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의 뒷모습과 봄의 예감이 뒤섞인 2월, 작품전 《월영유화 月影鎏畫》의 시작을 앞두고 김아람 작가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옻칠 브랜드 오트오트를 함께 운영하는 김나연 작가와 공동으로 사용하는 작업실에는 칠작업 뒤 본연의 색을 피우고 있는 기물들이 고요히 햇빛을 받고 있었어요. 긴 시간 동안 천천히 고유한 빛을 찾아가는 칠기를 만드는 과정과 작품의 배경이 된 이야기까지, 흥미로웠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먼저 간단히 소개 부탁드려요.A. 안녕하세요. 옻칠 작업하는 김아람입니다. 김나연 작가님과 오트오트를 함께 운영하고 있으며 별개로 개인 작업도 하고 있습니다. Q. 비스듬히 빛이 드는 작업실 풍경이 아름다워요. 작업실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A. 오전에 작업실로 나와서 전날 작업한 칠 작업물들이 잘 건조되었는지 문제는 없는지 확인을 하고, 점심 먹기 전까지 커피를 마시며 김나연 작가님과 이런저런 사담, 서류작업들을 합니다. 미리 먼지가 날리는 사포 작업들을 해둘 때도 있구요. 점심 이후는 대부분 옻칠 작업을 합니다. 칠작업을 모아둔 장에 물을 뿌려주고나면 작업 준비 후 칠 작업을 합니다. 보통은 4~5시쯤 마치지만 일이 많으면 저녁 10시가 넘어갈 때도 있어요. Q. 공예 중에서도 칠예의 길을 걷고자 선택하시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A. 대학 졸업하고 취직을 해야하나 잠깐 고민한적이 있었는데, 당시에 목칠 졸업작품을 너무 즐겁게 작업 했던터라 학부에서 배운것만으로는 아쉬웠었어요. 좀더 깊이 있게 배우고 더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에 대학원에 진학해서 칠예전공을 했습니다. 처음에는 가구 제작에 관심이 있어서 금속, 도자, 목칠, 섬유가 모두 포함된 학부 전공 중 목칠과 금속을 했는데, 하다보니 크기가 큰 구조나 형태를 디자인하는 것보다 작고 섬세한 작업들이 저에게 더 맞는 것 같았어요. 옻칠은 기본 재료와 기법들을 어떻게 응용하고 사용하는지에 따라 다양한 표현들을 할 수 있어서 거기에 재미를 느꼈습니다. 어느 기물에나 마감이 가능하고 그림 그리는 재료로도 쓰듯이 그 자체로 이미지를 만드는 재료이기도 합니다. 옻칠 작업을 하며 재료가 가진 본연의 이미지로 어떤 이미지를 만들까 고민했어요. 저는 광택의 정도에 따른 느낌이 다르고, 투명칠을 쓰는지 흑칠을 쓰는지에 따라서도 달라지는 옻칠만의 미묘한 색과 온도의 차이를 좋아했던 것 같아요. 자개도 뚜렷한 하나의 색이 아니라 면에 따라 각도에 따라 조금씩 달라지는 색이나 광택이 좋았구요. 경계가 명확하게 나뉘지 않지만 풍부하고 자연스러운 톤의 재료들로 빛이나 음영들을 표현하는 작업을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Q. 이번 전시 대표작 중 하나인 달 접시 시리즈의 첫인상은 신비로움과 섬세함이었습니다. 칠기의 색은 깊고 어두운 것이 특징인데, 표면에서 빛나는 금속분은 멀리서 반짝이는 별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실버 색상의 경우엔 들판에 무리지어 핀 꽃들이 떠오르기도 했고요. 작업 모티프나 동기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A. 빛과 관련된 이미지는 결국 자연물에서 마주하게 되잖아요. 여행을 가거나 집 근처 산책을 하면서 보는 장면들이 쌓여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오래된 성곽에 해질 때쯤 보이는 돌들이 샛노랗게 보여요. 흐린날 겨울 제주도 바다 풍경은 돌도 검정, 바다도 반짝이는 짙은 회색, 하늘도 회색이고요. 메마른 갈색의 넓은 산들은 삭막하면서도 나무의 색들이 제각각이라 따뜻한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작업 전에 평소 관찰한 이런 이미지들과 어울리는 어떤 단어를 떠올리기도 하고 관련 이미지들을 수집하기도 해요. Q. 한편, 목심칠기인 합 작품들은 어떤 부분을 중점에 두고 작업하셨는지 궁금해요.A. 자연물을 볼 때 오랜 시간이 쌓여서 만들어진 우연한 이미지들에 매력을 느낍니다. 제가 표현하는 질감에도 그런 깊이들이 담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일부러 주석분말 밑 칠을 거칠게 바르거나 굵은 모래를 쓰고, 많이 갈아내거나 덜 갈아내어 거칠거나 매끄러운 질감을 표현합니다. 목심칠기의 전체적인 갈색 톤은 옻칠의 갈색빛에서 오는 것인데요. 주석분은 회색이지만 그 위에 바른 옻칠의 색이 은회색을 바랜 금빛, 메마른 회색과 같은 여러 색으로 보이게 합니다. Q. 달접시 시리즈를 만드는 방식인 협저탈태기법은 틀을 만든 뒤 토분을 쌓아올리거나 깎아내고, 삼베와 금속 작업, 옻칠,건조 과정을 거치다보면 2-3개월의 시간이 소요된다고 들었어요. 작업하시면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요. A. 에피소드는 아니지만 작업하면서 드는 생각이라면, 형태는 같은 작업의 반복이라 머리는 비워지는데 체력적으로 힘든 것 같아요. 하나를 만드나 열개를 만드나 같은 방법이니 할 수 있는한에서는 최대한 만드려고 하는데 무리해서 수량을 늘리면 집에 갈수가 없어서 마음이 굉장히 급해집니다. 그 외에, 석고틀에서 굳힌 옻칠을 떼어낼 때 굉장히 후련해요. 석고들을 물 속에 넣을 때 이형제를 발라두어서 쉽게 떨어지게 하거든요. 물에 넣으면 뽀글뽀글 물 먹는 소리가 요란하게 나요. ‘틀이 깨끗하게 잘 떨어져야 다음 작업이 수월할텐데’ 생각하면서 옻칠작업을 분리하는 것이 긴 작업 과정 중에서도 기억에 남네요. Q. 한편, 이번 전시에서는 김아람 작가님의 개인 작업 외에도 김나연 작가님과의 공동 브랜드인 〈ott ott〉의 신작 옻칠반도 만나볼 수 있습니다. 개인 작업과 공동 작업의 가장 큰 차이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A. 두 작업은 접근 방식이 전혀 달라서 결과물도 다른것 같습니다. 공동작업은 김나연 작가님과 처음 오트오트를 시작할 때 가격이 합리적이고 사용도 쉬운 옻칠제품을 만들자는 뚜렷한 목표가 있었기 때문에 효율적인 면들을 많이 고려해서 제품을 제작합니다. 디자인도 심플하게 하려고 하고요. 직접해야 하는 옻칠은 가능한 선에서 과정을 단순화하고 백골(나무)은 일정 수량 균일하게 생산할 수 있도록 노력합니다. 손이 많이 가는 옻칠 장식들은 아쉽지만 자제하는 대신, 기본적인 옻칠의 매력을 알수 있도록 색상이나 접칠(옻칠을 닦아내는)작업들로 보여주려고 합니다. 작업 과정면에서는 둘이 같이 의견을 상의하고 작업을 해서 문제를 해결하는데 항상 크게 의지가 되요. 반면 개인 작업은 효율성은 우선이 아니라서 제작 시간이나 재료에 제한을 덜 두기도 하고, 예측할 수 없는 부분이 있어도 일단 시도하는 편입니다. 이상하면 언젠가 다시 작업하면 된다는 생각으로요.(웃음) 주석분말을 많이 쓰지만 옻칠 위에 주석분을 뿌릴때는 매번 마스크나 보호 장비를 착용하고 작업해서 신경쓸 것도 많고 작업 후 정리도 힘든 편이에요. 이런 작업들은 대량으로 하기에는 엄두가 나질 않아 개인 작업으로 하고 있어요. 균일하게는 어렵지만 개인적인 손길이 느껴지는 작업들도 마찬가지로요. 사람마다 같은걸 목표로 만들어도 다른 느낌이듯 손으로 토분을 발라 무늬를 만들고, 주석분말을 위치마다 다르게 뿌리고 옻칠을 바르고 갈아내는 과정들을 통해 개인 작업만의 분위기에 베어나오는 것 같아요. Q. 신작 옻칠반 중 문양 형태가 고스란히 표면으로 느껴지는 제품이 인상깊었어요. 작업 과정에 대해 들어볼 수 있을까요?A. 기존 옻칠반은 나무의 느낌을 그대로 살리고 싶어서 옻칠을 닦아내는 방식으로 색을 넣으면서도 결이 드러나 보이도록 하는 작업입니다. 기존 제품이 매끈한 면 위로 나무의 자연스러운 결을 보여주는 느낌이라면 신작은 디테일한 패턴이 많은 장식적인 작업들이에요. 장식적인 효과를 위해 레이스류 원단을 붙여 작업합니다. 여러 원단 샘플을 후보로 두고 나무에 붙여도 문제가 없는지, 붙이기 전과 후의 느낌이 얼마나 다른지 테스트 후에 적합한 패브릭을 골랐어요. 패브릭을 붙이는 베를 붙이는 과정과 동일합니다. 나무 위에 옻칠과 찹쌀풀을 섞어 붙인 뒤 틈을 토분으로 충분히 메우고 그 위에 옻칠을 여러번 해서 마무리 합니다. Q. 앞으로의 계획이나 시도해보고 싶으신 작업이 있다면 알려주세요.A. 지난 개인전은 2018년 이었는데 이후 생각만 하고 미루다가 이번에 좋은 기회로 핸들위드케어에서 개인전을 하게 되었습니다. 앞으로는 2년에 한번쯤은 개인 작업을 소개하는 자리를 가지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하는 작업이 스스로 낯설어지지 않도록 틈틈이 작업하려고 해요. 이번 전시와 비슷한 주제로 조금 더 쓰임이 정확한 기물도 만들어보고 싶고요. 개인 작업과 별개로 올해는 우선 오트오트 작업을 해야할 것들이 많아 공동작업에 매진할 계획입니다. 김아람 작품전 《월영유화 月影鎏畫》는 2024년 3월 3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