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늬예찬

문양의 아름다움을 탐구해 온 남미혜 작가의 작품전 《무늬예찬》을 소개합니다.

낙엽이 수북이 쌓이는 가을의 끝자락, 무늬의 찬란함을 이야기하는 남미혜 작가의 작품전이 시작됩니다. 이번 전시는 오랫동안 먼지 속에 쌓여 있던 국내 자개 도안을 수집해 온 작가가, 복원과 재구성을 통해 새로운 빛을 부여한 자개 작품을 처음으로 선보이는 자리입니다.


2년 전 《오롯이 우주 展》에서 나전 螺鈿의 고요한 아름다움을 길어 올리고자 했던 작가는 이제 더 넓은 무늬의 세계로 우리를 안내합니다. 작품의 소재가 된 자개 도안은 약 40~50여 년 전 자개장이 크게 인기를 끌던 시대에 만들어진 도안으로, 당대의 자유분방한 상상력과 삶의 해학이 깃들어 있습니다.

 

전시 작품은 작가가 보관하고 있던 150여 점의 자개 문양 중 60여 점을 선별한 뒤, 각 문양의 컨디션을 수차례 다듬어 목재로 옮기고 황동 홀더를 더한 월 행잉 형태로 완성합니다.

남미혜

대학에서 실내디자인을 전공하고 일본의 무사시노 미술대학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을 마친 뒤, 장식과 문양, 서로 다른 문화가 맞부딪히며 나타나는 조형적 변화를 연구해 조형예술학 박사 학위를 받았습니다. 현재 일본과 한국을 오가며 연구자, 기획자, 디자이너, 제작자로 일하고 있으며 2년 전 《오롯이 우주》 展에서 〈나전월광문반〉을 선보였습니다.

Q. 핸들위드케어에서의 지난 전시, 《오롯이 우주》 에서는 자개가 지닌 고요함에 집중했다고 말씀해주셨던 기억이 납니다. 이번 《무늬예찬》에서는 사뭇 다른 분위기의 자개 작품을 선보이게 되었는데요. 새로운 작업을 시작하게 되신 계기가 궁금합니다.

A. 〈나전월광문반〉이라는 작업을 시작할 즈음이니까 2016년 무렵부터 일 거예요. 재료나 도구를 사러 왕십리에 있는 자개 공방을 자주 찾았습니다. 주로 붓이나 아교 등을 사기 위해서였는데, 갈 때마다 공방 구석에 먼지를 뒤집어쓰고 잔뜩 쌓여있는 종이 더미가 궁금했어요. 새, 꽃, 사슴, 풍경… 언제 만든 건지도 모를 자개 도안이었죠.


저는 수집하는 게 많아요. 예뻐 보여서 모으는 것도 있고, 물건 속에 숨어 있는 이야기가 궁금해서 일단 보관해두는 것도 많은 편입니다. 이건 호더들의 특징이기도 한데, 언젠가는 다 쓸 곳이 있다고 믿거든요. (웃음) 그렇게 자기 자리를 찾지 못하고 구겨진 채 쌓여있는 것들을 6년간 하나씩 사들여 150여 점의 자개 도안을 모았습니다. 모아놓고 보니 하나씩 화면 위에 옮겨서 분류해 보고 싶어졌어요. 디자이너의 근본 없는 사명감 같은 것도 있고요. 사람들의 눈에서 멀어져 버린 걸 보면, 어떻게든 그게 가진 매력을 밖으로 꺼내서 주인공으로 만들고 싶거든요. ‘이렇게 예쁜 무늬들이 왜 먼지 속에 쌓여있어야만 했는지’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싶었어요.


Q. 작품 제작과정을 자세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A. 모든 과정을 구체적으로 설명하기는 힘들지만, 전통적으로 자개를 다루는 방법에 제 맘대로 응용한 방법이 섞여 있어요. 자개 뒷면에 붙어있던 이물질을 모두 닦아내고 나면 각각의 문양을 그대로 두거나, 분해하거나, 새롭게 조합해 얇은 종이 위에 덧붙여 화면을 완성합니다. 이어서 자개의 종류와 두께에 따라 작은 붓을 이용해 밝은색의 도료를 얇게 여러 번 밑칠합니다. 자개의 발색을 좋게 하고 울퉁불퉁한 면을 고르게 만드는 중요한 과정인데, 이때 사용하는 도료는 작업마다 가장 알맞은 색상으로 직접 조색하고 있어요.


기록을 위해 과정별 시간을 재 본 적이 있어요. 손바닥 안에 들어가는 작은 크기의 작업 한 점을 기준으로 봤을 때, 이물질을 닦아내는 데에 3시간, 밑칠 3시간, 각 자개 간의 높이를 조정하고 문양을 정돈하는 데에 4시간, 나무 위에 붙인 후에 티끌 하나 없이 깔끔하게 이물질을 긁어내는 작업에 보통 6시간에서 7시간 정도 걸립니다. 물기가 마르고 나면 다시 보이는 티끌도 많아서 같은 작업을 며칠간 반복해야 해요. 여기까지가 전체 작업의 50% 정도. 화면이 넓어질수록 시간은 몇 배로 늘어납니다. 얼마 전에 왕십리 자개 공방에 갔다가 긁어내는 과정을 찍은 영상을 사장님께 보여드렸더니 “아이고! 시간 아까워!”하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시더라고요. (웃음)


☞ 작가와의 인터뷰 전체 보기

Q. 문양에 대한 관찰과 감상이란 측면에서 이번 전시를 어떻게 즐기는 팁이 있을까요? 또 전시를 찾아주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

A. 이번 전시를 위해 『유물즈』, 『뮤지엄 서울』 등을 집필한 김서울 작가님이 「시대와 함께 읽는 나전 이야기」라는 글을 써 주셨어요. 아무런 정보 없이 보는 자개 문양과 작가님의 글을 읽은 후에 보는 자개 문양은 확실히 다를 거예요. 저의 작업 노트와 함께 서울 님의 글을 참고하셔서 각 작업에 사용된 문양이 어느 시기에 완성되었고 어떤 자개가 사용되었는지 추측해보며 천천히 둘러봐 주셔도 좋겠습니다.


☞ 「시대와 함께 읽는 나전 이야기」전체 읽기


공원을 산책하다가, 지나가는 사람들이 입고 있는 옷을 무심코 바라보다가, 작업을 하던 도중에도 “온통 무늬네 무늬야”라고 입버릇처럼 중얼거리곤 합니다. 세상을 구성하는 모든 것은 무늬가 됩니다. 무늬 안에는 염원, 용기, 계절, 시간, 욕망, 사랑이 담겨있어요. 오랜 옛날 장수를 기원하며 새겨넣은 무늬가 몇백 년이 지나 지금의 우리 앞에 있을 땐 또 다른 의미를 붙일 수 있을 거예요. 전시를 둘러보시면서, 그리고 둘러보신 후에도 언제 어디에서든 눈에 띄는 무늬가 있다면 가까이 다가가 살펴보고 나름의 의미를 자유롭게 붙여봐 주셨으면 합니다. 

작가의 애정 어린 시선과 손끝으로 깨어난 무늬는 새로운 빛으로 반짝입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세상을 이루고 있는 수많은 무늬의 찬란함을 발견하게 되시길 기원합니다.

2022년 11월 22일 - 12월 11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 43 1층 Handle with Care

02-797-0151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포스터 & 리플렛 디자인: 이재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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