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anging Memories》 윤여동 인터뷰

한여름의 기운이 짙게 느껴지던 8월의 어느 날, 핸들위드케어에서 두 번째 작품전을 앞둔 윤여동 작가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Hanging Memories》는 벽을 바라보는 작가의 사유에서 출발합니다. 단순한 구조물을 넘어 과거와 기록을 품은 표면으로서의 벽, 그리고 그 벽에 걸린 사물들을 통해 작가는 시간을, 기억을,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금속 작업을 대하는 진솔한 마음부터 전시를 준비하며 떠올린 생각까지, 윤여동 작가가 건네온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2022년 가을 핸들위드케어에서 진행한 《Dining Rhapsody》 작품전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는지요?​​A. 안녕하세요. 어느새 3년이란 시간이 흘렀네요. 제 첫 개인전을 열었던 이곳에서 다시 전시를 하게 되니 오래 묵힌 금속을 다듬어 빛을 찾아주는 순간처럼 설렙니다. 그동안 작업과 삶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지만, 변하지 않은 건 매일 금속과 마주하며 쌓아온 시간과 그 마음입니다. Q. 최근 작업실을 옮기셨다고 들었어요. 새로운 공간에서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A. 아직은 짐을 조금만 풀어둔 터라, 이곳에서 온전히 하루를 보내보진 못했어요. 하지만 새로 제작한 불대와 용접 테이블을 들여놓으며 한층 나아진 작업 환경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이전보다 넓어진 면적과 1층이라는 공간적 여유를 바탕으로, 이제는 크기나 제작 방식에 얽매이지 않고 금속이 지닌 가능성을 마음껏 펼쳐보려 합니다. Q.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Hanging Memories》입니다. ‘벽은 액자나 달력처럼 과거의 기억을 품는 구조물이다’라는 작가님의 이야기에서 착안한 제목인데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작업과 전시에 담긴 이야기를 소개해 주세요.A. 저는 ‘벽’을 떠올릴 때, 공간의 피부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우리는 일상에서 액자나 달력, 사진 등을 벽에 걸며 그 위에 시간을 쌓아가고, 그렇게 벽은 과거와 기록을 품고 있는 하나의 기억 구조물이 됩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일상 속 벽에 붙거나 걸리는 사물들을 금속이라는 단단한 물성으로 재해석하여, 시간과 기억을 담아보고 싶었어요. Q. 벽을 ‘시간이 매달린 표면’으로 바라보는 작가님의 시선이 인상 깊습니다. 실제로 작가님의 생활 공간이나 작업실 벽에는 어떤 사물이 걸려 있나요? 그 사물이 품고 있는 기억과 이야기도 함께 들려주세요.A. 저는 누군가가 남겨준 손글씨나 글귀 같은 걸 좋아해요. 예전에 작품 수리를 맡기셨던 분께서 “잘 부탁한다”라는 짧지만 따뜻한 포스트잇을 남겨주셨는데, 그 작은 종이가 여전히 제 작업실 벽 한쪽에 붙어 있어요. 시간이 지나 색이 조금 바랬지만, 볼 때마다 제 작업을 아끼고 사랑해 주시는 분들의 마음을 전해집니다. 어떤 날을 기념하며 찍은 네 컷 사진은 웃음과 표정을 그대로 담고 있고, 냉장고 문에는 작은 금속 자석이 급하게 쓴 메모를 단단히 붙잡고 있어요. 금속으로 만든 은행잎을 고정하기 위해 만든 벽걸이 받침대, 배전반을 가리기 위해 제작했던 황동 오브제도 같은 벽에 걸려 있습니다. 제 작업실 벽은 말없이도 수많은 순간과 마음을 붙잡아 주는 조용한 기록장 같은 존재예요. Q. 장신구 작업이 좋아 금속 공예를 시작하게 됐고, 지난 핸들위드케어 전시에서는 테이블웨어 위주의 작은 작업을 선보이셨는데요. 이번 전시에는 비교적 규모가 큰 설치 작업을 소개합니다. 작은 오브제와 큰 설치 작업을 대할 때 느끼는 차이는 무엇인지, 또 큰 작업을 진행하며 마주한 어려움이나 새롭게 발견한 매력이 있는지 궁금합니다.​​A. 저는 스스로 변덕이 심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변덕을 작업이 넓어질 수 있는 가능성으로 받아들이려고 해요. 손끝에서 완성되는 작은 장신구를 만들다가도, 어느 순간 공간을 가득 메우는 큰 작업이 하고 싶어집니다. 반대로, 큰 작업을 마치고 나면 다시 작은 오브제의 섬세한 세계로 돌아가고 싶어집니다. 감사하게도 손바닥 위의 작은 금속 조각과, 층고 4미터를 채우는 설치 작업 모두에서 제 작업 특유의 결을 발견해 주시더라고요. 큰 작업은 무게와 설치 방식, 구조적인 안정성까지 수많은 고민이 동반되지만, 완성된 순간 마주하는 그 압도적인 부피감은 마치 다시 경험하고 싶은 강렬한 기억처럼 오래 마음에 남습니다. Q. ‘조용한 가운데에 움직임이 있다’를 뜻하는 ‘정중동(靜中動)’은 작가님의 작업에서 핵심이 되는 개념이지요. 지금도 정중동을 염두에 두고 작업을 이어가고 계신가요? 지난 전시 인터뷰에서 “아직 정중동을 마음에 꼭 들게 작품에 녹여보지 못했다”라고 말씀해 주셨는데 지금은 어떤 마음이신가요?A. ‘정중동’은 여전히 제게 중요한 화두예요. 지난 전시 때 말씀드렸던 것처럼, 작품 속에 그 개념을 완벽하게 담아내는 것은 여전히 과제로 남아있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은 다른 시선을 갖게된 것 같아요. 가만히 매달려 있는 금속 조각들도 빛과 바람, 시선에 따라 끊임없이 움직임을 만들어 냅니다. 그 미묘한 떨림과 변화를 바라보며, ‘정중동’이란 완성된 상태라기보다 작업을 이어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레 스며드는 것임을 깨닫게 되었어요. 지금은 그것을 억지로 구현하려 하기보다, 작업이 가진 고유의 흐름을 따라가며 기다리고 지켜보는 마음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Q. 작품의 모티프를 살펴보면 신라시대 유물에서 비롯한 것이 많습니다. 정중동이라는 개념 또한 신라시대 금관인 천마총의 달개 장식에서 영감을 얻으신 걸로 알고 있는데요. 다른 시대보다 신라의 유물에 특히 매료된 이유는 무엇인가요?A. 신라의 유물은 화려한 장식과 섬세한 기술이 돋보이지만, 동시에 단순한 아름다움에 머무르지 않고 상징성과 의미가 깊게 배어 있어 특별한 매력을 느낍니다. 특히 금관의 달개 장식은 걸음을 옮길 때마다 미묘하게 흔들리며, 정적인 형식 속에서 생동하는 기운을 전해줘요. 저는 그 모습에서 ‘정중동’이라는 개념을 발견했고, 지금의 작업으로 이어오고 있습니다. 또한 신라는 당시 동서양의 문물이 교류하던 시기였기에, 유물 속에서 다채로운 문화가 융합된 흔적을 읽을 수 있습니다. 흥미롭게도 제 작업을 보신 분들이 종종 한국적인 미와 서양적인 미가 함께 느껴진다고 말씀해 주시는데, 그 점에서 신라시대의 개방성과 융합성은 제 작업과 더욱 깊이 맞닿아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서 다른 시대보다도 신라의 미감이 제 작업에 가장 알맞게 어울린다고 느낍니다. Q. 황동, 적동, 알루미늄, 은 등 하나의 소재에 치우치지 않고 다양한 금속을 고루 사용해 작업하고 계시지요. 작품마다 금속의 종류를 달리 선택하는 작가님만의 기준이 있을까요? 또 각각의 금속이 지닌 고유한 매력에 대한 작가님의 생각을 듣고 싶습니다.​​A. 특정한 금속 하나에만 머무르기보다는 여러 금속이 가진 성질과 분위기를 고르게 활용하려고 해요. 작품을 구상할 때마다 형태와 맥락, 그리고 담고 싶은 감정에 가장 잘 어울리는 금속을 선택하는 편입니다. 예를 들어 황동과 적동은 따뜻한 노란빛과 로즈골드 빛의 금속으로, 시간이 흐르면서 빛깔이 깊어지고, 중후한 인상을 남깁니다. 은과 알루미늄은 같은 은색 빛의 금속이지만 은은 고요하고 섬세한 빛을 띠며, 시간이 흐를수록 표면에 어두운 산화막이 생겨 깊고 무게감 있는 분위기로 변해갑니다. 마치 세월이 스며든 종이처럼 그 자체로 시간의 흔적을 기록하는 금속이에요. 알루미늄은 다른 금속보다 산화에 자유롭고, 무게 또한 가볍기에 형태를 확장하고 실험하기에 용이합니다. 금속은 사람의 손을 타며 지문이나 작은 흔적을 남겨요. 저는 그런 자취들이 단순한 얼룩이 아니라, 시간과 맞닿아 있는 기록처럼 느껴집니다. 금속 표면 위에 켜켜이 쌓이는 흔적은 결국 ‘시간이 지나가고 있음을 보여주는 표면’이 되고, 저는 그 흔적을 하나의 아름다움으로 바라봅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은 매끈하기보다 유기적인 표면의 질감이 특징적입니다. 왁스를 이용해 주물하거나 망치 자국을 남기는 등 손맛을 살리는 과정을 중시하는 이유가 있을까요? 작업 과정 중 질감을 표현하는 일이 가장 즐거운 순간인지, 아니라면 언제 가장 몰입과 즐거움을 느끼시는지도 궁금합니다.​​A. 저는 매끈한 표면보다 손의 흔적이 남는 유기적인 질감과 형태를 더 선호합니다. 왁스를 이용해 주물하거나 망치로 두드리며 남겨지는 자국들을 보면 제가 금속에 표정을 불어넣고 있는 것처럼 느껴져요. 질감을 표현하는 과정은 분명 즐겁지만, 가장 몰입되는 순간은 금속이 제 의도와 손길을 따라가며 서서히 형태를 갖추는 과정입니다. 차갑던 금속이 망치질과 불, 그리고 시간 속에서 조금씩 제 얼굴을 찾아가는 그 변화의 순간들이 가장 큰 즐거움으로 다가옵니다. Q. TWW의 문손잡이나 오설록의 티 트레이처럼 브랜드와의 협업도 활발히 이어가고 계신데요. 개인 작업과 협업 작업 사이에서 느끼는 차이나 의미는 무엇인가요?​​A. 개인 작업이 저만의 언어를 자유롭게 펼칠 수 있는 장이라면, 협업은 주어진 맥락 속에서 금속이라는 재료가 얼마나 다양한 가능성을 지닐 수 있는지를 시험해 보는 장입니다. 문손잡이나 티 트레이처럼 일상에서 손에 자주 닿는 물건을 만들 때는 제 작업이 누군가의 생활 속에서 작동하고 쓰인다는 점에서 특별하게 느껴집니다. 개인 작업과 협업 작업을 서로 다른 축으로 보기보다는, 두 영역이 교차하며 제 작업의 범위를 넓혀주고 금속이 지닌 유연성과 살아 있는 쓰임새를 다시금 깨닫게 해 준다고 생각해요. ​ Q. 이탈리아 베네치아를 거점으로 하는 공예비엔날레 HomoFaber, 일본 다이칸야마의 콘란샵, 미국 뉴욕의 Lyle 갤러리 등 해외 전시에도 활발히 참여하고 계십니다. 한국을 넘어 다른 무대에서 작업을 선보일 때 느끼는 점이나 얻는 자극이 있을까요?​​A. 한국을 넘어 다른 무대에서 작업을 선보일 기회가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새로운 나라에서 사람들이 제 작업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늘 궁금하기도 하고요. 하지만 결국 어느 장소에서든 사람들이 ‘아름다움’을 찾는 마음은 공통적이라는 것을 느낍니다. 그 지점에서 제 작업이 조금이라도 충족감을 드릴 수 있다는 사실이 무척 뿌듯합니다. 해외 전시는 제 작업을 낯선 시선 속에 두어 보는 경험을 선사하기도 해요. 다양한 국적과 분야의 사람들과 함께하며 새로운 방식으로 사고하고 대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익숙한 자리에서 벗어나 다른 맥락에서 다시 작업을 바라볼 때, 제 안에서도 새로운 과제가 생기고 작업의 폭을 넓힐 수 있는 용기가 채워지는 것 같아요. Q. 마지막으로 전시를 찾는 관람객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이번 전시는 제가 벽을 바라보는 시선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벽은 단순히 공간을 나누는 경계를 넘어, 기억을 품고 시간의 흔적을 담은 표면입니다. 그 벽과 맞닿은 사물들은 공간과 사람을 이어주는, 조용하지만 분명한 ‘벽의 언어’가 되어줍니다. 이번 전시에서 마주한 순간들이 여러분 마음 한 편의 벽에 액자처럼 자리 잡아, 언젠가 조용히 다시 말을 걸어주기를 바랍니다. 윤여동 작품전 《Hanging Memories》은 2025년 8월 22일부터 8월 31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윤여동 제공(Poles Studio 박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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