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딘가, 우리가 Quelque Part, Nous

소사요 × BÜRO PAPIER 작품전

한 해의 끝과 새해의 시작을 잇는 시기, 소사요와 BÜRO PAPIER의 두 번째 작품전 《어딘가, 우린가》를 엽니다.

지난여름 나누었던 짙고 검은 빛깔의 조각을 지나, 소사요 김진완 작가와 뷰로 파피에 사이에는 새로운 일 년의 시간이 쌓였습니다.

그리고 그 시간 속에서 오간 다정한 대화들이 모여 보다 담백한 정물의 형태가 우리를 맞이합니다. 한 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오래도록 바라왔던 순간이 있습니다. 마주하고 나서야 이 만남이 필연이었음을 깨닫는 순간. 소사요와 뷰로 파피에의 첫 만남이 그러했듯, 그런 순간은 특별한 서사를 필요로 하지 않은 채 우리 곁에 담담하게 다가옵니다.

잔과 물동이, 꽃병, 사발과 둥근 접시. 이번 전시에 놓인 작업 또한 그러한 만남의 방식과 닮아 있습니다. 손잡이와 어깨선에 남은 부드러운 곡선이 자연히 시선을 이끌듯이, 소사요와 뷰로 파피에가 나눈 작업은 우리의 일상 정물을 이루는 가장 순하고 편안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냅니다.

소사요 小沙窯

‘작은 모래’ 라는 뜻을 지닌 소사요 김진완 작가는 일상에서 곁을 내어주고 오랜 시간 함께 지낼 순하고 단단한 기물을 만듭니다. 분청과 백자, 흑색자기에 이르는 폭넓은 작품 활동을 전개하고 있습니다.

뷰로 파피에 BÜRO PAPIER

공간의 페르소나와 사물의 관계에 대해 시각적으로 표현하는 〈뷰로 드 끌로디아〉 고유의 심미안으로, 공간 연출에서 나아가 공간을 구성하는 사물로서의 공예품을 아티스트와 함께 그려갑니다.

Q. 전시 제목인 《고요의 형태》는 작업에서 위안의 존재로 사용해 오던 ‘달’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그 위안의 감각을 달 너머의 다른 형태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 나눠 주세요.
A. 월광문반이라는 작업 덕분에 오랜 시간 가지고 살던 통제 강박을 많이 고쳤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어렵게 완성한 작업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께 사랑받게 되면서 내가 세운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 한데, 당시에는 “저 작가 아닌데요?” 하고 부정할 정도였어요.

여러모로 준비가 되기도 전에 주문이 밀려 들기 시작해, 계획했던 일을 모두 접어두고 일단 밤을 새워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종의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불안도 있었고요. 연구자로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으니 어서 다음 주제로 옮겨가야 하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피로가 쌓여가던 때였습니다. 그럴 무렵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Naoto Fukasawa 선생님을 서울에서 만났어요.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요즘 이런 걸 만들고 있다고 월광문반을 선물로 드렸는데,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그렇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달은 평면이었지.” 하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왜 이 작업을 시작했는지를 힘들다는 이유로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Q. 전시 제목인 《고요의 형태》는 작업에서 위안의 존재로 사용해 오던 ‘달’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그 위안의 감각을 달 너머의 다른 형태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 나눠 주세요.
A. 월광문반이라는 작업 덕분에 오랜 시간 가지고 살던 통제 강박을 많이 고쳤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어렵게 완성한 작업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께 사랑받게 되면서 내가 세운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 한데, 당시에는 “저 작가 아닌데요?” 하고 부정할 정도였어요.

여러모로 준비가 되기도 전에 주문이 밀려 들기 시작해, 계획했던 일을 모두 접어두고 일단 밤을 새워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종의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불안도 있었고요. 연구자로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으니 어서 다음 주제로 옮겨가야 하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피로가 쌓여가던 때였습니다. 그럴 무렵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Naoto Fukasawa 선생님을 서울에서 만났어요.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요즘 이런 걸 만들고 있다고 월광문반을 선물로 드렸는데,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그렇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달은 평면이었지.” 하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왜 이 작업을 시작했는지를 힘들다는 이유로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Q. 전시 제목인 《고요의 형태》는 작업에서 위안의 존재로 사용해 오던 ‘달’의 이미지를 출발점으로, 그 위안의 감각을 달 너머의 다른 형태로 확장해 보고자 하는 의미에서 비롯되었어요. 이번 전시를 통해 전하고 싶었던 이야기에 대해 자세히 말씀 나눠 주세요.
A. 월광문반이라는 작업 덕분에 오랜 시간 가지고 살던 통제 강박을 많이 고쳤습니다. 계획대로 되는 게 하나도 없거든요. 어렵게 완성한 작업이 예상한 것 이상으로 많은 분들께 사랑받게 되면서 내가 세운 가설이 틀리지 않았다는 생각에 기쁘면서도 한동안 혼란스러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지금도 작가라는 호칭이 어색 한데, 당시에는 “저 작가 아닌데요?” 하고 부정할 정도였어요.

여러모로 준비가 되기도 전에 주문이 밀려 들기 시작해, 계획했던 일을 모두 접어두고 일단 밤을 새워 완성해야 했습니다. 그러던 중에 일종의 번아웃이 왔던 것 같아요. 같은 일을 반복하는 데서 오는 불안도 있었고요. 연구자로서 하나의 결론을 내렸으니 어서 다음 주제로 옮겨가야 하는데, ‘나 지금 뭐 하고 있는 거지?’ 하는 생각에 피로가 쌓여가던 때였습니다. 그럴 무렵 프로덕트 디자이너 후카사와 나오토 Naoto Fukasawa 선생님을 서울에서 만났어요. 근황을 이야기하다가 요즘 이런 걸 만들고 있다고 월광문반을 선물로 드렸는데, 손에 들고 가만히 바라보시더니 “그렇지, 오래전부터 사람들에게 달은 평면이었지.” 하고 나지막이 말씀하시는 거예요. 순간 한 대 얻어맞은 기분이었어요. 어떤 마음으로, 왜 이 작업을 시작했는지를 힘들다는 이유로 감쪽같이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은 거죠.

Q. 이번 작업에서는 ‘성당의 창문’이 달과 같은 의미를 담은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합니다. 성당의 창문을 월광문반에 새기고자 했던 이유가 무엇인가요? 또한 성당과 관련한 기억 중 특히 선명하게 남아 있는 장면이 있다면 함께 들려주세요.
A.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 달이 가진 여러 가지 의미 중에서도 ‘바라보는’ 대상, 늘 곁에서 ‘위안을 주는’ 존재를 중요한 주제로 삼고 스스로에게 계속해서 되물었어요. 나의 믿는 구석은 무엇일까. 무엇이 나를 평온하게 할까, 고요하게 할까.

어린 시절부터 사람이 많은 곳을 그리 좋아하지 않았어요. 그때도 지금만큼이나 예민했던 것 같아요. 주변이 소란스럽거나 고민이 생겨 마음속이 시끄러울 때면 도망치듯이 성당을 찾아갔어요. 두꺼운 벽으로 둘러싸인, 아무도 없는 성당 구석에 앉아 스테인드글라스 너머로 들어오는 색색의 빛을 보고 있으면 ‘안전하다’라는 느낌을 받습니다. 지금도 어느 동네에 가든지 근처 성당부터 찾아둬요. 미사가 없는 시간에 한참이고 앉아서 이런저런 생각을 정리하기도 하고, 사진이나 스케치로 그날의 창문을 수집합니다. 건축을 향한 호기심도 커요. 1960-70년대에 지어진 오래된 성당을 주로 찾아가는데 데이터가 쌓이다 보니 이제는 구조적 특징이나 디테일을 보면 누가 설계했는지 대충 알아볼 수 있게 됐어요. 어디를 가나 재개발이다 뭐다로 부수고 뒤집어엎기 바쁜 와중에 가만히 같은 자리를 지키고 있는 건물이 있다는 것만으로도 큰 위로가 되죠.

꼭 성당일 필요는 없어요. 스스로 안전하다고 느끼는 공간 한쪽에 앉아 있다고 상상해 보세요. 풀숲에 바늘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만큼 주위는 고요해요. 눈앞에 창문이 있고, 그 창문의 크기만큼의 빛이 가만히 나를 비추고 있어요. 그 순간 느끼는 감정을 그대로 작업에 옮겨 담을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가장 평범한 형태와 흙의 질감 속에서, 우리가 미처 의식하지 못했던 익숙한 필연을 알아차리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2025년 12월 19일 - 2026년 1월 4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0나길 34, 4층
070-4900-0104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전시 그래픽: 이재민
식물 연출: Botalabo 정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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