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록이 눈부신 계절, 꽃 그림을 평생 그려온 노숙자 선생님과 서면으로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오랜 시간 꽃과 나눈 애틋한 마음을 멀리서나마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어요. 애정을 담아 지은 초화의 기록과 그간의 작업 이야기를 여기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그림 속 풍경처럼 꽃으로 물드는 봄입니다. 보통의 일과는 어떻게 보내시나요?A. 병원에 다니고 있습니다. 꽃이 만개하는 계절이 왔지만, 붓을 들 수가 없어서 아쉬워요. 가족과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Q. 노숙자 선생님께서는 40여 년간 작품 활동을 해오셨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수묵산수화를 전공하셨다고 들었는데, (주로 꽃을 그리는) 채색화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A. 학생들의 선생님, 그리고 아이들의 엄마라는 일상을 모두 소중히 여기다 보니 주변의 소재를 찾아 그리기 시작했어요. 넓게 보는 산수화도 좋지만, 애정을 가지고 유심히 바라보게 되는 꽃 그림이 큰 위안과 행복을 가져다주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누렸던 작은 행복의 조각들을 다른 분들과 나눌 수 있게 되어 기뻐요. Q. 지난 90년부터는 직접 야생화를 가꾸시며 꽃 그림을 그리셨지요. 손수 모종을 심고, 추운 계절을 지나 꽃이 피기까지 기다리는 데에는 오랜 관심과 애정이 필요했을 것 같아요. 긴 호흡으로 작업을 이어오신 원동력이 있다면 무엇일까요.A. 꽃을 가꾸는 데 드는 노력이 만만치 않았어요. 공부도 많이 했죠. 하지만 식물이 가진 생명력에 매번 감탄합니다. 작지만 거대한 에너지를 느끼고 관찰하는 것이 저에게는 그림을 지속해서 그리는 힘이 되어주었던 것 같아요. 식물은 제가 찾을 때마다 늘 순간적인 대답을 들려주었어요. Q. 작업 노트 중에서 “꽃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아름다운 시간을 늘려가고 싶다”라는 구절을 보았습니다. 꽃마다 작업을 하면서 겪었던 에피소드도 모두 다를 것 같은데요. 선생님에게 꽃이 주는 감정이나 의미가 어떤 것일지 듣고 싶어요.A. 저의 작업은 실물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사생(寫生)을 기본으로 해요. 어느 날 차를 타고 올림픽공원을 지나다 본 코스모스 군락을 그리고자 며칠 뒤 남편을 재촉해 스케치북을 들고 달려간 날, 목화를 그리고 싶어 제자들과 함께 민속촌에 갔던 날, 어린 손녀를 옆에 두고 팔찌를 만들어주며 데이지를 그린 날, 제가 그림 그리는 것을 알게 된 경비아저씨가 후박나무꽃을 꺾어 준 날, 살던 집 담쟁이 아래 피고 지던 백일홍이나 채송화… 어느 꽃 할 것 없이 제 주변 사람과 장소의 소중한 추억이 담겨있네요. Q. 지난 12월에는 개인전을 여셨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커다란 화폭에 담긴 양귀비 등이 인상적이었어요. 작은 작업 위주로 구성된 이번 전시는 선생님 작품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될 것 같습니다. 상대적으로 큰 작품과 소품을 대하는 마음의 차이가 있을지 듣고 싶어요.A. 꽃이라는 소재는 조형적으로 아름답지만, 계절과 찰나성의 제한이 있어요. 생활에 쫓기다 보면 절정의 순간을 놓치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화단에 봉오리가 올라오면 그 순간을 놓치지 않으려 한 뼘짜리 화판과 기억 속에 한 송이 꽃을 찬찬히 기록해 담고는 했어요. 이번에 선보이는 소품들은 다양한 꽃의 구조와 형태를 익히고 친해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Q. 앞으로 바라시는 점이 있다면?A. 건강 때문에 더 이상 그림을 그리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살면서 바랬던 것 중 이룬 것도 많고, 즐거웠던 기억도 많지만 5년 정도만 더 그림을 그릴 수 있으면 좋겠다는 아쉬움이 있네요. 그간의 제 관찰과 기록을 정리하는 기분으로 하나둘 꺼내어 이렇게 선보이고 있습니다. 《초화일록草花日錄 - 노숙자 화백 작품전》은 2022년 5월 25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