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월의 신록이 눈부셨던 어느 날, 양평에 위치한 허상욱 작가님의 작업실을 찾았습니다. 20여년이 넘는 시간 동안 한 곳에서 생활과 작업을 꾸려오신 공간. 〈분청일기 - 허상욱展〉을 앞둔 시점에서 작품과 작업 활동에 대한 이야기를 조금 깊고도 자유롭게 나눠보았어요. 정성스레 내려주신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새 두 시간이 훌쩍 지나있었습니다. 그날의 기억을 떠올리며 작가님과의 대화 기록을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와 개인 작업, 강의로 바쁜 나날을 보내신다고 들었어요. 보통 하루의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A. 보통 다음날 작업할 것을 전날, 잠자리에서 많이 구상합니다. 잠자리에서 해결할 점이나 디자인을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작업 시간대는 밤 시간에 작업을 더 많이 합니다. 정해진 규칙은 없고 즉흥적인 면도 있고 계획을 갖고 하나씩 풀어내어 작업하기도 합니다. 매일 매일 작업하지만 누구나 그렇듯 몰아서 할 때도 있고, 가끔은 어딘가로 훌쩍 떠나 충전의 시간을 갖기도 합니다. Q. 꾸준히 분청 작업을 하고 계신데 여러 도자 중에서도 특별히 분청사기 작업을 선택하신 이유가 있을까요?A. 대학의 공예미술학과에 입학하고 나서 도자와 금속을 한 학기씩 경험하고 체질적으로 흙일이 나에게는 더 맞다고 생각하고 2학년때부터 도자전공의 길을 걸었죠. 군대 제대 후에 방송국에서 미니어처 제작하는 아르바이트를 했었는데 너무 재밌어서 그 길로 가려고도 했었어요. 그러다 학부 3학년 때, 호암미술관에서 분청 전시를 보고 푹 빠져서 나의 길을 결정했죠. 분청으로. Q. 분청 작업 중 제일 매력적인 작업 과정은 무엇일까요?A. 완벽하지 않다는 것이 저에게는 매력적인 것 같아요. 상처도 잘나고 무언가에 쉽게 물들기도 하죠. 우리가 사회에서 깨지고 다치고 누군가에게 영향 받고 변해가며 늙어가는 모습과 닮았다고 느낍니다. 지금도 분청 작업을 하면서 실패를 많이 하는데, 예전에는 마음 아파했지만 지금은 조금 내려놓았습니다. (웃음) 예전에 가마터에 가면 어떤 사람들은 무수한 사금파리 중 어떤 것의 가치를 보고 주워가고, 어떤 사람에게는 그냥 수많은 파편 중 하나로 스쳐 지나갑니다. 분청도 그런 것 같아요. 물도 잘 들고, 잘 깨져서 하자가 많다고 생각할 수도 있는데 어떤 사람에게는 매우 가치 있는 도자기요. 이런 도자기 조각을 주워서 곁에 두고 보고 있어요. 한 500여 년 전에 만들었던 걸 테니까, 곁에 두고 보고 있습니다. 보고 있으면 에너지를 받는다는 생각을 해요. 실제로는 받아지지 않겠지만(웃음) 받아진다고 생각을 해요. 곁에서 말없이 지켜봐 주는 선생님이죠. Q. 어떻게 보면 가장 좋은 공부이겠네요.A. 예전에 어떤 소설가분과의 대화 중에 이런 얘기를 들었어요. 우리가 지금 만지는 흙이 사실 조상의 뼈와 살이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서부터는 흙을 조금 더 진지하게 대하게 되더라고요. 학생들에게는 조금 과한 얘기 같아서 하진 않지만요. (웃음) 예전에는 다들 본인의 흙을 따로 관리했고, 졸업할 때에는 아끼는 후배에게 물려주기도 했었습니다. Q. 졸업 이후, 지금의 작업실에서 계속 작업을 하신거죠?A. 네. 졸업 후, 97년도부터 이 곳에 작업실과 집을 짓고 계속 작업하고 있어요. 결혼도 그 해에 했고요. 시작할 때 도시락 싸들고 다니며 즐겁게 땅 알아보던 일들 그리고 다녀간 많은 분들, 이곳에서 만들어서 치뤘던 크고 작은 전시들... 많은 일들이 스쳐 지나가네요. Q. 긴 호흡으로 작업을 이어가시는 분들을 보면 작가로서의 작품만 제작하는 것과 완전히 대중성과 타협하는 것, 어느 쪽으로든 치우치지 않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A. 예전에는 성격상 사람들이랑 말을 많이 나누는 것도 자연스럽지 않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많이 바뀌었어요. 강의를 해 온 것도 영향을 준 것 같구요. 아내가 아주 밝은 사람이고 사람을 좋아해요. 그 덕에 순화된 면도 있는 것 같아요. 처음에 작업장 만들었을 때는 일반 소비자나 팬으로서도 작업장에 오고 싶어하신 분들이 있었는데 울타리도 많이 쳤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좋은 선생님과 동료들 덕에 눈도 트이고 좋은 걸 작업하고, 운 좋게 젊을 때 큰 전시에 참여하게 되었어요.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작품도 만들게 되고 상품으로서의 제품도 만드는 흐름이 이어진 것 같습니다.한 10여 년 전 쯤엔 다완이 조금 화제가 되기도 하고 여러 선생님과 얘기해봤을 때 매력적인 부분도 있어서 흙이 있는 아랫 지역으로 내려가서 그 작업을 해볼까 고민도 해봤는데, 제 성향하고 잘 맞을까 생각했을 때 아닌 것 같았어요. 처음 시작할 때 따뜻한 그릇을 만들어보자 라고 생각했었으니, 초심을 잃지 말고 내 작업을 하자 라고 생각했죠. 한동안 작품만 해볼까 라는 생각도 해봤는데, 그건 약간 일종의 마가 낀 것처럼 일확천금을 노리는 것 같은 거랑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웃음) Q. 그래도 그렇게 지향하시는 방향을, 현실에서 계속 지켜나가기는 어려웠을 것 같은데요.A. 아내도 큰 돈을 벌어오라던가 그런 얘기가 없었구요. (웃음) 경제적으로 어렵다 싶으면 또 방법이 생겼어요. 그럴 때 길이 열리지 않았으면 힘들었을 것 같기도 해요. 운이 좋았죠. 옛 어른들이 인생은 운칠기삼(運七技三) 이라고 말씀하셨던 것도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Q. 자연스럽고 건강한 작가의 모델이라고 생각했어요.A. 부러워하는 후배도 있는데.. 저는 많은 걸 보여주거나 작가적으로 강한 에너지를 가진, 영향을 많이 주는 타입의 작가는 아닌 것 같아요. (웃음) 그냥 내 자리에서 내 작업을 한다는 생각이에요. 이번 겨울처럼 길게 아픈 적이 없었는데 그렇게 아프고 나니까 작업에 대한 생각을 되짚어보게 되더라구요. 처음 작업을 시작했을 때 마음가짐, 그때 어떤 생각을 했고 선생님들한테는 어떤 말을 들었나, 작업 전에 무슨 준비를 했었나 그런 것들이요. 하다 못해 물레를 제일 처음 배웠을 때 잠깐의 사색 시간을 가졌었죠.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기계처럼 습관적으로 앉아 돌리고 있더군요. 그래서 다시 초심으로 돌아가 눈을 감고 10초가 되었든 1분이 되었든 심호흡을 하는 시간을 가집니다. 흙덩어리가 앞에 있을 때, 물을 묻혔을 때와 마지막 한 점을 마무리했을 때의 마음이 같을 수 있도록 평정심을 갖는 것에 대해서 생각해요. 예전에는 주문이 많으면 해치우는 마음으로 했었는데 지금은 그것보다 태도의 문제에 대해 집중하게 되요. 어떤 마음가짐으로 흙을 대하고 불을 대하고 그릇을 대할 것인가, 그런 관점이요. 그렇다고 아주 새로운 게 나오진 않지만, 흙도 새로운 것으로 해보고 관성처럼 했던 것에서 조금 벗어나서 새로운 악센트를 주기도 하고요. Q. 작품마다 각각의 개성이 느껴지면서도 자유로운 느낌과 해학적인 분위기가 감돈다고 생각했어요. 그림을 잘 그리시는데 도예 작업 전에도 그림 그리는 걸 즐기셨는지 궁금합니다.A. 그림보다는 만드는 걸 좋아했죠. 어릴 때부터 뭔가를 만지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시절은 또 그럴 수밖에 없었어요. 시골에서 자랐는데 아버지가 군인이었기 때문에 시골도 여러 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래서 혼자 꼼지락꼼지락 놀이감을 만들어 놀았는데 그게 공예가로서의 첫발이 아니었나 생각합니다. 성격적으로 싫증을 잘 내는 편인데 아직까지 공예를, 그 중에서도 분청, 박지를 하고 있는 걸 보면 저에게는 참 매력적이고 잘 맞는 작업인 것 같습니다. Q. 그렇게 말씀하시지만 그림 잘 그린다 라는 얘기 많이 들으시지 않으세요?A. 직접 그렸냐는 질문을 많이 받죠. (웃음) 여성스럽다는 얘기도 많이 듣고요. Q. 모란 같은 경우 작업실 앞에도 심으셨지만, 보통 그림의 소재는 어디서 얻으세요?A. 특별히 정해진 건 없고 주변에 것들을 그리고 기억 속에 있던 것들을 꺼내어 그립니다. 지금 관심 갖고 작업하는 것들은 전통 청화백자에서 하나씩 모티브를 얻어 그려 보고 있습니다. 푸른색 안료와 은, 분청의 호흡이 좋아서 청화백자로 컨셉을 잡았죠. Q. 이번 작업에 새로운, 기존보다 좀 더 어두운 흙을 사용하셨는데, 어떤 흙일까요?A. 산지는 모르겠지만 가져온 곳은 산청이고, 혼합이 아니라 산지의 생흙이라고 알고 있습니다. 철분이 많아 어두운 흙은 보통 불에 들어가면 보통 온도가 낮은데 이 흙은 온도가 괜찮아요. 대학 때 그런 흙을 발견해서 기분 좋게 썼었는데 어느 순간 사라진 기억이 있네요. Q. 새로 사용하시는 흙은 마음에 드세요?A. 새롭게 관심을 갖고 작업하고 있는 은채 장식과도 색감적으로 잘 맞는지도 봐야겠고요. 은채 장식은 조선시대 박지분청에 비슷한 게 있었어요. 그때는 은이 아니라 철로 해서 콘트라스트(대비)를 더 강하게 갔었고요. 이 경우는 모노톤으로 가는 거지요. 지금 그래서 코발트 빛 안료도 시도해 보고, 예전에는 붉은 색을 좋아하는지 몰랐는데 요새는 붉은색에 눈이 가서 새로 시도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Q. 기법은 작가님의 경우, 기존 작품을 보고 테스트 해보시면서 작업하시는 게 많다고 들었는데 학교에서 배우는 것도 있을까요?A. 은연 중에 있긴 하지만, ‘이건 이렇게 해야 된다’ 라는 규정은 없습니다. 규정이 주어지면 재미가 없어지고요. 학교에서 보통 전통적인 작업을 가르치더라도 전통성을 강조하진 않아요. 기능을 배워도 기능을 규격화하지는 않고요. 주전자를 예로 들면 뚜껑과 손잡이의 사용성에 조금 더 초점을 맞출 것인지, 디자인적 요소를 더 따라갈 건지에 대해 정하는 정도일 거에요. 사실 기능성의 경우는 많이 써봐야지 체득되는 거지만요. Q. 작업을 진행하면서 따로 연구하신 부분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려요.A. 연구라기보다는 과정에서 찾아지는 게 있는 것 같아요. 어떤 작업을 하다가 그 작업이 실마리가 되어 뭔가를 조금씩 발견하고, 내 것으로 만들어가게 됩니다. Q. 분청이라는게, 저희가 만난 손님들도 아시는 분들이 있다고 생각하지만 자세히 경험해 볼 기회가 많지 않았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번 〈분청일기〉가 ‘이런 것도 있구나’ 발견해보는 자리면 좋다고 생각했어요.A. 네 이번에도 뭔가 규정해서 작업하진 않았어요. 예전에는 주제를 정해 관련된 것만 펼쳐놨었는데, 이번에는 그때 그때 마음 가는 대로 작업했습니다. 이번에 사실 작업하면서 차에 대한 관심도 좀 생겼 어요. 차 관련 작업을 밀도 있게 하질 않아서 잘 몰랐었는데, 조금씩 알게 되니까 그 즐거움도 컸습니다 . Q. 이번 전시를 위해, 맹개술도가의 안동 진맥 소주를 드시고 작은 주병과 술잔 제작을 해주셨어요. 제품에 대한 간단한 코멘트를 부탁 드려도 될까요?A. 제일 처음에는 직관적으로 밀 소주이기 때문에 밀밭 느낌을 떠올리면서 단순한 원통 형태로 반복적인 선을 그어 밀의 느낌을 살리며 만들었어요. 그 다음은 맛이 산뜻하고 쨍하기 보다는 부드럽고 나른한 맛이라는 느낌을 받았고, 안동 지역, 남녘의 아지랑이 맛이 나는 소주를 담을 수 있는 주병을 만들어야겠다 생각했습니다. 그립감을 위해 사선면을 강조했어요. 맛도 아랫도리가 묵직한 맛이라 생각해서 조금 아래쪽을 펑퍼짐한, 묵직한 느낌으로 만들어 봤습니다. Q.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목표가 있을까요? 앞으로 해보시고 싶은 작업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A. 기본적으로는 조금씩 새로워 지며 균형있는 작업을 끝까지 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전부터 숙제처럼 가지고 있는 게, 내가 얼마나 크게 소화할 수 있을지 시도해보고 싶어요. 보통 사이즈가 크게 한다고 해도 내가 가진 사이즈가 있더라구요. 작가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이즈가 있어서 크게 한다고 하더라도 작은 경우가 있고, 작게 한다고 하더라도 큰 경우가 있는 것 같아요. 저는 조금 작은 편인 것 같아서 더 늦기 전에 좀 더 규모 있는 작업을 해보고 싶습니다. 작업실 창문과 열려진 문 바깥으로 보이는 산과 나무, 길가에 무심히 핀 꽃, 집 앞의 탐스러운 모란까지. 자연의 따스함과 편안함이 공간 곳곳에 묻어 있었습니다. 한남동의 〈Handle wihe Care〉에서 열리는 〈분청일기 - 허상욱展〉이 부디 자유롭고 섬세한 분청의 멋을 감상하고, 생활 가까이에서 경험하실 수 있는 자리가 되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