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lay of Elsewhere》 박민희 인터뷰

"제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한국의 옛것을 지금 우리가 가진 재료로 오래도록 행복하게, 그리고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청명한 가을 하늘을 기다리던 8월의 끝자락, 듀오 작품전 《Clay of Elsewhere》를 앞두고 박민희 작가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한국을 떠나 호주 멜버른에서 다시 도예에 정진하게 된 계기와 작업을 대하는 진중한 태도와 방식까지, 박민희 작가가 건네온 이야기를 전합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핸들위드케어 전시를 통해 처음 인사드립니다. 먼저 작가님의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저는 멜버른에서 혼자 흙작업을 하는 박민희라고 합니다. 한국에서 나고 자랐고, 호주로 10년 전에 이주했습니다. 대학에서 도예를 전공했지만, 중간에 학업을 그만두었다가 십여 년이 지나 호주에서 다시 도자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이번 핸들위드케어 전시에서 제 작업을 소개할 수 있게 되어 큰 영광입니다. Q. 현재 호주 멜버른에 거주하며 도예 작업을 하고 계시지요. 작업실에서의 하루는 어떻게 흘러가나요? 한국에서 삶과 비교했을 때 작업 루틴에 다른 점이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A. 집 아래층에 조그마한 공간을 스튜디오로 만들어 사용하고 있어서 언제든 편하게 작업을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추고 있어요. 아침 7시에는 제가 만든 세 모금 컵에 커피를 마신 뒤 운동을 한 시간하고 돌아와 작업을 시작합니다. 마감 기한이 있는 일정 외에는 하루에 주문 작업과 제가 만들고 싶은 작업을 꼭 한 파트씩 병행하려고 합니다. 파트너도 집에서 일하기 때문에 점심 이후에는 대부분 긴 산책을 즐기고, 돌아와 다시 일을 이어가요. 저녁 식사 후에는 고양이 엘라와 같이 시간을 보냅니다. 그리고 밤 9시쯤부터 자정까지 끝내야 하는 작업을 집중해 마무리하고 다음 날 작업을 준비합니다. 이 시간에 하는 작업을 특히 좋아해요. 흙 특성상 건조나 소성 과정에서 기다림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시간에는 개인적인 일을 하거나 다른 작업을 하기도 합니다. 20대에 서울에서 회사 생활을 하며 치열하게 지내던 때와 비교하면 지금은 전혀 다른 인생을 산다고 할 수 있어요. 좋아하는 일을 매일 마음껏 하고, 외로움조차 즐길 수 있는 조용한 시간을 보내는 지금의 생활에 감사함을 느낍니다. Q. 오랜 기간 멈췄던 도예를 다시 이어가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A. 경제적인 사정으로 학업을 그만둔 후 사회에 나가 이런저런 일을 하면서도, 언젠가는 어떤 방식으로라도 다시 미술 공부를 하고 싶다는 마음이 늘 있었습니다. 여행을 가게 될 때면 항상 현지 학교를 찾아보곤 했지만, 매번 사정이 여의치 않아 포기해야 했어요. 그러다 호주에 워킹홀리데이로 오게 되면서 농장과 회사를 거쳐 멜버른에 정착했고, 친구가 생일 선물로 마련해 준 도예 공방 수업을 통해 다시 흙을 만지게 되었어요. 그때 비로소 내가 진짜 잘 해보고 싶은 일이 도자 작업이라는 걸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파트너의 전적인 지지와 함께, 무엇보다 내가 가진 이 아름다운 한국의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멀리서라도 작업을 이어가고 싶다는 개인적인 열망으로 도예를 다시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타이틀은 《Clay of Elsewhere》입니다. 호주의 흙, 유약, 가마 환경 등 그곳만의 조건 속에서 만들어진 작업은 어떤 특징과 매력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시나요?A. 사실 호주는 한국에 비해 흙의 질도 떨어지고 가격도 비쌉니다. 종류도 한국만큼 다양하지 않아요. 제가 사는 지역은 개인 가스가마 설치가 허가되지 않아 전기 가마만 사용할 수 있고, 도재상도 한정적이라 배송비가 높아 흙을 자주 사지 못합니다. 그래서 저는 대부분의 흙을 리클레임해 재사용해서 편이에요. 한국과 아주 다른 환경에서 한국 옛것의 모양을 만드는 일을 하고 있는 거죠. 대부분 혼자 집에서 작업하다 보니 고요하고 적막합니다. 때로는 생각에 깊이 빠지기도 하지만, 오히려 정해진 틀 없이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있기도 해요. 호주에서 만든 제 작업은 한국의 옛것을 닮았지만, 그 속에는 호주의 큰 자연 속 이방인으로서 느끼는 외로움과 자유로움이 함께 반영되어 있는듯 합니다. 요즘처럼 쉽게 국경을 넘나드는 시대에, 먼 타지에서 현대의 재료로 옛것의 모양을 빚는다는 것은 어쩌면 제 안의 그리움과 애틋함, 혹은 옛 공예인에 대한 존경의 마음이 담긴 작업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Q. 작가님 작업의 많은 부분은 한국의 옛것을 기반으로 하고 있는데요. 한국적인 것을 만들게 된 이유와 그중에서도 민예품과 같이 소박하고 일상에서 매일 쓰였을 법한 사물들에 관심을 두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A. 세상 어디에서나 공예의 시작은 늘 일상에서 쓰이는 사물에 있었습니다. 지금은 박물관에 전시되거나 골동품 가게에서 비싼 값에 거래되지만, 저에게는 여전히 곁에 두고 쓰고 싶은 보물 같은 일상 도구입니다. 그래서 곁에 두고 쉽게 만질 수 있는 것들을 만들고 싶었던 거예요. 형상적으로는 옛것에서 많은 참고를 얻지만, 그 사물을 만든 당시 사람들의 마음은 알 수 없잖아요. 저는 그 호기심을 바탕으로 제 개인적인 생각과 역량에 맞게 기물을 만들어왔습니다. 더 나아가서, 관객과 사용자 각자의 이야기가 더해져 비로소 완성되는 사물이 되길 기대해요. Q. 이번 전시에서는 온전히 한국의 것들을 사용해 빚어보고자 잠시 충북 괴산에 머물며 작업을 하셨다고 들었어요. 작업을 함께한 괴산 대부요와는 어떤 인연이 있었는지, 그곳에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작업을 했는지 소개해 주세요. 또한 호주와는 다른 환경과 재료의 변화가 작업 과정과 결과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궁금합니다.A. 대부요는 멜버른에서 다시 도자기를 시작하며 학교가 아닌 공방의 문하생으로 일하는 것을 선택하고 유약을 공부하던 중 알게 된 귀한 인연입니다. 온라인 코스나 책을 보며 유약 공부를 했는데, 우연히 대부요에 계신 황인성 선생님의 블로그를 알게 되었어요. 유약 재료와 소성 방법에 대해 전반적인 설명을 블로그에 작성해 주신 것을 읽으면서 모르는 부분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후 인스타그램을 통해 선생님의 작업을 접하며 옹기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져갔고, 언젠가 꼭 선생님께 배우고 싶은 마음을 품고 지냈습니다. 집에서 홀로 작업을 하던 저였기에 코로나19 시기를 지나면서 조금 더 한국 도자를 직접 배우고 싶은 열망이 커졌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연락드렸고 흔쾌히 받아주셔 3년 전 대부요에서 물레와 옹기를 실컷 배우며 지낸 시간이 있었습니다. 그 시간은 제가 그동안 보낸 도자 생활 중에 가장 행복하고 벅찼던 날이었어요. 그 후로 더 열심히 작업해 한국에 다시 와서 더 배울 날만을 꿈꿔왔는데, 이번에 너무 좋은 기회로 대부요에서 전시 준비를 하게 된 것이죠. 이번 전시를 위해 괴산에서 만든 모든 작업은 그야말로 호주에서 만든 작업과 전혀 다른 제 마음의 상태, 재료, 소성을 거쳐 탄생한 것들입니다. 전반적인 도자의 과정은 같지만, 되도록 한국 흙을 사용했고 대부분은 장작 가마에서 유약 없이 소성해 불과 재가 만든 질감과 색을 담았습니다. 한국 흙이 워낙 좋아 성형할 때의 어려움은 없었지만, 호주에서 소성할 때보다 훨씬 높은 온도의 장작 가마 안에서 소반 작품이 버틸 수 있을지, 어떤 모습으로 나올지 알 수 없어 매일 걱정 반 기대 반으로 기도하며 작업을 이어갔습니다. 또 매일 대부요의 강아지 누룽지와 산책하며 마주한 자연, 아무 걱정 없이 산에 둘러싸여 오직 작업만 생각하는 행복함과 대부요에서 만난 귀한 인연들의 수고로 나온 작품들이니, 멜버른에서 혼자 전기 가마로 만든 작업과는 또 다른 의미와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Q. 작품에는 ‘산’ 모티프가 자주 등장합니다. 산 모양의 합이나 액자 오브제 등 다양한 형태로 표현되고 있는데요. 산은 작가님에게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 작업에 구체적인 모티프가 된 특정 ‘산’이 있는지도 궁금합니다. A. 국토 면적의 70%가 산인 한국에서 나고 자란 저에게 산이란 한 가지 의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특히 어릴 적부터 다니던 엄마 집 뒷산은 지금도 한국에 가면 꼭 찾는 가장 좋아하는 장소예요. 한국에 방문할 때마다 새로운 도로, 건물, 아파트가 생기고 없어지지만, 그 산만은 변함없이 같은 자리에 서 있습니다. 혼자 산길을 걸으면 마음이 정리되고 환기가 되는 걸 느껴요. 산에 올라 멀리 병풍처럼 펼쳐진 능선을 바라볼 때는 벅차고 눈시울이 뜨거워지기도 합니다. 의연하게 자리를 지키는 엄마 집 뒷산을 생각하면 고마운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저는 도자로 산을 빚으며 마음으로 산을 걷고, 그 안에서 만난 모든 생명과 빛을 기억하며 예찬하고 기도합니다. 산에서 많은 위로를 받아온 저이기에, 조선 시대 산 모양 백자 연적은 오랜 시간 동경의 대상이었어요. 작은 산을 곁에 두고 언제나 바라보고 싶어 손으로 만질 수 있는 산 작업을 만들고 있습니다. 벽에 거는 산 모양 작업에는 백제 시대 산수무늬 벽돌에서 영감을 받아, 선인들이 산을 바라보고 사랑하던 방식을 담고자 했습니다. 또 산을 걸으며 본 풍경에서 찾은 패턴으로 만든 백자 투각 필통은, 점점 사라져가는 ‘쓴다’라는 행위에 대한 아쉬움을 담아 조선 문방구의 옛 필통에서 모티프를 얻어 만들었습니다. 제가 만든 산이 오래도록 만져지고 바라보이며, 누구나 마음속에 간직한 자신만의 산의 기억으로 다시 살아나길 바랍니다. Q. 또 하나 눈에 띄는 모티프는 ‘얼굴’입니다. 작가님의 SNS 프로필 사진이기도 하죠. 나의 얼굴을 작품으로 만드는 일은 이방인으로서 품어온 고민과도 연결되는 지점이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어요. 얼굴을 빚는 작업을 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A. 가만히 있으면 마음을 알 수 없는 무표정한 얼굴 때문에 어릴 적부터 어딜가나 한 소리를 듣곤 했는데요. 호주에 와서도 같은 이야기를 몇 번 듣고는 가면을 쓴 것처럼 억지로 표정을 만들어 기분을 드러내려 하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고 나면 얼굴은 더 어색하게 일그러져 스스로 멍청해 보인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제 무표정한 얼굴은 특정한 감정을 드러내는 것이 아닌데도, 그저 적응하고 튀지 않기 위해 노력을 했던 것 같아요. 그러다 어느 날 토우를 보고 ‘사실 난 이 가면이 필요했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이후 만든 얼굴들은 모두 제 안의 다른 기분을 담고 있어요. 표정이 비슷하다고 마음이나 기분이 같지는 않은 제 얼굴들입니다. 감정과 기분이 사람마다 같은 표정으로 드러날 수 없듯, 이 얼굴들은 저의 그런 모든 기분을 표현한다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각각 다른 소지와 유약, 소성 방법을 사용해 비슷한 얼굴에도 서로 다른 분위기를 담았고, 보는 사람들에 따라 또 다르게 읽히리라 생각됩니다. Q. 전시를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제 작업은 저에게는 하나하나 의미 있고 특별하지만, 우리 한국인의 눈에 익숙하고 편안한 일상 사물을 소재로 삼고 있기에 크게 다르거나 획기적인 도자 예술을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는 반가울 수도, 또 다른 이에게는 지루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죠. 다만 제가 처한 지리적·시대적 배경을 이유로 새로운 모습으로 보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옛 사물들이 그러했듯, 그리고 제게 그랬듯, 제 작업도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거나 곁에 무던히 서서 피식 웃음을 짓게 하는 존재가 되길 바랍니다. Q.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일이나 새롭게 시도해 보고 싶은 작업이 있으시다면 이야기 나눠주세요.​​A. 도자 작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이 행복하면서도 고된 여정에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게 된 것이 꾸준함입니다. 운동도 산책도 건강하게 작업하기 위해 계속 이어 나가고 있어요. 저는 제가 좋아하고 소중하게 여기는 한국의 옛것들을 지금 우리가 가진 재료로 오래오래 행복하게, 그리고 꾸준히 만들고 싶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한국의 전통을 더 깊이 이해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앞으로도 한국을 오가며 계속해서 전통 기법을 연구하고 연습해, 현대적인 재료로 이 시대의 작업을 만들어가고 싶습니다. 박민희&허이서 작품전 《Clay of Elsewhere》는 2025년 9월 5일부터 9월 21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박민희 제공(Jess Humpston)

Handle with Care

logo
LOG IN 로그인
  • Ongoing Exhibition: Clay of Elsewhere
    • Exhibition Archive
      • Exhibition Pieces
        • ALL
        • Loving Imperfections
        • Embracing
        • 오래된 사이
        • Serenity Waves
        • 월영유화 月影鎏畫
        • 가지런히 • 봄
        • 오 • 마주 • 봄
      • Journal
        • Guide
          • About
          • FAQ
          • 1:1
          • Notice
          • Review

        Handle with Care

        logo logo
        • Ongoing Exhibition: Clay of Elsewhere
          • Exhibition Archive
            • Exhibition Pieces
              • ALL
              • Loving Imperfections
              • Embracing
              • 오래된 사이
              • Serenity Waves
              • 월영유화 月影鎏畫
              • 가지런히 • 봄
              • 오 • 마주 • 봄
            • Journal
              • Guide
                • About
                • FAQ
                • 1:1
                • Notice
                • Review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Handle with Care

              logo logo

              Handle with Care

              logo logo
              • Ongoing Exhibition: Clay of Elsewhere
                • Exhibition Archive
                  • Exhibition Pieces
                    • ALL
                    • Loving Imperfections
                    • Embracing
                    • 오래된 사이
                    • Serenity Waves
                    • 월영유화 月影鎏畫
                    • 가지런히 • 봄
                    • 오 • 마주 • 봄
                  • Journal
                    • Guide
                      • About
                      • FAQ
                      • 1:1
                      • Notice
                      • Review
                    Search 검색
                    Log In 로그인
                    Cart 장바구니

                    Handle with Care

                    logo logo
                    이용약관
                    개인정보처리방침
                    사업자정보확인

                    상호: 핸들위드케어 | 대표: 김희선, 길우경 | 개인정보관리책임자: 길우경 | 전화: 070-4900-0104 | 이메일: withcare.twl@gmail.com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녹사평대로40나길 34, 4층 | 사업자등록번호: 636-09-01096 | 통신판매: 2020-서울용산-1658 | 호스팅제공자: (주)식스샵

                    floating-button-im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