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3일, 법고창신 그룹전을 열며 우시형·이은범·이정용·허상욱 작가와 함께하는 전시 연계 아티스트 토크가 열렸습니다. 법고창신은 2009년 경기도자박물관에서 기획한 동명의 전시에서 출발했는데요. ‘옛것을 익혀 새로운 것을 만든다’는 뜻처럼, 한국 전통 도예의 현대적 계승을 고민하던 이강효·정재효 두 작가가 "옛것에 대한 깊은 이해 없이는 새로운 창작도 없다"는 데 뜻을 모은 것이 지금의 모태가 되었습니다. 총 2부로 나누어 소개할 이야기 중 이번 파트 1에서는 기획자나 평론가의 시선이 아닌, 제작자의 목소리로 분청, 청자, 백자, 무유 장작 가마 등 각자의 작업 세계와 물성에 관한 이야기를 직접 들어봅니다. 작가들이 흙과 불을 다루는 치열한 고민부터 우리 도예 환경과 문화 전반에 대한 솔직한 시선까지, 한국 도예의 미래 지형도를 상상해볼 수 있는 담백한 대화를 전합니다. ▸ 법고창신 아티스트 토크 Part 2 바로가기 허상욱 작가“분청의 조화로움 위에, 은(銀)으로 시간의 궤적을 더하다” Q. 보통 분청이라고 하면 해학, 순박함, 그리고 흙의 자연적인 성질에서 오는 한국만의 미학이 떠오르는데요. 작가님은 어떤 매력 때문에 30년 가까이 오롯이 분청에만 매달리셨는지 궁금합니다. 학부 시절 다른 분야로 눈을 돌릴 수도 있었을 텐데 말이죠. 도자를 전공하지 않은 분들을 위해 작업하시는 ‘박지 기법’에 대해서도 함께 설명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A. 엄청 길겠네요.(웃음) 일단 제가 분청의 매력에 흠뻑 젖게 된 건 1993년 호암미술관에서 열린 분청사기 특별전 덕분이었어요. 그전까지는 청자나 백자밖에 몰라 분청의 존재를 아예 몰랐었거든요. 청자나 백자는 쉽게 다가갈 수 없는 귀족적이고 선비 같은 아름다움이 있잖아요. 반면에 분청은 쉽게 말해 좀 만만함이 느껴지더라고요. ‘나도 할 수 있겠다!’ 싶은 그 만만함에 이끌려 시작해서 여기까지 왔는데, 해보니까 결코 만만하지 않다는 걸 이제야 알게 됐죠. 분청은 고려 말 조선 초라는 혼란스럽고도 희망이 싹트던 시기에 태어났어요. 그래서인지 저는 분청을 보면서 작품이 “괜찮아, 별거 아니야”라고 위로를 건네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하곤 합니다. 본질적으로 분청은 조화의 미학을 가진 장르예요. 완전히 다른 두 물질, 그러니까 철분이 아주 많은 흙과 철분이 전혀 없는 하얀 백토물이 만나서 깨지지도 않고 색감과 질감을 조화롭게 이루어내거든요. 저는 지금 현대와 전통, 그리고 이 두 물성을 어떻게 더 자유롭게 조화시킬지 계속 밟아나가는 중인데요, 요 근래에는 여기에 금속성 물질인 ‘은(銀)’을 첨가해 표현을 확장하고 있습니다. 제가 하는 ‘박지 작업’은 철분 많은 흙 위에 하얀 화장토를 바른 뒤, 그림을 그리고 배경 부분을 긁어내서 문양과 바탕의 색 차이를 주는 기법이에요. 긁어내다 보면 내가 이전에 했던 행위들의 흔적을 찾아간다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몰랐던 것들이 긁어내면서 툭 튀어나오니까, 시간을 되돌려 과거로 간다는 느낌을 받죠. Q. 분청은 만만해서 시작하셨다고 했는데, 사실 은이나 금은 굉장히 고급 작업이잖아요. 단어로만 보면 꽤 이질적인 결합인데, 어떤 느낌에서 은 작업을 시작하게 되셨나요? 그림(문양)과 기법 간의 조화는 또 어떻게 결합하시는지도 궁금합니다.A. 은을 쓰기 시작한 건 동료들하고 장난스럽게 얘기하다가 우연히 시도해 본 거였는데 결과가 잘 나왔어요. 그때 다 같이 중국 전시에 갔다가 오면서 “다음엔 어디로 갈까? 두바이로 가자! 두바이는 금을 발라야 된다(웃음), 금으로 도배를 하자!” 이런 얘기가 나와서 작업실에 오자마자 금도 발라보고 은도 발라봤죠. 그런데 금은 너무 이질적이라 안 붙는데, 은은 은이 가진 특성이 분청과 잘 맞아떨어지더라고요. 앞서 말한 것처럼 박지 기법이 과거를 떠올리게 한다면 은은 미래적인 소재라고 느껴져요. 시간이 지나면서 색깔이 노르스름해졌다가, 불그스름해졌다가, 나중에는 거무튀튀하게 변하거든요. 기물이 놓인 공간과 밀접하게 관계하면서 변해가는 과정을 바라보는 즐거움이 엄청나요. 게다가 백금이나 금은 바른 흔적 없이 매끈하게 녹아버리는데, 은은 붓질 흔적이나 농담, 질감까지 그대로 투영해 줍니다. 물고기나 호랑이 같은 그림을 그릴 때는 크게 면(面)으로 접근해서 그림의 면과 배경의 면이 이룰 조화를 봅니다. 은 작업은 재벌까지 끝난 상태 위에 바르는 거라, 그 시점에 또 판단을 내려야 해요. ‘이 부분에 은을 발라두면 나중에 거무튀튀하게 변했을 때 어떻게 더 어울릴까?’ 계산하는 거죠. 푸른색을 돋보이게 할지, 문양이나 여백을 더 살릴지에 따라 조금씩 변화를 주고 있습니다. 이은범 작가“비색의 한계를 넘어 청자 고유의 넓은 스펙트럼과 물성을 탐구하다” Q. 과거에는 청자로 주사위 같은 놀잇감까지 만들었지만, 오늘날에는 백자나 분청만큼 활용도가 높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청자가 현대인의 일상 공간에서 어떤 동행자가 되기를 바라시나요? A. 청자를 제대로 해보겠다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지금까지도, 청자가 우리 생활 안으로 들어가는 건 참 어려운 일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청자가 가진 색이 워낙 도드라지고 강렬하다 보니, 생활 식기나 공간 안에서 자연스럽게 녹아들지 못하고 툭 튀어나오는 느낌이 있거든요. 대중들이 보편적으로 그렇게 느꼈기 때문에 많이 쓰이지 못했을 겁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려 청자에 대한 우리의 인식 왜곡도 많이 작용하고 있어요. 비색 청자의 이미지가 너무 강하게 잡혀 있어서 청자의 색을 굉장히 협소하게 보는 측면이 있거든요. 실제로 고려 시대 청자의 스펙트럼을 보면 폭이 아주 넓은데요, 요즘 백자에 푸른 기운만 살짝 들어간 정도의 청자도 많이 포진해 있습니다. 이런 청자들이 넓게 쓰인다면 우리 생활 안에도 자연스럽게 잘 스며들 거라고 생각합니다. Q. 도예계 일각이나 일부 애호가들 사이에서는 "백자토에 유약 발라 구운 게 아닌, 청자토에 구워야 진짜 청자다"와 같은 고정관념도 존재합니다. 작가님은 어느 선까지 청자로 허용하시는지, 그리고 청자의 대중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이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A. 방금 말씀드린 맥락과 같은 이야기인데요, 도자 재료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광물이 바로 철분이에요. 지구상에 가장 흔한 광물이죠. 이 철분을 일정량 제거하면 백자가 되는 겁니다. 흙이든 유약이든 철분의 양에 따라 백자도 되고 청자도 되는 거예요. 옛날 강진의 가마터 파편들을 보면 이게 백자인지 청자인지 구분이 어려운 것들도 꽤 많아요. 과거에는 재료를 정제해서 쓰는 기술이 발달하지 않았기 때문에 철분이 많든 적든 구분 없이 그대로 가져다 썼을 것이고, 그래서 스펙트럼이 넓어질 수밖에 없었던 거죠. 그런데 지금은 기술이 발달해 분석력이 있다 보니, ‘고려 비색 청자는 철분을 어느 정도 함유하고 있다’는 기준을 정해두고 색을 맞추는 방식으로만 발전해 왔어요. 오히려 그것이 청자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데 방해가 된 셈이죠. 그걸 좀 없애면 대중에게 다가가기가 훨씬 쉬워질 겁니다. 그리고 청자의 대중화를 위한 앞으로의 계획은… 없습니다.(웃음) 제가 처음에 도자를 시작할 때 청자를 하고 싶었던 건 아니었어요. 원래 조형 조각을 하고 싶어서 대학 졸업 후 몇 년간 매달렸는데 살기가 너무 힘들더라고요. 그래서 생계를 위해 청자를 배워 병행하기 시작한 게 지금이 된 겁니다. 청자의 매력은 한참 후에나 느꼈고, 그때까지는 내가 이걸 하려면 장점을 이용해야 하는데 그 장점이 무엇인가를 계속 찾아가면서 작업을 했어요. 지금도 청자가 갖고 있는 장점이 어떤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청자를 어떻게 활용하고 내가 갖고 있는 나만의 자아와 결합시킬 수 있을까 이런 걸 의미 있게 접근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물성을 좀 더 활용하는 방법을 연구하고 있어요. 청자가 흙이라든가 유약이 조성되면서 만들어진 그것만의 어떤 장점이라든가 특징이 있거든요. 그걸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찾고 있습니다. 이정용 작가“차가우나 따뜻하고, 단단하나 부드러운 백자를 작업하다” Q. 백자는 역사적 스펙트럼이 깊고 넓은 만큼, 창작자 입장에서 자신만의 존재감을 드러내기가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정용 작가님의 백자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A. 백자를 모르시는 분은 여기 없으시겠죠. 제가 백자 작업을 해야겠다고 결정을 내린 건, 여기 옆에 계신 선배 허상욱 작가님 덕분이에요. 아마 기억 못 하실 텐데(웃음), 대학원 시절 어느 날 술 먹자고 부르시더니만 “너는 백자가 맞아. 백자 해”라고 하셔서 한 치의 의심도 없이 시작했습니다. 제 성향을 보시고 추천해 주신 것 같아요. 우리는 지금 ‘백자 시대’에 살고 있다고 생각해요. 전 세계 어디에나 있다 보니, 우리만의 특이한 점과 작가 개인의 독창성을 찾아내는 부분이 가장 어려운 장르이기도 합니다. 과연 내가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고민하다가 결국 조선 백자에서 답을 찾았습니다. 대항해시대에 중국, 일본, 유럽이 같이 백자를 만들 때 조선 백자와의 차이점이 무엇인지 찾기 시작했어요. 제가 찾은 결과는 ‘재료’에 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은 완벽무결한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 원료를 철저히 정제했어요. 로얄 코펜하겐처럼 얇고 깨지지 않으면서 모든 게 다 규격화되어 똑같이 나오는 그릇들을 추구했죠. 반면 우리나라는 예전부터 그런 것에 치중하지 않고, 각 지역 카올린(백토) 성분의 특성을 그대로 극대화해서 보여주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래서 굉장히 반어적인 얘기긴 하지만, 차가운 백자이지만 따뜻함을 추구했고 단단해 보이지만 부드러움을 추구했던 것입니다. 그 비밀이 바로 재료에 있었던 거죠. 저도 10여 년 전에는 존재감을 드러내려고 화려하고 예쁜 그림 장식을 했었지만, 늘 마음 깊은 곳에 해결되지 않는 부끄러움이 있었습니다. 그러다 다행히 학교(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서 학생들과 다양한 재료 실험을 해보면서 너무 재미있게 본질을 파고들고 있습니다. 아직 제 기준으론 구현하고 싶은 백자의 한 10% 정도밖에 못한 것 같지만, 평생에 걸쳐 차갑지만 따뜻하고 단단하지만 부드러운 백자를 보여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Q. 최근 몇 년 사이에 좋은 흙을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져 작업 실패 확률도 높아진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백자만의 영역을 구축하려면 순도 높은 원료를 발굴해야 할 텐데, 원료 구하기가 점점 어려워진다면 백자는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가야 할까요? A. 말씀하신 것도 굉장히 맞는 말씀인데요, 고맙게도 여기 모인 작가 스무 명은 다 저와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들이에요. 그러니까 저는 백자로 고민을 하는 거고요. 개인이 그런 원료를 찾아다니는 것 자체가 굉장히 힘든 일이다 보니 다른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거든요. 그런데 저희가 추구하는 게 99.9% 완벽한 순도의 원료는 아닙니다. 그런 무결함이 아니라 우리만의 맛과 느낌을 낼 수 있는 재료를 찾아다니는 거예요. 개인이 하기에는 힘든 과정일지라도, 작가가 발품을 팔고 노력만 한다면 우리가 원하는 맛을 내는 원료는 충분히 구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시형 작가“통제할 수 없는 요변(窯變)의 매력과 동시대적 감각의 결합” Q. 호주에서 장작 가마를 지으며 도예의 매력에 매료되셨고, 2010년 귀국해 충북 음성에서 작업을 이어오고 계십니다. 유약을 바르지 않는 ‘무유(無釉)’와 ‘장작 가마’를 고집하시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A. 우선 제가 무유를 하게 된 건 어릴 때부터 불을 가지고 놀고, 운동하는 걸 되게 좋아했기 때문이에요. 그런 성향들이 작업 방식으로 이어진 거죠. 장작 가마는 계속 도끼질해서 장작을 패야 하고, 가마에 그걸 계속 넣어줘야 운영이 되거든요. 불을 때기 시작하면 5일 이상 내내 가마 앞을 지켜야 합니다. 체력적으로는 점점 바닥나지만 묘한 희열이 있어요. 요즘 마라톤 할 때 느끼는 ‘러너스 하이’ 같은 느낌이 몸에 와요. 피지컬적으로 그런 매력이 있죠. 그리고 처음에는 자연스러운 느낌이 좋아서 무유를 좋아하는 줄 알았는데, 요즘 들어 생각이 바뀐 게 저는 사실 굉장히 화려한 걸 좋아해서 무유를 하는 거였더라고요. 안료나 페인팅으로는 절대 내가 낼 수 없는, 가마 안에서 구워져 나오는 오묘한 빛에 매력을 느껴서 계속하고 있는 겁니다. 또 장작 가마는 10년, 20년을 했어도 인간이 통제할 수 없는 변수가 항상 20~30% 존재해요. 가마 안의 특별한 요변을 다 잡을 수 없으니까 그걸 계속 쫓아가게 되죠. 가마를 열 때마다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는 불안함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기대하지 못한 서프라이즈 선물 같은 즐거움이 늘 있습니다. Q. 경력이 쌓인 지금은 요변이 있더라도 어느정도 가마 속 결과를 어느 정도 예측하실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A. 장작 가마는 불이 굴뚝을 향해 한 방향으로만 흐르니까, 어느 위치에 어떤 색감과 텍스처가 나올지 대략은 정해져 있어요. 그래서 제 작업 중 정성이 많이 간 것들을 딱 그 명당자리에 놔두고 불을 뗍니다. 그런데 참 모순적이게도 저는 기물이 휘는 걸 되게 싫어해요. 하지만 장작 가마는 불길이 한쪽으로 쏠리고 압력이 높다 보니 구조상 기물이 휠 수밖에 없거든요. 휘는 건 싫어하면서도, 그 불길이 만들어내는 독보적인 색감과 텍스처가 너무 좋으니까 계속 매달리는 거죠. 가마 앞에서 불을 때고 있으면 내가 살아 움직이며 무언가를 계속 만들고 있구나를 느끼게 됩니다. Q. 법고창신 멤버의 1기이자 2기 멤버로서, 후세대 작가들과 구축하고 있는 작가님 세대만의 도자 문화가 있다면 무엇일까요? A. 선배님들과 함께 옛것을 학습하고 모티브를 얻는 ‘법고창신’의 정신은 정말 중요하고 저도 그 방향으로 하고 있는데요, 동시에 저희 세대는 어릴 때부터 나이키 운동화를 좋아하고 애플을 좋아하며 전 세계 사람들과 같은 문화적 관심사를 공유하며 자랐잖아요. 그런 분야가 작업에 투영되기도 합니다. ‘너무 한국적이지만 않아도, 내 감성이 묻어난다면 그것 또한 나의 것이다’라는 시선이죠. 그런 자유로움이 작업 속에 점점 섞여 들어가고 있다고 느낍니다. 참고로 나이로는 제가 2기 멤버들보다 많은데, 1기 마지막에 영입되어 활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두 세대를 잇는 라인이 되었습니다.(웃음) Q. 한 우물만 파오신 작가님들이지만, 요즘은 워낙 융합의 시대라 다른 장르를 시도해보고 싶었던 적은 없으셨는지 궁금합니다. A. 허상욱: 전통 기반 작가들이 대체로 보수적인 마음이 강하죠. 저는 93년도에 분청을 만난 뒤로 쭉 이 길을 해왔지만, 사실 대학 졸업 후 1년 동안 KBS 방송국에서 일한 적이 있어요. <TV 유치원> 같은 어린이 인형극의 미니어처 세트를 만드는 일이었는데, 너무 재미있었고 칭찬도 받아서 평생 이걸 하려다가 분청 특별전을 보는 바람에 인생 행로가 틀어졌죠.(웃음) 그때 방송국에서 놀아본 경험이 제게 영향을 준 것 같기도 해요. 요즘에는 스스로 확 틀어버리기보다 외부에서 협업 제안이 와요. 최근에는 한 게임 회사에서 게임 캐릭터를 가지고 작업을 해보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이제는 외부 다른 장르에서도 공예를 많이 원하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융합이 일어나는 ‘공예의 벨에포크 시대’가 열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과거 분청 하던 작가들에게 백자 원료인 코발트를 써보게 했던 실험적 전시처럼, 다른 작업을 만져보면서 새로운 가능성과 길이 열리는 건 큰 자극이 됩니다. 그리고 ‘법고창신’이 처음 시작되었던 2009년 해에, 경기도자박물관에서 최건 관장님이 기획하신 ‘분원 백자전’이 열렸었습니다. 당시 '분원 백자 1' 파트는 유물 위주로 전시하고, '분원 백자 2' 파트는 현대 작가들이 코발트를 주원료로 써서 작업하도록 유도하는 실험적인 기획이었습니다. 저처럼 원래 분청 작업을 하던 작가들이나 다른 분야의 창작자들에게 재료를 과감하게 써보도록 기회를 준 것이죠. 무론 자기 장르만 딱 고집해서 작업했을 때 나오는 깊이도 분명 있지만, 익숙하지 않은 다른 재료를 만져보면서 완전히 새로운 가능성과 새로운 길이 열렸어요. 실제로 그때 작업을 경험하면서 분청과는 또 다른 맛을 만들어내고, 그 매력에 매료되어 여태까지 그 작업을 끈기 있게 끌고 오신 작가님도 계십니다. 정재효 선생님도 그렇고요. A. 이정용: 처음 법고창신을 시작할 때 제가 오랫동안 막내 자리를 지키다가 비교적 최근에야 우시형 작가가 영입되면서 막내 탈출을 했는데요.(웃음) 늘 전시를 준비하는 부담감이 엄청나요. 이번엔 참가 못 하셨지만 제일 큰 선배님이신 이강효 선생님은 매번 누구보다 새로운 작품을 엄청나게 많이 해 갖고 오세요. 여쭤보면 “너희들이 이렇게 무섭게 치고 올라오는데 내가 어떻게 가만히 있냐”고 하시죠. 높은 시선과 안목을 가진 분들이 눈을 부릅뜨고 계시니, 지난 전시에 냈던 도자기를 똑같이 들고나오면 그날 저녁 술자리에서 안주거리가 되어 호되게 혼납니다. 말하지 않아도 얼마나 시간을 들였는지 다 파악이 되니까 감히 딴눈을 팔 수가 없어요. 제가 지금 분청을 해봤자 선배님들 눈에 차지도 않을 테니, 내가 서 있는 백자라는 영역에서 조금씩 더 정진해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리자고 마음먹게 됩니다. 아, 그래도 다른 장르적 도전이라면 저희 멤버들이 다 같이 모여 ‘옹기 만들기’에 도전해보자는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내년이나 내후년쯤 다 함께 제주도에 내려가서 옹기를 구워볼 생각인데, 아주 흥미로운 프로젝트가 될 것 같습니다. A. 이은범: 저는 젊은 시절 오히려 이것저것 다양하게 하다가 청자 쪽으로 좁혀져 온 케이스예요. 그래서인지 작업을 해나갈수록 청자라는 재료 하나에 더 집착하게 됩니다. '이 재료로 어디까지 표현해 낼 수 있을까'가 유일한 관심사예요. 다른 장르나 재료를 더 써보고 싶은 욕구보다는 방법적인 면에서 옛 방식으로 돌아가보려고 합니다. 옛날 고려 청자와 현대 청자의 느낌이 결정적으로 달라지는 요인도 바로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요즘 전시장 가면 다 똑같은 색깔들이라 조금 지루하실 텐데, 가스나 전기 가마는 청자의 색을 굉장히 단순화하기 때문이에요. 반면 전통 나무 가마는 밀폐된 상태에서 환원 냉각이 되면서 불의 온도 편차, 산소량, 날아다니는 나무 재가 유약 표면에 앉아 오묘하고 다채로운 색의 변화들을 만들어냅니다. 옛 고려 청자가 가진 풍성한 스펙트럼의 비밀이 바로 이 가마 속 변화에 있는 것 같아요. 이 방식을 통해 옛 느낌이 나면서도 현대적인 감각이 살아나는 작품을 해보고 싶어서 작년에 가마를 새로 지었습니다. 올가을 첫 가마를 뗄 예정이라 저도 아주 기대됩니다. ▸ 법고창신 아티스트 토크 Part 2 바로가기 《법고창신 그룹전》은 2026년 7월 3일부터 7월 19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2층,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Moderator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지원 본부장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