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도 바람처럼 전할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종종 합니다. 말로 꺼내기에는 조금 조심스러운 마음도, 바람을 타고 흘러가 작은 기척으로 닿을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김성희 작가의 모빌을 보고 있으면 어쩐지 그런 일이 가능할 것도 같습니다. 작은 바람에도 서로의 움직임을 다정히 주고받는 모빌처럼, 마음도 가볍게 건너갈 수 있을 것만 같기 때문입니다. 한지와 종이로 꽃을 피우고, 나무를 깎아 작은 자연을 만드는 소호수 김성희 작가. 《같은 바람》 전시를 앞두고 나눈 이야기를 여기 전해봅니다. Q. 안녕하세요, 작가님. 《영원으로의 걸음》 이후 3년 만에 다시 인사드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A. 안녕하세요. 새로운 공간으로 확장한 핸들위드케어에서 3년 만에 전시를 열게 되어 기쁜 마음입니다. 작업실에서 여느 때와 비슷하게 모빌 작업에 집중하며 지냈습니다.지난 전시 이후에는 피어 있는 꽃 조각을 만들기 위해 시간이 날 때마다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어요. 나무로 여린 꽃잎과 꽃술을 제작하는 게 쉽지 않아 고군분투했던 기억이 납니다. 결국 2024년에 한지와 종이를 이용해 꽃을 완성할 수 있었어요. 꽃 만드는 것을 연구하고 숙련도를 높이기 위해 지난 2년간 틈날 때마다 꽃 작업에 집중하는 시간을 보냈습니다. Q. 어느덧 가을의 한복판에서 핸들위드케어와 함께하는 세 번째 전시를 열게 되었습니다. 나무 먼지와 뒤엉켜 거칠게 나무를 다듬다가도, 핀셋을 손처럼 사용하는 섬세한 작업에 몰두하며 봄과 여름을 보내셨다고요. 분주한 작업 일상 속에서도 어떻게 숨을 고르며 지내셨는지, 문득 떠오르는 계절의 장면이 있다면 나누어 주세요. A. 평소 단순한 일상을 보내는 만큼 집과 작업실 주변에서만 성실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단독 주택에 살며 작업하고 있어서 식물을 돌보거나 밥을 주는 길고양이들과 인사하고, 근처 산과 천변에서 산책하는 것이 사계절의 풍경을 누리는 잠깐의 쉼입니다. 바쁠 때는 가지 못하지만, 근처 북한산 산책로를 따라가다 보면 널찍한 바위에 앉아 쉴 수 있는 비밀의 공간이 있어요. 혼자서 숨을 고르고 싶을 때는 산으로, 작업실에서 고립감을 느낄 때면 천변으로 산책을 나섭니다. 무엇보다 작업실 문을 열었을 때 밥과 간식을 먹으려고 기다리는 고양이들을 만나는 것이 요즘 가장 큰 즐거움이에요. 또 매년 5월이면 친구들이 살고 있는 일본 시골에 다녀오곤 하는데요. ‘소호수’라는 아틀리에 이름을 짓게 된 호수를 만나고, 무수한 별이 수놓인 밤하늘 아래 네 가족이 모여 함께 요리한 봄 제철 음식을 먹으며 이야기를 나눕니다. 그렇게 십 년 넘게 쌓인 시골 여행의 기억이 오래 추억하게 되는 봄의 장면들이에요. Q. 천양희 시인의 〈교감〉이 이번 전시의 바탕이 되었다고 해주셨어요. 시에서 어떤 장면이 작가님에게 와닿았는지, 그리고 그 이야기가 이번 작품으로 어떻게 이어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A. 시어와 단어, 시의 은유, 대화를 청하는 시의 세계에서 모빌 작업에 대한 영감을 받을 때가 있습니다. 그래서 틈날 때면 시집을 읽곤 해요. <교감>을 읽었을 때는 시 속 화자가 호숫가에 앉아 있는 장면이 떠올랐어요. 윤슬을 바라보는 화자가 누군가를 움직이게 하는 마음과 움직일 수 있는 마음을 생각하고 있지 않았을까 상상했어요. 그러면서 ‘교감’과 ‘함께 있음’이 새삼 다른 감동으로 다가왔고, 이 시가 오래 마음에 남았습니다. 그 마음이 모빌에 깃든다면 좋겠다는 생각과 함께 움직이는 두 모빌이 겹쳐있는 장면도 떠올랐어요. 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풍경을 모빌로 완성하는 것이 새로운 과업이 된 것 같은 기분으로 이번 전시의 꽃과 열매, 새 작품들을 준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Q. ‘한 마음을 움직이게 하는 풍경’이라는 말이 이번 전시를 잘 보여주는 것 같아요. 그 풍경을 이루는 여러 꽃 가운데 신작의 소재로 ‘들국화’를 고르신 이유가 궁금해요. 더불어 이번 들국화 모빌에 처음 적용한 새로운 연결 방법에 대해서도 소개해 주세요. A. 처음 꽃 모빌을 완성했을 때는 꽃 한 송이를 잎과 연결하는 것에 집중했습니다. 조각의 볼륨감이 달라지니 균형감 있게 조각을 연결하는 일이 어려웠거든요. 찻자리에 함께할 수 있는 작은 규모의 모빌을 목표로 하기도 했고요. 이번 전시의 주제를 ‘교감’으로 정하고 가을의 풍경을 그려보면서 가장 먼저 떠오르는 꽃이 어릴 때부터 길에서 흔히 보았던 계란꽃 모양의 꽃이었어요 국화류의 꽃을 만들기 위해 꽃받침과 꽃잎, 꽃술까지 다양하게 시도해 보았어요. 그러다 특정한 이름의 꽃을 재현하기보다 모빌로 완성하기에 알맞은 모양과 크기로 정하고, 이름을 ‘들국화’라고 지었습니다. 계란꽃 모양의 꽃들을 흔히 들국화라고 부르기도 하니까요. 산들바람에 움직이는 꽃 무리를 떠올리며 기둥째 기우는 모빌로 완성하기 위해 모빌 연결 방법도 새롭게 고안했어요. 자유롭게 움직이는 모빌보다 시소처럼 부드럽게 움직이는 구조라면 꽃 무리와 비슷할 것 같았거든요. Q. 꽃과 함께 감을 비롯한 열매와 새를 모티브로 한 작품도 선보입니다. 작가님의 작품 속 자연물에는 저마다 기억과 마음이 깃들어 있지요. 각각 어떤 이야기의 씨앗에서 출발한 작업인지 궁금해요.A. 처음 식물 모티브의 모빌을 만들었던 2019년, ‘열매’라고 부르는 오랜 친구에게 응원과 위로를 건네는 마음에서 〈모빌-열매〉 시리즈가 시작되었어요. 서로 비슷한 고민을 하며 속 깊은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이어지다 보니 자연스럽게 생겨난 마음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그 이후로는 추상적인 형태의 모빌 조각이 아니라 자연물과 식물에서 출발한 시리즈를 이어오고 있어요. 개인적 상념과 감정, 기억에서 출발해 꽃과 열매라는 단어 앞에 상태를 덧붙이고, 그에 따라 모빌의 형태를 변주하며 시리즈를 만들어갑니다. ‘(떨어진) 열매와 가지’, ‘(필) 꽃’, ‘(진) 꽃’, ‘(말라가는) 낙엽’처럼요. 저 자신에게서 출발해 누군가의 곁에 도착한 모빌이 저마다 다른 기억과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자연물이라는 것이 또 다른 교감이 아닐까 하네요. Q. 동백과 나팔꽃은 홀로 두었을 때에도 아름다운 수형을 이루도록 고민하셨다고요. 실제 식물의 모습을 그대로 재현하기보다 모빌만의 형태와 움직임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어떤 부분을 중요하게 고려하시나요? A. 모빌 조각이 얼마만큼 움직일 수 있는지를 가장 많이 고려하게 됩니다. 그래서 전시를 위해 작업하는 식물 모빌은 완성한 이후에 바라보는 시간을 오래 갖는 편이에요. 또 그 시간 동안 잎을 다시 넣고 빼거나, 조각과의 간격을 재조정하고, 연결 부위의 각도를 바꾸어 움직임의 방향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모빌에 꽃이 피니 얼굴이 생긴 것 같아서, 움직일 수 있는 각도를 정하는 일이 더 중요해졌어요. 1차로 완성 후에도 작업실 한편에 모빌을 두고 다시 바라보며 꾸준히 수정합니다. 스케치를 바탕으로 모빌을 만들었지만, 조립된 식물이 건네는 말을 들어보는 시간인 것 같아요. 그래서 최종적으로는 처음 스케치와 다른 모빌을 완성할 때가 더 많은 편이에요. Q. 전시를 준비하며 ‘그늘의 둘레’라는 제목을 떠올리기도 하셨죠. 함께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그늘의 둘레도 넓어져야 한다는 이야기가 무척 따뜻하게 다가왔습니다. 작가님이 모빌을 통해 관객들에게 내어주고 싶은 그늘은 어떤 모습이었나요? A. 전시 주제를 ‘교감’으로 정하고 교감하는 관계를 생각하며 가장 먼저 나무와 나무를 떠올렸어요. 나무가 모이면 그늘이 생기고, 관계가 많아질수록 나무 그늘의 둘레도 넓어지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늘은 쉬는 장소이기도 하지만 마음에 자리 잡으면 슬픔이기도 합니다. 그늘진 마음은 그늘진 나무 곁에서 잠시 쉬어갈 수 있길 바라요. 전시에서도 그늘에 앉아 풍경을 바라보듯 모빌을 봐주시면 좋겠다는 마음이었어요. Q. 소호수 아틀리에의 작업에는 자연의 생명력과 함께 ‘위로’와 ‘회복’에 대한 마음이 꾸준히 이어져 왔지요. 오랫동안 사람의 마음을 향한 이야기를 작품에 담아오신 이유가 궁금합니다.A. 누구에게나 마음에 남겨진 것이 있다고 생각해요. 말이나 감정, 장면이 마음에 남아 추억이 될 수도 있고 상처가 될 수도 있겠습니다. 기쁨은 비교적 쉽게 나눌 수 있지만 슬픔을 공유하는 건 때론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을 다시 느끼게 되었어요. 용기가 없어서 혼자 삼키는 슬픔이 있다는 것도요. 슬픔을 이해하는 것에 관심을 두게 된 이후 자연스레 그 마음이 모빌 작업에도 반영된 것 같아요. 사람, 관계, 삶, 마음, 감정에는 모두 슬픔이 동주한다는 것을 자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누군가에게 사려 깊은 사람이 되고 싶다는 의지가 생기고, 그런 변화를 작업에 담고 싶은 마음이 드는 것 같아요. 슬픔의 과정엔 위로를, 슬픔의 뒤에는 회복을, 그리고 그 다음에는 이제 ‘함께함’을 시도해 보는 것이 아닐까 하네요. Q. 모빌은 끊임없이 흔들리며 결국 자신만의 균형을 찾아가는 작업이기도 합니다. 오랜 기간 모빌을 만들어온 작가님에게 균형이란 어떤 의미인가요? A. 요즘의 저에게 균형은 거리감이에요. 조각과 조각 사이,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과 마음 사이. 매일 모빌을 만들면서 식물의 질서에 따라 조각과 조각을 연결할 때마다, 아름답고 조화로운 거리감을 찾아내는 것이 나의 일이라고 느끼게 됩니다. 관계로 인해 생각이 너무 많아질 땐 그 사람과 나와의 거리를 정하면 복잡한 마음이 정돈되고 조금 편안해지는 것 같아요. 꽃과 잎, 열매와 잎, 존재와 존재 사이의 조화롭고 아름다운 균형을 찾는 일도 이와 비슷하지 않을까 합니다. Q. 한 송이에서 꽃무리로, 그 위를 날아가는 새들로 작업의 풍경이 조금씩 넓어지고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번 전시를 지나 앞으로 소호수의 작업은 또 어디로 이어질까요? A. 언제까지 모빌을 만들 수 있을지 고민하던 시기도 있었는데, 아직 만들고 싶은 것이 있다는 게 감사해요. 당분간은 다양한 꽃을 피우는 일에 집중하지 않을까 합니다. 마음과 감정의 흐름에 따라 꽃을 정의하고, 꽃의 종류와 상태, 계절과 장소를 바꾸며 모빌 작업을 이어 가보려 해요. 숲을 걷듯 자연과 조응하고, 마음에 닿는 자연물을 포착해 모빌의 움직임으로 담아내는 많은 시도를 해보겠다고 말할 수 있겠네요. 구체적이면서도 고요한 세계를 표현하기 위해서는 많이 만들어보는 수밖에 없는 것 같습니다. Q. 마지막으로 이번 전시를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부탁드려요.A. 저는 조금 느리지만 꾸준히 걷고 있어요. 모빌을 만들며 만나게 된 분들로부터 받았던 응원은 꾸준히 작업할 수 있는 큰 힘이었습니다. 앞으로도 저를 움직이게 하는 마음들을 기억하며 작업을 이어가겠습니다. 이번 전시에서 여러분의 마음과 닿는 모빌, 그리고 조각으로부터 마음이 시작되는 모빌을 ‘같은 바람’으로 마주할 수 있길 바랍니다. 다양한 꽃과 잎, 새와 열매가 모여 한 마음을 움직이게 할 수 있다면 그보다 더 기쁜 일은 없을 거예요. 김성희 작품전 《같은 바람》은 2026년 10월 8일부터 10월 18일까지, 녹사평 티더블유엘 4층 handle with care 에서 진행됩니다. Editor 오송현Photo 이승아, 김성희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