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와 육지를 오가며 《빛의 농담濃淡》 전시의 합을 맞춰온 김경찬, 이태훈 작가님과 함께 지난 여정을 되돌아보았습니다. 서로가 서로에게 영감이 된 빛나는 순간의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봅니다. Q. 함께 듀오 전시를 열게 된 소감을 먼저 듣고 싶습니다. 두 분께도 새로운 시도였으리라는 생각이 들어요.이태훈(이하 이): 기대 반 걱정 반이었습니다. 도자와 유리는 늘 서로 멀지 않은 곳에서 함께했지만 이렇게 실제로 2인전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 기대감이 컸어요. 물론 그런 기대만큼 도자와 유리가 서로 잘 어울리는 전시를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에 걱정이 들기도 했습니다. 김경찬(이하 김): 평소 유리에 대한 관심이 많았어요. 2018년 KCDF의 공예디자인 스타상품개발에 참여할 당시에는 이태훈 작가와 다른 팀이었는데, 2019년 후속지원 작가로 나란히 선정되면서 함께 작업을 진행했습니다. 인간적인 측면뿐 아니라 작업적인 측면에서도 제가 추구하는 방향과도 잘 맞아 즐거운 작업이었어요. 동갑이라 좀더 편하게 지낼 수 있었는데, 이번 전시를 함께 준비하게 되어 더욱 기뻤습니다. Q. 지난 여름 동안 경기도 일산과 제주에서 각자 작업을 진행하셨지요. 전시를 준비하며 의견을 나누고 호흡을 맞춰 나가는 협업 과정은 어떠셨나요? 이: 김경찬 작가와는 나이도 같고, 가끔씩 술잔도 기울이며 작업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한 사이라 의견을 나누고 호흡을 맞춰가는 일련의 협업 과정에 불편한 점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김경찬 작가의 작업량이 워낙 많고 라인업도 튼튼하다보니 거기에 맞춰 방향을 풀어나갔고, 편안하게 제 작품을 만들어갈 수 있었어요. 김: 물리적인 거리가 있다보니 직접 실물을 보며 의견을 나눌 수 없는 점이 다소 아쉬웠는데, 서로의 스케치와 성형 전후의 기물 사진을 보면서 조금씩 맞춰가다보니 이제는 사진만 보고서도 ‘음, 이런 느낌이겠군’ 하고 짐작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간의 여유가 좀더 주어진다면 보다 더 즐겁게 작업을 진행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Q. 흙과 유리라는 서로 다른 물성의 재료를 나란히 선보이기로 했을 때, 어떤 장면 혹은 생각이 떠오르셨는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기대와 염려 중 어느 쪽에 더 무게가 실렸는지도 내심 궁금하고요. 김: 제주옹기가 지닌 묵직하고 투박한 질감과 이와 반대되는 유리의 투명하고 섬세한 물성이 공존하는 재밌는 전시가 되겠다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습니다. 서로가 지니지 못한 질감을 채워주는 형태가 될 것 같아 기대감이 더 컸어요. 이: 저 역시 기대가 더 컸습니다. KCDF의 공예디자인 스타상품개발 공모에서 김경찬 작가의 작품을 처음 보았는데, 얼핏 봐도 워낙 실력이 좋았기 때문에 ‘나만 잘하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보통 대학에서 유리를 가르칠 때 흙과 유리를 함께 교육합니다. 그만큼 두 재료의 작업방식이 비슷한 면이 많은데,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물성이 완전히 다를 뿐 아니라 시각적인 면에서도 투명/불투명한 차이가 있어요. 닮은 듯 다른 두 재료가 서로 어우러지는 전시를 연다는 건 저에게 새로운 도전이었고, 제 기대만큼 보시는 분들도 만족스러운 자리가 되었으면 합니다. Q. 김경찬 작가님께서는 제주에서 생활하고 계시지요? 생활인이자 작업자로서의 하루 일과가 궁금합니다. 운영하고 계시는 〈제주점토 도예 연구소〉에 대해서도 소개 부탁드려요. 김: 2016년에 은사님의 작업실에서 나온 뒤 2017년에 중고 가마를 사면서 지금의 제주점토 도예 연구소를 시작하고, 정착하게 되었어요. 이곳에서 제주가 지닌 문화적 요소와 제주옹기의 쓰임에 대한 미학을 현대적으로 풀어가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보통은 아침 9시부터 6시까지 연구소의 작업실에서 생활합니다. 정지영 아나운서가 진행하는 라디오 프로그램의 오프닝을 들으면서 시작을 하려고 해요. 작업실에 오면 먼저 차를 한잔 마시면서 해야 할 일을 정리하고 작업에 돌입합니다. 라디오나 노래를 조금 크게 틀고 작업을 하다, 오후 6시 무렵 〈배철수의 음악캠프〉 오프닝이 나오면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지요. 가끔 작업이 밀리거나 가마를 떼야 할 때는 루틴에서 벗어나 새벽 일찍 작업실에 오거나 늦은 밤까지 작업에 매진합니다. Q. 이태훈 작가님의 경우 무더위를 뚫는 작업장의 엄청난 열기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쉽지 않은 환경에도 불구하고 작업을 계속해나가게끔 하는 유리 공예의 매력이 무엇일까도 궁금해졌고요. 유리 공예를 본격적으로 시작하시게 된 계기가 무엇일까요.이: 대학에서 유리를 전공했어요. 대학교 2학년 겨울, 선배들로부터 블로잉 기술을 배웠지요. 모든 면에서 알면 알 수록 매력적인 기법이라고 느꼈습니다. 결과물을 그 자리에서 즉각적으로 확인하며 작업할 수 있다는 것, 액체에 가까운 물성을 점점 고체화시키며 내가 원하는 형태로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유리만의 큰 장점이라 생각합니다. 신기하게도 하면 할 수록 블로잉은 어려워져요. 아직 연습할 부분이 많고 국내외 유명 작가님들의 제작과정을 끊임없이 살펴보며 공부하고 있어요. 여전히 도전할 수 있는 영역이 많고, 계속 발전해나갈 여지가 있다는 점 또한 유리공예의 매력입니다. Q. 반면 김경찬 작가님께서는 도예를 전공하셨지요. 다양한 선택지 가운데 제주 옹기를 선택한 특별한 이유가 있으셨나요? 김: 도자를 시작한 뒤 제주 옹기를 장작가마에서 떼는 교수님을 도운 적이 있습니다. 그때부터 차츰 제주 옹기에 대한 사명감이나 친숙함이 생겨났던 듯해요. 이후 대학원에서 제주점토에 대해 공부하다보니 자연스럽게 제주 옹기를 작업의 중심으로 삼게 됐고요. 제주점토는 따로 구매하거나 쉽게 찾을 수 없는 재료다보니, 자문과 자료를 토대로 직접 흙을 채취하고 실험하는 과정이 필요했어요. 그러면서 제주점토에 대한 재미가 더욱 커졌고 작업을 이어가야겠다는 결심이 섰습니다. Q. 사실 육지(!)에서 제주 옹기를 접할 기회가 그리 흔치는 않습니다. 과거 물항아리 용도로 쓰였던 ‘허벅’의 존재 또한 처음 알게 되었고요. 일반 옹기와는 구별되는 제주 옹기만의 정체성 또는 특징은 무엇일까요.김: 내륙의 점토에 화산 폭발로 인한 화산재가 침투되었다는 점, 섬이라는 고립된 특성과 독자적인 문화생활이 결합되었다는 점이 육지부 옹기와 제주 옹기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허벅의 경우 제주 전역에 수도가 놓이고, 플라스틱 제품이 일상화되기 전 물을 길어나르기 용이하도록 만들진 옹기예요. 제주 문화가 집약된, 그야말로 제주가 담긴 대표적인 유산입니다. Q. 이태훈 작가님께서는 이번 전시를 위해 제주 옹기와 허벅을 모티브로 한 유리 오브제를 마우스블로잉 기법으로 만들어주셨어요. 화병, 식기, 유리 화병 등의 다양한 작업 중 어떤 것이 특히 더 흥미로우셨나요? 이: 모두 즐거웠습니다.(웃음) 그중 허벅을 모티브로 한 작업은 처음이었음에도 결과물이 만족스러웠어요. 그 외 작업물도 디자인부터 제작까지 전 과정이 흥미로웠고요. 샘플링을 하면서 우연히 나오는 형태의 변형 또한 즐거웠습니다. 특히 이번 전시를 위해 만든 비정형 화병은 제가 평소 시도해보지 않은 스타일이라 어떻게 바라봐주실지 궁금하기도 해요. Q. 국내에 마우스블로잉 기법을 기반으로 작업하는 분이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마우스블로잉 기법의 특징과 작업 과정 전반에 대해 간략히 설명해주실 수 있을까요. 이: 마우스블로잉 기법은 유리를 1250℃ 정도의 고온에서 녹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유리가 완전히 용융되면 속이 비어 있는 파이프 끝에 유리를 말아서 작업을 하는데요. 한번에 많은 양의 유리를 말아 올릴 수 없기에 여러 차례 나눠 유리를 말아 올린 뒤 본격적인 작업에 들어갑니다. 이때 유리의 형태를 만드는 가장 중요한 도구 중 하나가 신문지입니다. 여러 겹으로 접은 신문을 물에 적셔서 유리를 만지는데, 이때 불리면 안될 부분을 젖은 신문으로 만지면서 식히고 형태를 만들게 됩니다. 내열유리를 제외한 대부분의 유리는 온도 변화에 굉장히 예민해서 급격히 식거나, 차가운 상태에서 갑자기 열이 가해지면 깨져버려요. 때문에 형태가 완성된 뜨거운 상태에서 약 510℃의 서냉가마 안에 넣어 약 12시간 정도 천천히 식혀줍니다. 그렇기에 웬만한 형태의 기물들은 다음날 꺼내서 사용할 수 있어요. 이후에는 연마 등의 마무리 작업을 합니다. Q. 작업을 할 때 어떤 지점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시나요?이: 제 마음에 드는 작품을 만드는 것입니다. 가끔 스스로 만족하지 못한 상태에서 제 자신과 타협을 하려는 경우가 있는데 그걸 한번 더 넘어서는 과정이 굉장히 어려우면서도 넘어서면 만족스러운 결과가 나오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결국 ‘스스로 타협하지 말자’ 정도겠네요. Q. 다른 작가분들의 마우스블로잉 작업과 구분되는 자신만의 차별점은 무엇일까요.이: 작가들마다 가지고 있는 특색과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 다릅니다. 저의 경우 유리가 지닌 고유의 매력을 특별히 강조하고 싶어요. 얇은 두께와 투명성, 혹은 반투명이지만 빛에 두었을 때 화려한 장식이 보인다든지 같은 디테일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이번 전시의 오브제도 숨어 있는 디테일을 표현하는 것에 집중했고, 유리다운 멋이 돋보이도록 측면 라인을 특히 신경써서 작업했습니다. Q. 김경찬 작가님의 제주 옹기의 경우 사용하는 재료에서부터 고유한 차별점을 지니고 있어요. 작품에 사용된 화산회토만의 고유한 성질이나 특징이 궁금합니다. 흙을 수급하고 다루는 데 어려움은 없으세요?김: 화산재가 침투한 제주점토는 기본적으로 철분 함량이 높아 붉은색을 띱니다. 1,180℃의 낮은 온도에서 자화를 이루며 특유의 붉은 색감을 지니게 되는 것이죠. 특유의 거뭇한 색감은 붉은색 기물에 연기를 입히면서 생겨 납니다. 점토의 경우 직접 채취해서 사용하고 있어요 불순물과 작은 돌알갱이가 많아 120목 200목으로 채를 치고 건조시킨 뒤 사용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지만 익숙해지다보니 큰 어려움은 없습니다. 다만 한번 수비하고 나면 15~18덩이 정도 밖에 나오지 않아 항상 흙이 모자라는 애로사항이 있지요. Q. 문화사적으로도 제주 옹기는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합니다. 석요(현무암)로 된 가마는 전 세계를 통틀어 제주에서만 발견된다 하고요.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작가로서 제주 옹기를 널리 알려야 한다는 책임감을 느끼시기도 하나요? 김: 많은 사람들에게 제주 옹기가 과거의 유물이 아닌 친숙하고 밀접한 생활 옹기, 오브제로 느낄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책임감을 지니고 있습니다. Q. 현재 진행 중이거나 앞으로 계획하신 작업이 있다면 소개 부탁드릴게요.김: 화기와 화병보다는 티팟과 테이블웨어에 중점을 두고 작업을 진행할 예정입니다. 제주 옹기가 지닌 선의 요소, 질감, 문양 등 제주가 가진 투박하면서도 절제된 부분을 작업에 녹여내고 싶어요. 이: 이번 전시를 통해 많은 고민을 하며 공부를 했고 현재도 진행 중입니다. 가장 나다운 것이면서 한국적인 느낌을 만들어내고 싶었는데, 유리라는 현대적인 재료로 표현하는 것이 막막하고 어려웠어요. 그렇게 “과연 무엇이 한국적인 형태일까” 라는 물음을 던져오던 차에 김경찬 작가의 제주 허벅이 시작점이 되었습니다. 익숙한 형태를 기본으로 심미성과 기능성을 연구하며 더 나은 형태를 만들려고 노력했어요. 작업을 하며 제가 느낀 옛 것들의 형태는 순수, 순박, 아담, 단아함, 풍족, 화려함, 넉넉함, 단정함 등이었습니다. 이런 것들이 제 작품에서 보여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앞으로도 제가 표현하고자 하는 바가 더 명확하게 보이게, 저의 색이 돋보일 수 있도록 꾸준히 작업하려 합니다. 《빛의 농담濃淡 - 김경찬&이태훈 작품전》은 온라인 스토어를 비롯해 한남동 handle witch care에서 만나볼 수 있습니다. ☞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