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트 2에서는 이번 전시의 주제인 '술상'으로 이야기를 이어가봅니다. 술상이라는 흥겨운 주제 앞에서 네 작가는 저마다 어떤 마음과 태도로 기물을 빚어내었을까요? 플라스크나 제기, 바다, 증류주 등 각자의 모티브를 담아낸 유쾌한 제작 일화부터, 이들이 마음속으로 그리는 일상 속 풍류까지 솔직하고 담백한 이야기를 만나보세요. ▸ 법고창신 아티스트 토크 Part 1 바로가기 Q. 도자하면 “풍류”가 떠올라요. 풍류는 사전적 의미로는 “풍치가 있고 멋스럽게 노는 일”이라고 합니다. 멋스러움에 술상을 빼놓을 수가 없죠. 이번 전시의 주제가 '술상'인데요. 차 도구를 빚을 때와는 기술적으로나 특히, 정서적으로 태도가 사뭇 다를 수도 있겠단 생각도 들거든요. 술에 취해 세상물정 모르던 태평시절이 떠오를 수도 있을 것 같고요. 물론 이 모임을 생각하면 마냥 즐거우실 수도 있겠지만요. 작가님들이 생각하는 술상은 어떤 풍경일까요? A. 우시형: 이번 전시 주제가 워낙 제 관심사라 재미있게 작업했어요. 좀 힙해지고 싶어서 도자기로 위스키 플라스크를 만들었습니다. 주머니에 이렇게 위스키를 쏙 넣고 다닐 수 있게, 그 장면을 상상하면서요. 물론 서양 사람들은 보통 금속으로 된 플라스크를 갖고 다니지만, 그걸 도자기로 만들어서 들고 다니면 꽤 유니크하고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형태는 우리 옹기의 자라병을 모티브로 삼았어요. 위스키를 담는 플라스크와 함께 잔은 좀 크게 만들어서, 얼음을 띄워 시원하게 마실 수 있도록 구성했습니다. A. 이정용: 25년쯤 도자기를 만들다 보니, 최근 들어 ‘어떻게 만들지’보다 ‘왜 만들지’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더라고요. 도예가 역시 예술을 하는 사람인데 대중에게 무엇을 줄 수 있을까 고민하다 찾은 답이 ‘위로’였습니다. 내 그릇이 누군가의 하루에 작은 위안이 된다면 가장 가치 있는 일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저는 마냥 재미있게 노는 컨셉보다는 정반대로 격식 있는 조선시대 제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흔히 제기라고 하면 제사에 사용되는 그릇이라고 생각하지만, 옛날의 제사는 사실 단오나 추석처럼 풍요를 빌며 다 함께 즐기던 흥겨운 축제였거든요. 요즘 사회가 참 개인화되어 있잖아요. 치열하게 하루를 살고 돌아와 영화 한 편 보며 술 한잔할 때, 스스로 격식을 차려 대접하며 "오늘 하루도 무사히 살게 해줘서 감사하고 내일도 행복하게 해달라"는 따뜻한 염원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A. 허상욱: 저는 술 하면 친구나 가족들과 여행 갔을 때가 직관적으로 떠올라요. 제가 술을 워낙 좋아하는데, 바다에서 마시면 술이 안 취한다는 속설이 있거든요.(웃음) 그래서 이번엔 바다를 주제로 정했습니다. 피처에는 술을 많이 마시는 사람을 뜻하는 ‘술고래’에서 착안해 고래를 그려 넣었어요. 술을 왈칵 쏟지 않고, 완만하게 흘러나오는 장면 자체를 즐길 수 있도록 주구(물대)를 일부러 길게 뺐습니다. 술잔도 넓고 얕게 만들었는데요. 보통 도자기 잔은 안이 좁고 깊어서 상대방 잔이 비었는지 눈치를 보게 되잖아요. 잔을 넓고 얕게 하니 술이 담기는 풍경도 잘 보이고, 마주 앉은 사람의 잔이 비었을 때 곧바로 알아채고 기분 좋게 채워줄 수 있습니다. A. 이은범: 먼저 법고창신이 되게 격식 있는 모임처럼 보이는데, 사실 아닙니다.(웃음) 처음엔 이름도 없었고, "1년에 딱 한 번 뭉쳐서 술이나 한잔하자"며 시작된 모임이에요. 10여 년 세월이 흘러 다들 중년 작가가 되니 외부에서 멋진 이름을 붙여주신 거죠. 저희는 그냥 바닷가든 어디든 모여 흐트러지게 마시는 걸 즐기는 편입니다. 이번에 술상을 준비하면서 전통 증류식 소주를 만드는 양조장 친구가 떠올랐어요. 곁에서 보니 소주가 재료 본연의 향을 담아내기 위해 엄청난 공을 들이는 귀한 술이더라고요. 그런데 정작 우리 술 문화는 무조건 원샷을 하고 비우는 분위기잖아요. 그래서 이번엔 증류주를 마실 때 향도 음미하면서 나만을 위한 고급스러운 시간을 보낼 수 있는 그릇을 고민했습니다. 향기를 입안에 머금을 수 있도록 형태를 디자인했고, 정제된 상태에서 차분하게 술을 즐길 수 있도록 밀도를 높였습니다. Q. 다들 대단한 애주가이신 것 같아요. 술을 진심으로 사랑하면서 작업을 하시는 느낌이 많이 드네요. 만약에 술을 잘 못하시는 분이 이 기물을 만드셨다면… (웃음) 굉장히 이 모임하고 딱 최적화된 그런 전시가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A. 기물이 문제가 아니라, 저희 팀에 있지를 못해요. 저희가 2009년 경기도자박물관 법고창신 전시로 처음 인연을 맺은 뒤, 1년에 한 번씩 함께 전시를 시작한 게 한 12년 전부터예요. 물론 전시가 아니더라도 매년 만나긴 했습니다. 다들 평소에는 작업실에 틀어박혀 말 한마디 안 하고 묵언 수행하듯 작업만 하거든요. 그러다 1년 중 딱 하루 다 같이 모여서, 쌓인 사는 얘기 나누고 맛있는 것 먹으며 신나게 즐기는 거죠. Q. 이제 대화를 마무리할 시간인데요.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법고창신에게 '술'이란 전시 주제를 넘어 이 모임을 지속하게 하는 힘이자 가장 재미있는 놀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앞으로의 계획이 있다면 얘기해 주세요.A. 이은범: 이대로 가다간 저희가 진짜 술만 마시는 모임으로 보일 것 같은데요.(웃음) 저 같은 경우에는 낮에 열심히 일하고 나면, 밤에 꼭 스스로에 대한 보상처럼 술 한 잔이 생각나긴 해요. 그런데 사실 도자기 하는 사람들이 대부분 소극적이고 내성적이에요. 혼자 있는 시간 좋아하고, 작업에만 파묻혀 지내는 걸 즐기죠. 그러다 보니 1년 내내 작업장에만 갇혀 있기 쉬운데, 이 모임을 처음 이끄신 이강효 선생님이 그걸 깨 주신 거예요. 선생님은 젊었을 때 미국에서 옹기 투어를 다니며 서로 교류할 때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몸소 겪으셨던 분이거든요. 교류해야 성장한다는 걸 아셨던 거죠. 그렇게 방구석에 묻혀서 작업만 하는 후배들을 밖으로 끄집어내 만나게 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된 모임입니다. 저희가 지금 술을 쫓아가는 것처럼 보여도 결국은 소통을 하려고 마시는 거지, 주객이 전도된 게 아니라는 걸 꼭 짚고 싶네요. A. 허상욱: 이번 봄에 부산에서 이번 전시의 전신 격인 술잔 전시회가 있었어요. 오프닝을 마치고 이은범 작가랑 둘이 서울로 올라오면서 나눈 얘긴데, 진짜 실현이 될지는 모르겠어요. 우리 회원 중 한 명의 작업실에 다 같이 모여서 공동 작업을 하거나, 각자 만든 걸 한 가마에 몰아넣고 불을 때 보는 거예요. 그리고 가마를 여는 날 손님들을 초대하는 거죠. 가마에서 도자기를 꺼낼 때의 그 신비로움과 기대감, 긴장감 같은 마음을 사람들과 같이 나누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작업장 주변에 어울리는 자리를 딱 찾아 작품을 하나씩 툭툭 전시해 놓고, 사진도 찍고 함께 어울리는 자리를 만들면 참 좋겠다 싶더라고요. 아, 물론 가마 주인하고는 아직 논의를 안 해봤습니다.(웃음) A. 이정용: 제가 중간에서 좀 엉뚱한 제안을 자주 던지는 편인데요. 제가 이분들을 모시고 꼭 해보고 싶은 일 중 하나가, 전라도의 어느 마을 회관에서 전시를 여는 거예요. 지금 시골 마을회관에 계신 할머니들이 그 지역 고유의 손맛과 음식을 온전히 간직한 거의 마지막 세대 아닐까 싶거든요. 기회가 된다면 할머니들 몇 분을 섭외해 제철 나물이나 귀한 음식들을 부탁드리고, 비용은 저희가 다 대는 거죠. 그렇게 차린 음식들을 저희 그릇에 정성껏 담아 동네 분들과 손님들을 초대하고 싶어요. 후배들에게도 전시라는 게 꼭 미술관, 화이트 큐브에서만 열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 전시장일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거든요. 지금 위치에 계신 선배님들이 이런 활동적인 모습을 보여주는 것도 큰 역할이라고 생각해서, 열심히 설득해볼 예정입니다. ▸ 법고창신 아티스트 토크 Part 1 바로가기 《법고창신 그룹전》은 2026년 7월 3일부터 7월 19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2층,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Moderator 한국공예·디자인문화진흥원 김지원 본부장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