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쪽에서
김나훔 작품전
강릉을 무대로 익숙한 일상 속 새로움을 포착해온 김나훔 작가의 작품전 《동쪽에서》를 시작합니다.
익숙한 일상으로부터 한 발짝 멀어졌을 때 문득 자신을 더 선명히 바라보게 되는 순간이 있습니다. 《동쪽에서》는 작가가 오랜 터전이던 서울을 떠나 강릉으로 이주한 뒤, 낯선 동쪽에서 마주한 감정과 풍경에서부터 출발합니다.
그림, 사진, 영상을 비롯한 다양한 미디어 작업을 넘나들며 삶의 이야기를 전해온 김나훔 작가. 이번 전시에서는 디지털 페인팅과 사진 위에 그림을 더한 혼합 작업을 통해 반복되는 일상을 낯설게 바라보는 감각을 제안합니다.
김나훔
강릉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일러스트레이터이자 작가입니다. 여행자의 시선으로 익숙한 일상 풍경을 다시 바라보며 그 안에서 길어 올린 이야기를 그림과 사진으로 풀어냅니다. 디지털 페인팅을 중심으로 사진과 드로잉을 결합한 혼합 작업을 통해 표현의 폭을 넓혀가고 있으며, 현재는 그래픽 디자이너 아내와 함께 강릉에서 갤러리 숍 오어즈Oars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Q. 《동쪽에서》는 강릉으로 이주한 뒤의 경험에서 비롯된 일상의 단편을 담은 전시입니다. 이번 전시에서 담고 싶었던 마음과 장면에 대해 더 자세히 들려주세요.
A. 사실 강릉으로 이사를 가던 시기만 해도 내면엔 ‘자연에서 영감을 받으며 그림만 그리며 살아야겠다’라는 단순한 생각만 가득 있었어요. 또 서울에서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던 과거의 저를 부정하며 어쩌면 서울과 단절을 떠올리며 떠났던 것도 있었고요.
그런데 이 두 가지 예상이 모두 빗나갔어요. 이제는 그림뿐만 아니라 사진, 영상, 글 등… 제가 강릉에서 지내며 느꼈던 감정들을 다양한 방식으로 풀어내고 싶다는 욕구를 느끼게 됐어요. 아마 아내와 함께 시작한 공간인 오어즈를 운영하며 힌트를 얻은 게 아닐까 해요. 어떤 분야에 매몰되기보단 삶 자체를 담아내자는 생각을 하게 됐죠. 또 하나는 서울을 이제는 정말 다정한 시선으로 보게 되었다는 점이에요. 사물을 너무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본질을 분간하기가 어려운 것처럼 그곳에 들어가 반복된 일상을 보냈을 땐 보지 못했던 어떤 전경이 눈에 들어오는 것을 느꼈어요. 가끔 기차를 타고 서울에 가면 비로소 그 도시가 갖고 있는 활력과 더불어 쓸쓸함 같은 것들까지 다채롭게 느껴져요. 그 기분이 정말 좋아요.
이번 전시는 동쪽에 경험한 저의 일상과 동시에 동쪽에서 바라본 세상의 풍경을 함께 이야기하고자 해요. 강릉에서는 대체 어떻게 먹고 살지? 서울을 떠나 강릉에 살면 어떤 기분이지? 너무 따분하지 않나? 모두 제가 실제로 들었던 질문들인데요. 다양성이 행복한 미래의 열쇠라고 생각하는 입장에서 그 다양성의 한 결로 저희를 이야기해 보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Q. 사진과 그림을 혼합한 작업은 현실과 상상이 부드럽게 얽힌 듯한 인상을 주어 더욱 동화적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이 방식은 어떻게 시작하게 되셨나요? 작업할 때는 전체적인 이미지를 먼저 구상하시는지, 아니면 사진을 찍은 뒤 그 위에 그림을 더해가시는지 작업 과정도 궁금합니다.
A. 컴퓨터로 그림을 그려왔다 보니 제 그림은 물감과 같은 물성을 가진 기존의 전통적 방식의 그림이라기보단 디지털화된 그림이었고 그것은 사진과 그림 사이의 무언가라고 여겨졌어요. 어릴 적부터 즐겨 했던 사진 작업과 그림 사이의 접점을 연결할 수 없을지 고민하다가 그 경계를 허물거나 모호하게 만들어버리고 싶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시작은 매우 가벼운 농담처럼 시작됐어요. 베를린에 살 때였는데 뜨거운 햇살이 내리쬐는 공원 위에 동물처럼 널브러져 누워있는 사람들을 보며 ‘너무 뜨겁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이어 ‘계란후라이처럼 익어가는 기분을 즐기는 건가?’하는 생각이 들었고, 그날 집으로 돌아가 공원 사진 위에 계란 후라이를 그려 넣었어요. 다 그리고 보니 기대 이상으로 보기 좋았어요. 그 이후로 따분하고 매우 일상적인 장면 위에 어떤 말도 안되는 일이 벌어지는 상상을 떠올렸고, 그 풍경을 사진으로 찍은 뒤 그림으로 구체화하는 방식으로 지금까지 작업을 계속 이어오고 있습니다. 전체 이미지를 미리 구상해서 작업을 하기도 하지만 그동안 기록해 온 사진들 속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작업에 들어가기도 합니다.
동쪽에서의 삶은 한때 복잡하고 피로하게 느껴졌던 서울을 조금씩 다정한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었습니다. 작품에 담긴 내밀하고도 서정적인 이야기가 각자의 마음에 닿아 새로운 시선으로 이어지길 바랍니다.
2025년 7월 4일 - 7월 20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0나길 34, 4층
070-4900-0104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전시 그래픽: 이재민
식물 연출: Botalabo 정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