잎차를 구하는 방법을 몰라서 녹차 티백을 뜯어서 잎을 넣어 우렸던 것이 처음입니다. 스무살, 스물 한 살 정도였는데, 그 때가 인터넷 카페 등을 통해서 차 모임이 생겨나거나 활성화되던 시기였어요. 차를 매개로 많은 분들을 알게 되었고 많은 분들이 어린 친구가 차 마시러 여기저기 찾아오니 마냥 예쁘게 봐주셨던 것 같아요. 전국 단위로 차 모임도 종종 있었는데 그럴 때면 부려먹기 좋은 나이였는지 항상 팽주 자리를 지키곤 했습니다. 어릴 때다 보니 없는 형편에 가진 돈을 털어 차를 구하고 나면 뿌듯함에 안도하다가도 다시 돈이 모이면 다도구를 구하게 되고, 다도구가 안정되면 다시 차를, 다시 다도구를 구하는 패턴이 이어지곤 했는데요. 그 무렵 자연스럽게 이 울타리 내에서 잘 지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지요. 차모임에 나오시는 분들 중에는 훗날 차와 관련한 업을 구상중이셨던 분들도 계셨고 나중에라도 관련하여 업을 하시게 된 분들도 계셨어요. 그냥 취미로 즐기시는 분들도 계셨구요. 저는 어렸던 탓이겠죠. 순수하게 좋아하는 차를 매개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다른 방식을 찾았고, '차가 아니면 도자기를 해보면 어떨까?' 하는 마음에 갑자기 오래 끌던 재수생활을 청산하게 되었습니다. Q. 도예 작업을 하시던 중, 청화를 공부하고자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셨어요. 유학 이후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흙 공부부터 다시 시작하셨지요. 유학을 결심하신 계기가 있으셨을까요.A. 다완을 중심으로 다도구를 좋아해서 결국 도예에 입문을 했는데, 도예를 막상 시작했더니 도예에는 물레 작업만 있는 것도 아니고 차도구만 있는 것이 아니더라구요. 좀 더 다양한 공부와 유학 준비를 위해 편입을 하게되고 오브제 작업을 했습니다. 저는 공부만 하던 사람이고 예술 쪽으로는 전혀 접점도 관심도 없던 사람이라서 한참동안 ‘정답'을 찾는 과정에 있었어요. 기술을 배우고 익혀서 최고로 평가받는 작품에 가까운 작업을 할 수 있으면 최고의 도예가겠구나 생각했습니다. 한국에서 당장 배울 수 있는 기법들이나 작업들은 어떻게든 접해봤는데, 붓 작업은 중국이나 일본으로 배우러 가야 했기에 중국의 청화와 일본의 청화들을 비교해보고 일본을 선택했어요. 지금은 조금 완화된 느낌이 있지만 제가 처음 이런 청화백자를 꺼내었을 때, 꽤 많은 분들이 제 배경으로 일본을 보시곤 했습니다. 일본에서 같이 공부하던 친구들에게 지지 않기 위해 정말 열심히 작업했을 때에는 평론가들이 제 작업에서 한국적인 부분들을 지적했었는데 말이죠. 당시의 제게 작업 외의 것이 간섭하고 보이게 되는 것은 큰 문제였어요. 한국적인 무언가를 찾게 되었고 흙에서부터 시작했습니다. 유약과 흙 실험을 하는 과정에서 흙과 유약이 바뀌니 기존의 안료보다 더 어울리는 안료를 찾게 되고, 이 흙과 안료에 어울리는 그림들을 찾게 되었습니다. Q. 백자, 분청, 철유 등의 다양한 작업은 물론 흙과 유약의 궁합, 안료와 소성 온도까지 조절하는 실험을 계속하고 계시지요. 도예를 해오신지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음에도 끊임없이 실험을 시도하는 일. 존경스러운 한편 작업장에서의 고된 시간이 떠올랐습니다. 다양한 작업과 실험을 이어가는 작가님만의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A. 욕심과 불안이 한 몫 하는 것 같아요. 계속해서 더 좋은 작업을 하고 싶으니까요. 사람이 손으로 하는 일이다보니 계속해서 다음 작업, 좋은 작업을 해도 거기에는 미진한 구석이 보이고 그 작업을 바탕으로 다음 작업이 보여요. 구현할 방법이 없다면 찾아야 하겠지요. 도재상에서 판매되는 유약이나 흙들은 저희 표현으로 ‘안정된 유약’ 등으로 불러요. 가령 1220도에서도 잘 녹고 1250도에서도 잘 녹지만 흐르는 등의 문제가 없는 그런 유약이요. 발품 팔아 흙을 캐고 수비하고 유약을 만들어서 쓴다고 하면 듣기에는 무조건 좋은 작업일 것 같지만, 이렇게 수고해서 작업을 해도 도재상에서 흙이나 유약을 사서 작업한 것보다 못한 작업들이 숱하게 나옵니다. 그러니 불안할 밖에요. 1240도에서의 기물과 1238도에서의 기물이 색감이나 질감이 다른 경우가 생깁니다. 그러면 소성 온도를 1210도부터 1250도까지 1도 단위로 구워보기도 하고 소성 분위기라고 해서 온도 곡선을 바꿔보기도 합니다. 같은 자원으로 온도를 바꿔봤더니 훨씬 나은 작업이 되는 경우도 있어요. 제가 구해온 흙과 유약 재료들에는 설명서가 없는데 같은 재료로 더 못한 작업을 만들고 있었다면 너무 부끄러운 일이겠지요. 이런 이유들로 실험과 시도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Q. 이번 작품 중에 세필로 직접 산수 山水 를 그려 놓으신 다구가 눈에 띕니다. 전사 방식이 아닌 손수 그림을 그려넣는 방식은 생산성과 효율성을 생각했을 때에 쉽지 않은 선택이었을 것 같은데요. 작업하실 때 가장 중요하게 고려하는 점이 있으실까요?A. 이건 항상 고민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충분히 고민하고 시간을 들여 도안을 짜고, 먹지 등으로 스케치만 옮기면 다른 고민 없이 작업 과정 자체에만 집중할 수 있고 도안이 자료로 남아서 아카이브도 점점 쌓이겠지요. 한 점 기물에 한 가지 도안을 직접 스케치하고 다시 수작업으로 작업하는 일은 생산과 효율에서 정말 큰 차이가 있어요. 가령 특정 다관이 만들어지면 미묘한 라인의 차이가 생깁니다. 형태가 정해지면 그에 어울리는 모티브를 떠올리거나 찾는 작업이 이어지고 생각보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많이 소요되어요. 그렇게 정해진 도안을 기물에 직접 스케치를 해가면서 크기나 위치를 잡는데 역시 미묘한 차이로 좋고 덜 좋고의 차이가 생기다보니 몇 번의 수정 과정을 거쳐요. 정확히 여기까지 한 점 작업하는 동안, 제가 먹지를 사용한 수작업을 했다면 같은 작업을 10점 이상 만들어 놓은 후였을 거에요. 이제 여기서 본 작업인 붓 작업이 들어가니까 정말 효율은 꽝입니다. 하지만 역시 결과에서도 한 점 작업 쪽이 훨씬 좋고, 스스로 작업 과정이 충만한 만큼 만족도가 높아져요. 결국 이 작업의 차이를 이해하고 알아봐주시는 분들이 있기에 이런 방식을 고수할 수 있는 것 같습니다. Q. 화선지나 캔버스가 아닌 도자에 그림을 그리실 때 기물마다 작업이 달라진다는 점은 매력적이면서도 어려운 지점일 것 같습니다. 작업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A. 수채화나 수묵화를 그릴 때에도 전용 용지들이 있는데 그 성격들이 달라요. 그리는 방식도 조금 달리할 필요가 있고 용지만 바꾸어도 그림의 완성도, 심지어 물감의 발색도 달라집니다. 흙에 그림을 그리는 방식도 그렇습니다. 흙의 종류나 입도에 따라서도 안료를 먹는 속도나 머금는 시간 등에 차이가 있어요. 그에 따라 안료를 먹이는 시간, 붓을 쓰는 방식을 달리 하기도 합니다. 여기에 유약과 불에 따라서도 전혀 다른 결과물이 되곤 하지요. 적잖게 안료나 흙의 조합의 바꾸기도 하고 그림의 방식을 바꾸기도 하면서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흙의 질감이나 색감도 제일 좋고, 유약의 톤도 좋고, 안료의 발색마저 가장 좋으면서 특색이 있는 조합을 하나 뽑을 수 있어요. 예전에는 잔을 비롯해서 다양한 기물에 작업했었는데 최근에는 가능한 다관에만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만들어서 쓰는 유약이 핵심인데, 2도 정도만 더 높게 소성하면 찻물 드는 문제는 없어지는데 완벽한(?) 조합이 무너지고 매력 없는 기물이 됩니다. 유약과 온도를 정해두면 유약을 입힌 후에 표면을 절대 비비지 말고 꾹꾹 눌러줘야 해요. 문지르면 두께가 얇아지고, 눌러주지 않으면 찻물이 너무 깊게 들어서 기물을 사용하면서 색감이 크게 변하게 되기 때문이에요. 이렇게 과정에서 몇 가지 조건들이 있다보니 특별한 경우가 아니라면 제가 자랑하는 제일 아름다운 톤의 그림은 다관에서만 나오고 있습니다. Q. 푸른색이 선명한 초기의 청화 작업 이후 근래의 청화백자는 수묵화에 가까운 느낌을 줍니다. 맑고 부드러운 농담과 자연스러운 미감에서 언뜻 동양화도 떠올랐고요. 주로 어디서 영감을 얻으시나요?A. 처음 청화를 배울 때는 청화 자체가 목적이었다기보다는 청화를 비롯한 철화나 진사 등의 하회 작업과 상회 작업 모두를 염두에 두고 배웠습니다. 청화를 전공하던 학교 분위기가 참 엄했어요. 도안에 새나 곤충 등의 생물보다 배치가 어려운 꽃과 식물을, 도안화하지 않고 직접 산과 들로 다니면서 사생하며 자연 속의 모습 그대로를 옮겨 그리도록 했었습니다. 사생하는 것이 학교를 선택한 이유이기도 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도 이 작업을 그대로 이어갔습니다. 스케치를 위해 밖으로 산책을 하고 걷는 일이 많아지면서 제가 사는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더라구요. 구석구석 다가가고 엎드리거나 쪼그려 앉거나 나무를 타는 일들이 모이다보니 주변이 전체로, 한 그림으로 보이기 시작했어요. ‘아… 나는 왜 풍경을 그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풍경을 잘 그리고 싶어져서 예전의 그림들을 공부하고 모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산수화에서는 산수화의 약속이랄지 기호가 있으니까요. 그렇게 언젠가는 제가 접하는 풍경을 그려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조금 다른 갈래로 한국적인 느낌의 흙을 찾게 되면서 당연하게도 그에 어울리는 안료를 찾게 되었구요. 안료를 찾으면서 이 바탕의 흙 느낌과 안료로 낼 수 있는 그림의 방식을 당연하게도 찾아가게 되었습니다. 이 즈음 산수화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 탓에 함께 변해갔던 것 같기도 하구요. 가끔 흙이 충분히 좋은 백자에는 낙관조차 남기기 싫어질 때가 많아요. ‘이런 기물에 굳이 그림을 그려야 한다면…’ 하고 생각하면 점점 그림이 그렇게 변해가더라구요. 특히나 찻자리 기물이기에 그림이 좋은 느낌으로 남되, 차분하고 조용한 시간에 좋은 의미로도 나쁜 의미로도 방해가 되지 않았으면 했어요. Q. “덤벙은 몸으로 그리고, 청화는 손으로 그린다”라는 작가님의 글귀가 인상깊었어요. 몸과 손의 일이 딱 떨어지게 분리되진 않더라도 분청과 청화 작업에는 차이가 있을 것 같습니다. 작업을 위한 작가님의 준비 과정이나 의식 같은게 있을지요.A. 가끔 공필화 작가들이 해갈을 위해 산수화를 그린다고 하지요. 작가 생활은 물론 건강이나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라서 그저 작업의 연장만은 아니기도 해요. 지금의 청화, 하회 작업의 완성도를 위해서는 풀어줘야 할 부분이 생기는데 제게는 가장 익숙하기도 하고 편한 방식을 찾을 수 있는 덤벙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손으로 작업하는 것은 같지만 손끝을 세우되 몸으로, 다리로 그리곤 해요. 잘 돼도 못 돼도 크게 신경쓰지 않구요. 차가 취미이기도 하고 청화 작업에 찻물이 필요해서 매 그림을 그리기 전에 차를 마시면서 기운을 차분히 합니다. 그림은 밤 늦게가 좋고, 글씨는 새벽에 쓰는 느낌이 좋더라구요. 그림을 위해 차를 마시다가 가끔 차가 맛있어서 과음하는 날에는 손이 떨려서 결국 그림을 못 그린 날들도 있습니다. Q. 세필로 한자를 적은 다관과 찻잔이 독특해요. 이 중에는 불가에서 쓰이는 문구도 있고, 가마의 소성 분위기와 흙의 정보, 유약 이름을 3열로 적은 것도 있습니다. 한문을 적은 기물을 통해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이 있을까요?A. 어떤 분들은 잔에 한자로 글자 몇 자 적어달라고 말씀하세요. 어떤 한자가 좋으시냐 물어보면 아무래도 상관 없다는 분들도 계십니다. 그러면 적당히 괜찮은 글귀들을 찾거나 하는데요. 가령, 이번에 출품된 잔 중에 ‘심화노방'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고 반대쪽에는 한 송이 꽃이 그려진 잔이 있습니다. 한 송이의 조용한 꽃은 차분하고 조용한 느낌을 주나봐요. 밤에 혼자 찻자리를 가질 때 적당한 어둠 속에서 이 잔 하나를 놓고 가만히 바라보는 시간이 좋다는 말씀을 어느 분이 해주셨어요. 차를 안 마시고 그냥 그렇게 바라보신다고 해요. 이 내용을 듣고부터 무의식중에 조금 길쭉하니 호젓한 꽃을 그리는 경우가 많아졌습니다. 아마도 촛불의 이미지를 의식하고 있는 것 같아요. 찻자리가 일상에 휴식이 되거나 일상을 살아가는 힘이 된다면, 기물도 그러했으면 좋겠거든요. 이 잔이 없는 곳에서도 잔상으로 마음에 남아 한 가닥 꽃으로, 혹은 마음 속 어둠을 물리는 불빛으로, 그렇게 작용할 수 있다면 하는 마음으로 ‘심화’라는 단어를 떠올렸습니다. 心火, 心花 어느 쪽이나 같은 의미가 되더라구요. 아무래도 한자가 자주 등장하는 책들을 뒤적이는 일들이 많다보니까요. 이와 관련된 얘기는 불교 쪽에서 찾았고, 마침 심화노방이라는 글귀가 딱 나오더라구요. ‘노방'이라는 건 ‘분노를 쫓아낸다' 정도로 읽었는데, 맑고 차분하지 못한 상태를 경계하는 내용이겠지요. 심화로 마음 든든, 안온하게 지킨다 정도로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Q. 세필화가 그려진 기물은 그 풍경이 아름다워 자꾸 바라보게 되었어요. 마치 산수화 감상하는 것 같으면서도 평면적인 그림을 볼때와는 느낌이 사뭇 달랐습니다. 한자의 필치도 그렇고요. 그림과 서예는 도자 작업과 별개로 따로 연마하시는지 궁금합니다.A. 서예는 잘 모르는 때부터도 이상하게 전시가 보이면 가서 구경하고 그랬었어요. 5년에서 10년 분기로 ‘아…그 때 배웠으면 지금은 좀 잘 쓸텐데…’ 하는 생각을 줄곧 했었습니다. 우연찮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었던 것이 어느덧 10년 정도 되었고, 곧 초서 들어갑니다! 그림은 입시를 위해 부랴부랴 몇 달 배운 것 말고는 독학인 셈인데요. 청화를 배우러 일본을 갔다고 그러면 학교에서 청화 기법을 가르쳐줄 것 같잖아요? 그냥 스스로 알아서 해야 했어요. (웃음) 종이 위 스케치와 기물 제작, 기물에 맞는 도안, 좋은 작업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정도의 도움을 주시고 청화 기법 자체에 대한 가르침은 없었던 셈인데요. 그래서 그런지 제 그림은 그림으로써는 어떤지 모르겠어요. 제 그림은 도자 작업과 별개로 볼 수는 없고 작업 도안으로써의 연장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Q. 이번 전시에서는 많은 다완을 만나볼 수 있는데, 다완을 만드실 때 가장 중점을 두시는 부분이 있을까요?A. 전시를 앞두고 기물 정리를 하다보니 다완이 많더라고요. 이 중에는 다완으로써는 쓰임이나 가치가 적은 기물들도 많습니다. 분류는 다완이지만, 찾으시는 분들께서 여러 쓰임으로 고민하고 용도를 찾아주시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어떤 다완들은 다완으로써는 가치가 적은데 반해 식기나 퇴수기로는 너무 훌륭한 기물들도 있거든요. 다완은 분명 다완으로서의 정체성이 있고 거기에는 몇 가지 기준들이 있습니다. 완벽한 다완이라고 하면 분명히 다완으로서의 크기나 형태, 사용에의 편리, 색감, 질감들을 모두 만족하는 기물이겠지요. 아직은 아쉽지만 이런 다완을 만들 수 있는 준비가 되질 못했습니다. 여전히 많은 시도와 실험을 해야 하구요. 그렇다고 해도 다완 세계에서 ‘완벽'이라는 표현은 할 수가 없을 것 같지만요. 다완은 참 특별한 그릇입니다. 익숙한 형태이면서 그 크기가 참 오묘해요. 다양한 작업을 하다보니 다완이 이렇게 특별한 그릇이 된 데에는 그 크기가 한 몫 했다는 생각을 합니다. 가령 항아리에 요변(도자기가 가마속에서 변화를 일으키는 일. 특히 유약의 변색 등)이 가득한 경우에는 굉장히 멋있지만 오묘하고 감탄할 정도로 절묘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아요. 잔처럼 작은 기물에는 이런 요변이 피해가기도 하고 생기더라도 잔을 한 가지 톤으로 덮어 버리니 역시 신묘한 느낌은 없거든요. 다완은 참 적절하달지 절묘한 크기에요, 그런 의미에서. 진부한 얘기지만 익숙한 가운데 새로운 작업이었으면 해요. 그러면서 옛것의 좋은 부분들은 점차 제것으로 만들고 싶구요. 따뜻하고 편안하고, 멋있으면 좋겠어요. 눈이, 손이, 입이 즐거울 수 있는 다완, 오래 볼수록 좋은 다완을 만들고 싶어요. Q. 전시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이번 전시에 준비한 기물들은 정말 다양하고 저마다의 빛깔이라서 개인전이 아닌 단체전을 보시는 느낌이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중에는 실험에 가까운 작업으로 만들어진 한 점 작업, 멋지지만 용도에는 맞지 않는 작업, 다완이라고 만들었지만 안울이 좁은 그릇도 있어요. 기물을 나누는 기준은 불량과 불량 아닌 것들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저는 그 또한 불량으로 볼 수 없어 아끼는 기물도 있습니다. 가령 ‘퇴수잔’의 경우 개완을 만들면서 여유 있게 만들어두었던 컵 부분으로 뚜껑이 모자라 그대로 완성된 ‘잔’입니다. 제 다관에 한 점의 잔으로 심플한 구성이 가능했고, 넉넉한 잔으로 잘 사용했었지요. 급하게 손님을 맞아야 했던 때에 잔버림용 퇴수기로 사용해보고는 이 잔의 용도는 퇴수잔이 되었습니다. 전시를 찾으신다면 기물의 가격이나 용도 등을 한 켠에 미뤄두고, 한 점 한 점 위아래와 앞뒤를 찬찬히 살펴봐주셨으면 합니다. 그렇게 저마다의 상상으로 백 가지 숲을 만들어보는 자리가 된다면 더 할 나위 없이 좋을 것 같습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작업 방향, 새롭게 시도하고 싶은 작업이 있다면 들려주세요.A. 차도구들의 완성도를 계속 높여가는 중에도 식기 작업을 해보고 싶었습니다. 전시명의 ‘백림百林 ’이라는 이름은 제가 식기 작업을 할 때 사용할 이름이기도 해요. 지금의 작업은 작업대로 더욱 아름답게, 다양한 모티브로 작업을 하게 될 거구요. 식기 작업들을 조금씩이지만 준비하고 있습니다. 한편으로는 킨츠기를 하게 되면서 예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마키에 작업을 할 수 있는 최소한의 준비가 되어어 이번에 두어 점, 부족하나마 선보이게 되었습니다. 워낙 들어가는 재료가 비싸고 작업 과정이 길어서 마음 먹기가 힘들지만 마키에 작업도 깊이 있게 다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백림백산白林百山 - 박종민 도예전》은 2023년 7월 30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페이지 보러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