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White》 박용태 인터뷰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결과나 성취 같은 외적인 갈래에서 찾기보다, 삶으로서 마땅히 이어지는 작업, 그 안에서 질문을 품고 지속하는 과정 자체로 근원적인 작업 동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봄의 기척에 반가움을 느끼던 어느 날, 핸들위드케어에서의 네 번째 작품전을 앞둔 박용태 작가와 전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그의 작업을 마주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백자라는 물질 너머에서 건너오는 사유의 목소리는 때로 저 멀리로부터, 때로는 깊은 내면으로부터 밀려와 공명을 일으키지요. 이곳에 나누는 박용태 작가의 진솔한 언어를 통해, 백자라는 형상을 넘어 그 이면에 깃든 작가의 철학에 가닿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지난 2024년 1월 《백수천경》 전시 이후 벌써 2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습니다. 핸들위드케어와는 어느덧 네 번째 전시로 인연을 이어가게 되었네요.이번 전시 타이틀인 《Beyond White》를 직접 지어주셨지요. ‘Beyond’라는 단어에서, 백자라는 물질을 넘어 그 뒤에 놓인 무언가, 혹은 아직 정의되지 않은 무한한 세계가 그려지기도 합니다. 제목에 담긴 의미에 대해 이야기 나눠주세요.A. 《Beyond White》는 단순히 백자라는 물질의 범주를 넘어선다는 해석을 지나, 백자를 통념적 시각의 대상으로 가두지 않으려는 태도에서 출발합니다. 백자는 흔히 ‘순수’, ‘담백’과 같은 관습적 언어로 설명되어 왔지만, 저에게 백자는 하나의 고정된 성질이 아닌, 감각과 시간, 존재의 흔적을 표현하는 장치에 가깝습니다. ‘Beyond’는 백자라는 매체 안에 이미 내재해 있었지만 쉽게 언어화되지 않았던 차원을 끄집어냅니다. 그리고 그것을 마주한 타자의 내면적 반응까지 포함한, 확장되는 현상을 가리키는 말입니다.저는 작품을 완결된 의미로 제시하고 싶지 않습니다. 작품은 답을 주는 것이 아니라, 감각적 울림을 발생시키는 계기여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작품 앞에 선 정동의 순간으로부터 각자의 기억과 경험이 맞물려 저마다 삶 속에서 다르게 번져가는 반향 같은 것. 작품을 본다는 것이 단지 대상을 시각적으로 수용하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고, 자신과 세계의 관계를 다시 느끼고 되물어보는 계기가 될 수 있는가에 대한 질문입니다. 저는 이번 전시를 그런 질문의 장으로 두고 싶습니다. Q. 지난 전시에서 처음 선보였던 ‘The Captured’ 작업을 《Beyond White》의 대표작으로 소개합니다. ‘The Captured’ 작업이 작가님의 작업 전반에서 어떤 맥락 위에 놓여 있는지, 그리고 이번 전시에서는 어떤 방식으로 드러나게 될지 궁금합니다.A. 평면 작업이 이전 작업과 본질적으로 다른 메시지를 담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제 작업은 늘 같은 곳을 향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의도와 자연의 흐름, 질서와 무질서, 물질과 감각, 생성과 소멸이 분리되지 않은 채 얽혀 있는 상태, 존재에 대한 물음을 어떻게 드러낼 것인가라는 질문에서 출발합니다. 그 질문이 조형적 기형의 작업에서는 사물의 역사성이나 구조 안에서 간접적으로 읽힐 수 있고, ‘The Captured’에서는 조금 더 직관적으로 드러나는 방식의 차이일 뿐 작품의 형식에 따라 철학이 변하는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기술의 향상이나 완성도의 상승이 아니라, 작품이 더 이상 미적 결과나 조형적 성취로만 남지 않고 어떤 사유의 표상으로 나타나느냐에 대한 것입니다. Q. ‘The Captured’ 작업이 비로소 완성에 이르렀다고 느끼는 지점은 무엇인가요? 또한 작업 안에서 발견하는 미학적 차이에 대해서도 함께 이야기해 주세요.A. 저는 이 작업에서 인간이 모든 것을 통제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반대로 자연이 모든 것을 결정한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 둘 가운데 어느 하나 우위를 정하는 일이 아니라, 인간이 자각할 수 없는 더 큰 시간의 흐름과 그 안에 개입하는 의도적 행위의 순간이 서로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흔적으로 남는다는 점입니다. ‘The Captured’는 바로 그 얽힘의 순간에 드러난 존재의 상태입니다. 어떤 결과를 남길 것인가를 선택할 때도, 저는 그것을 ‘성공’이나 ‘실패’의 기준으로 판단하지 않습니다. 더 정교한 것, 더 아름다운 것, 더 안정된 것을 고르는 문제가 아닙니다. 제가 보는 것은 그 표면 안에 단순한 시각적 효과를 넘어서는 밀도가 있는가, 즉 물질적 현상 이상의 어떤 존재감이 발생하고 있는가입니다. 우연처럼 보이더라도 단지 우연으로 소모되지 않고, 일련의 응축된 시간으로 느껴지는 순간이 있습니다. 저는 그때 비로소 작품이 저에게 말을 걸어온다고 느낍니다. 그러나 그 말을 명확한 문장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작품은 더욱 큰 질문으로 남습니다. 완성의 선언이 아니라, 끝없이 유예되는 물음의 형태에 가깝습니다. 제가 어떤 지점에서 작품을 멈춘다고 해서 그것이 존재론적으로 완결되었다는 뜻은 아닙니다. 다만 더 이상 제 손의 개입으로 설명될 수 없는 상태에 도달했을 때, 다시 말해 물질이 자율적인 긴장과 침묵을 획득했을 때, 저는 그것을 작업의 완성으로 받아들입니다. 이 작업에서 제가 발견하는 미학적 차이 또한 형태의 새로움이나 표면의 극적인 변화에 있지 않습니다. 어떤 작품은 눈앞에서 바로 닫혀버리고, 어떤 작품은 오래 남아 내면에서 계속 번집니다. 저는 후자에 더 가까운 상태를 원합니다. 작품이 사물로서 종결되는 것이 아니라, 타자의 감각 안에서 다시 생성되는 가능성으로 남기를 바랍니다. 결국 ‘The Captured’는 완결된 답이 아니라 질문의 형식입니다. 그리고 그 존재론적 질문은 저 자신에게도 계속해서 되돌아옵니다. 작업은 이 질문을 지속하는 방식이며, 그러므로 저에게 작업은 더 근본적인 삶의 형식이 됩니다. Q. 무언가를 더하는 것보다 덜어내는 것이 훨씬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이번 전시를 통해 이전보다 기교와 장식을 최대한 절제한, 훨씬 정제된 흐름의 작업을 선보이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요?A. 어떤 형태를 하고 있든 같은 철학의 맥락에서 탄생하지만, 지나치게 구체적인 용도나 기능이 강하게 환기될 땐 ‘무엇에 쓰이는가’를 먼저 생각하게 되고, 그 순간 대상과 마주하며 발생할 수 있었던 직관적인 감각이 조금은 흐릿해질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형식이 간결해질수록 ‘무엇을 떠올려야 하는가’보다 ‘무엇을 느끼고 있는가’에 더 집중하게 됩니다. 그 침묵의 영역을 남기고 싶었습니다. 작품을 보며 즉시 해석하는 대신, 마음의 파문 속에 머물 수 있기를 바랍니다. Q. 작가님의 작업은 사용하는 기물로서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도자 회화로서 감상의 영역으로 확장되기도 합니다. 일상 도구로 사용자에게 기능할 때 느끼는 창작자의 보람과, 사유의 대상이 될 때 느끼는 충만함은 작가님께 각각 어떤 다른 의미로 다가오나요?​​A. 흔히 기능적 대상은 실용의 영역에, 감상의 대상은 미학의 영역에 놓인다고 생각하지만, 저는 그 둘은 서로 다른 범주라기보다 동일한 존재가 타자와 맺는 서로 다른 접촉 방식이라 생각합니다. 인간은 언제나 몸으로 세계를 경험하고, 감각은 사용과 관조를 명확히 나누지 않습니다. 어떤 기물을 손에 들고 입술에 대는 순간에도 우리는 이미 그것으로 촉발되는 사유를 감각할 수 있고, 반대로 고정된 작품을 응시할 때라도 그 경험이 일상적이고 현실적일 수 있습니다. 작품은 쓰일 수도 있고, 바라보일 수도 있으며, 기억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저에게 중요한 것은 각각 제시된 형태로부터 오는 반응보다는 타인의 감각 안에서 어떻게 변모하느냐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이번 전시가 관객의 인식 속에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되는 하나의 장이 되길 바란다고 말씀해 주셨어요. 작품이 놓인 공간에서 작가님이 기대하시는 확장된 경험은 구체적으로 어떤 모습인가요?A. 작품은 명료한 의미를 전달하는 대상이 아니라, 각자가 스스로의 내면과 마주하게 되는 하나의 질문으로 남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제가 기대하는 경험은 이 작품이 무엇을 말하는가를 아는 것이 아니라, 이 경험이 각자에게 무엇을 열어놓는가에 더 가깝습니다. 작품을 마주하는 순간은 하나의 시작일 뿐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입니다. 그 만남이 끝난 뒤에도 설명되지 않는 감각이 오래 남아, 문득 자기 자신을 다시 바라보게 만드는 것. 익숙하다고 믿었던 삶의 모양이나 감정의 구조, 세계를 받아들이는 태도에 울림을 만드는 것. 저는 작품이 그런 방식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작품은 무엇을 생각해야 한다고 지시하지 않습니다. 대신 어떤 정지, 침묵, 어떤 흔들림을 건넬 뿐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림이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떻게 이어질지는 누구도 미리 결정할 수 없습니다. 저는 오히려 그 미결정성 속에 일의적이지 않은 감상의 지속성 있다고 믿습니다. Q. 무언가를 만들고자 하는 순수한 욕망과 같이, 작가님을 계속 작업 앞으로 이끄는 힘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A. 저에게 작업은 창작 행위 이전에 하나의 존재 방식에 가깝습니다. 작업은 삶과 분리된 활동이 아니라, 삶을 자각하는 방식입니다. 작업을 지속하게 하는 힘을 결과나 성취 같은 외적인 갈래에서 찾기보다, 삶으로서 마땅히 이어지는 작업, 그 안에서 질문을 품고 지속하는 과정 자체로 근원적인 작업 동력을 얻는 것 같습니다. Q. 이번 《Beyond White》 전시가 작가님의 작업 여정에서 하나의 이정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작가님이 그리고 계신 앞으로의 작업은 어떤 모습인가요?​​A. 작업은 흐름 속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구체적인 선택과 판단은 필요하지만, 목표를 설정하고 나아가는 선형적인 과정이라기보다, 철학적 기반 위에서 계속 변모하며 이어지는 흐름에 가깝습니다. 근본적으로는 내가 붙들고 있는 질문들이 어떤 형식을 통해 다시 나타날 것인지는 사전에 완전하게 계획될 수 없으며, 그 흐름 속에서 얼마나 정직하게 반응하고 머물 수 있는가입니다. 작업 여정에서 중요한 것은 특정한 도착점이 아니라, 계속해서 자신이 알지 못하는 영역 앞으로 나아가는 태도인지도 모릅니다. 《Beyond White》 역시 그러한 흐름 안에 놓인 지점으로 보고 있습니다. 박용태 작품전 《Beyond White》는 2026년 4월 10일부터 4월 19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박용태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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