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들고 싶은 것에는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핸들위드케어에서 여는 다섯 번째 개인전 《머무는 돌》을 앞두고 스기사키 마사노리 작가와 작업에 관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올해의 스기사키 작가가 건네온 답변은 유독 깊고 단단하게 다가옵니다. 40 여년간 조각 작업을 이어오며 품어온 작가의 담백한 진심을 여기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년 봄 전시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립니다. 시간이 지나 2025년도 4개월 남짓을 앞두고 있는데요. 올 한 해는 어떻게 지내셨나요?A. 올해도 변함없이 지치지 않고 창작 활동을 생활의 중심에 두며 지내고 있습니다. 하루 종일 작업실에서 손을 움직이며 작품을 만드는 삶은 어린 시절부터 꿈이었고, 지금은 그 꿈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Q. 첫 전시 《사귀게 된 돌》 이후, 어느덧 작가님의 다섯 번째 서울 개인전입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작품을 보여주실지 궁금합니다. A. 서울에서 다섯 번째 전시를 열 수 있도록 도와주신 핸들위드케어 스태프 여러분께 깊이 감사드립니다. 이번 전시에서는 핸들위드케어의 제안으로 「기도하는 사람」, 「낮잠」, 「집」 작품을 많이 제작했습니다. 핸들위드케어의 목소리는 곧 서울 관람객의 목소리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기뻐해 주신다면 저 역시 큰 기쁨일 것 같아요. Q. 이번 전시 타이틀은 《머무는 돌》로, 첫 전시였던 《사귀게 된 돌》의 흐름을 이어갑니다. 지난 5년간 곁에 머물며 늘 한결같았고, 또 매번 다르게 느껴진 작가님 작업을 생각하며 만든 타이틀인데요. 작가님은 지난 시간 동안 작업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느끼시나요? 반대로 변하지 않고 이어져 온 본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합니다.A. 작품의 변화는 오히려 저 자신보다 관람객이 더 잘 알아보실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사회에서 작품 평가하는 방식이기도 하지요. 저는 가능한 한 제 작품을 스스로 평가하지 않으려 노력합니다. ‘스스로 무엇을 어떻게 만들 것인가’라는 언어에 의한 인식이 되려 제 작업에 대한 욕망과 폭을 좁히는 듯해 견딜 수 없는 기분이 들기 때문이에요. 만들고 싶은 것에는 자연스럽게 손이 움직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손이 가지 않습니다. 그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언어를 바탕으로 한 행위는 언제나 저를 지배하곤 합니다. 그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매일 ‘제작에 몰두해 시간을 잊는 순간’을 소중히 여기고 있습니다. 어쩌면 「기도하는 사람」이나 「낮잠」은 ‘언어의 지배에서 벗어난 순간의 장면’을 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Q. 작품의 변화는 오히려 관람객이 더 잘 알아본다는 앞선 답변처럼, 실제로 작가님께서는 “타인의 다정한 시선에서 비로소 작품의 주제를 깨닫게 된다”라고 이야기해 주신 적도 있는데요. 혹시 시간이 흐른 뒤 작가님께도 작업이 먼저 말을 걸어온다고 느낀 순간이 있으셨을까요? A. 말씀드린 대로, 손이 가는 대로 만든 작품 중에는 무의식적으로 품고 있던 것이 자연스럽게 표현될 때가 있어 스스로도 놀라는 경우가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 작품을 다시 마주하면, 그 안에 숨어 있던 제 마음이나 생각이 제게 말을 걸어오는 듯한 순간을 경험합니다. 그런 것을 보면 무의식은 늘 의식되기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라 느껴집니다. 「기도하는 사람」이나 「낮잠」이 그 좋은 예일지도 모릅니다. Q. 돌, 점토, 나무를 재료로 사람, 동물, 과일 등 다양한 형태의 조각 작업을 하시지요. 각 재료가 지닌 매력은 무엇인지, 또 작품에 따라 어떤 기준으로 재료를 선택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A. 나무는 실제로 만졌을 때 따뜻하고 보기에도 부드럽습니다. 나뭇결에는 각기 특징이 있어 그것을 제 편으로 삼아 작업합니다. 세밀한 조각이 가능해 섬세한 표현에 적합합니다. 그에 반해 돌은 단단하고 차가운 이미지를 지닙니다. 그러나 종류에 따라서는 부드럽고 따뜻한 느낌을 주는 돌도 있습니다. 세공은 어렵고 투박하지만, 그렇기에 실내에 놓았을 때 강한 존재감을 드러냅니다. 점토는 부드러운 상태일 때와 단단해져 갈 때, 두 단계에 걸쳐 작업을 진행합니다. 마음대로 형태를 만들 수 있다는 장점이 있지만, 그 자유로움 만큼이나 최종 모양을 결정할 때는 때에는 매우 우유부단해지기도 합니다. 나무와는 또 다른 부드러움이 있고, 잘 깨지기 쉬운 성질은 시간의 덧없음을 표현하는 데 적합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모티프와 마주할 때도, 저는 우선 돌, 나무, 점토를 활용한 제작 가능성을 먼저 모색해 봅니다. Q. 작품에 어울리는 돌을 찾기 위해 직접 산, 강, 바다를 걷는다고 하셨지요. 돌을 찾는 과정에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었는지, 혹은 좋은 돌을 찾는 작가님의 방법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A. 돌을 줍는 일은 제게 아주 즐거운 의식 같은 것입니다. 특별한 비법이 있다기보다, 저는 그저 감수성에 따라 돌을 ‘받아들이는 행위’를 즐기고 있습니다. Q. 어느덧 45년이 넘는 시간을 조각가로서 살아오셨습니다. 긴 세월을 돌아보며 그 시간 속의 자신에게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무엇일까요?A. 혼자 작업을 시작한 지 올해로 38년이 됩니다. 학교에서 조각을 배우기 시작한 지는 45년이네요. 그동안 수많은 작품을 만들 수 있었다는 사실이 제겐 무엇보다도 큰 기쁨으로 여겨집니다. 앞선 답변에서 “창작 활동은 어린 시절의 꿈”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언어에 의한 인식은 작업에 대한 욕망과 폭을 좁힐 수 있다”라고도 말했습니다. 그러나 그 뜻이 “어린 시절에는 아무 생각 없이 만들고 싶었던 것을 만들었는데, 어른이 되고 나서는 그렇게 할 수 없게 되었다”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비록 인식이 좁았을지라도, 어린 시절에도 분명 언어와 사고를 거듭하며 작품을 만들었음이 틀림없으니까요. 만약 언어를 넘어서는 순간이 있다면, 바로 그런 순간이야말로 소중히 여기고 싶습니다. Q. 핸들위드케어에서 여러 차례 전시를 선보이며, 작가님의 전시를 기다리는 분들이 해마다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번 전시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매번 핸들위드케어 전시를 찾아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합니다. 많은 한국 관객분들이 인스타그램을 살펴봐 주시고 메시지도 보내주셔서 큰 힘이 됩니다. 이번 전시도 꼭 즐겁게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스기사키 마사노리 조각전 《머무는 돌》은 2025년 9월 26일부터 10월 12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