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계절을 지난 풍경이 각자의 리듬으로 무르익는 가을, 윤여동 작가와 긴 대화를 주고받았습니다. 작품만큼이나 자유로우면서도 단단한 작가의 세계를 면면이 들여다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고요한 물성에서 흔들림을 모색하는 작업의 기조부터 수공예를 대하는 진솔한 이야기까지 여기 함께 나눕니다. 사진 : 박준우 Q. 안녕하세요. 전시와 작업실 운영으로 바쁜 나날을 보내신다고 들었어요. 하루 일과는 보통 어떻게 흘러가나요?A. 바쁘게 작업할 수 있어서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임하고 있어요. 저는 아침잠이 많고 저녁에 집중이 잘되는 편이라서 요즘 같을 때면 밤늦게까지 작업실에 있고는 합니다. 다음 날 오후에 출근하고, 작업하다가 퇴근하는 패턴이에요. 그런데 외부 일정도 있다 보니 온종일 작업에 몰두하는 날이 굉장히 소중하게 느껴져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매번 새로운 형태를 만들어서인지 고안하고 완성하는 데까지 평소보다 많은 시간을 들인 것 같아요. Q. 프랑스에서 오브제 디자인을 전공하고, 국내로 돌아와 금속공예를 시작하셨지요. 다양한 재료 중에서 ‘금속’을 택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A. 프랑스 유학 시절 나무, 흙, 금속 등 다양한 재료를 경험해봤지만 여러 가지를 얕게 다룰 줄 아는 것보다 어느 한 가지 분야에 깊게 파고들 필요가 있다고 느꼈어요. 그때는 졸업하고 나서 장신구에 관심이 가던 시기라 금속이 가장 기본이 되는 소재라고 생각해서 자연스레 금속공예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처음 3개월 동안은 금속공예의 기본인 ‘톱질’과 ‘줄질’만 해서 힘들었지만, 점점 다양한 과정을 배우게 되면서 머릿속에서 그리는 것들을 현실에 만들어낸다는 점이 제일 흥미로웠어요. Q. 작업의 기조로 두시는 ‘정중동 靜中動’의 개념이 인상적이에요. 작품에 적용되는 과정과 방식에 관해 듣고 싶습니다.A. ‘정중동’은 ‘조용한 가운데에 움직임이 있다’라는 뜻인데요. 제가 신라시대 금관에 달린 달개 장식을 보고 느낀 것을 제 나름대로 정의해본 거예요. 잔잔하게 흔들리면서 반짝거리는 금빛 장면이 너무 인상 깊었거든요. 이 개념을 장신구뿐만 아니라 다른 기물에도 적용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에 촛대나 풍경, 포크 등 일상생활에서 쓰이는 물건에 입혀보았습니다. 사실 아직 ‘정중동’을 마음에 꼭 들게 작품에 녹여보지는 못했어요. 처음에 받은 그 느낌을 전달하려면 앞으로 더 많은 고민과 시도가 필요할 것 같아요. Q. 언뜻 옛 유물이 떠오르는 형태와 현대적인 미감이 조화롭습니다. 심미적인 오브제처럼 보이면서도 실용성을 갖춘 점이 돋보이기도 하고요. 작업의 영감은 보통 어디서 얻으시나요? A. 매번 다르지만 대부분 일상에서 얻을 때가 많아요. 이번 전시에서 선보이는 커트러리도 대부분 평소에 봤던 영화나 어렸을 때의 기억, 일상에서 스친 생각으로부터 비롯되었어요. 작업을 하다가 불현듯 찾아오는 아이디어를 풀어낼 때도 있고요. Q. 주물 방식과 단조, 레이저커팅 등 금속을 성형하는 방식도 다양한데요. 작업의 과정을 자세히 알려주세요.A. 이번 전시에는 주물과 판금 성형 기법을 주로 사용했어요. 더욱 유기적인 느낌을 내고 싶을 때는 왁스를 사용해서 조각한 후 주물을 했어요. 아니면 망치 자국을 내서 자연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했고요. 작은 포크 하나를 만들더라도 한 번의 과정으로 끝나는 작업이 없어요. 그만큼 작품 하나하나에 손맛을 많이 담으려고 했습니다. Q. 이번 전시를 준비하시면서 특별히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나요?A. 올해 석사과정을 마치고 졸업했어요. 일과 병행하느라 졸업이 늦어져서 제가 과연 (졸업을) 할 수 있을까 평소에 고민이 많았거든요. 감사하게도 무사히 졸업했고, 바로 이번 개인전을 하게 되어 시기가 적절하게 느껴졌어요.멀게만 생각했던 졸업과 첫 개인전, 두 가지 모두를 경험하고 나면 공예가로서 한 뼘 정도는 더 성숙해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Q. 형태를 만들고 마감하는 제작의 전 과정에 참여한다는 점에서 수공예를 대하는 마음도 각별할 것 같아요. 작가님에게 손으로 무언가를 만드는 일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나요?A. 감명 깊게 읽은 리처드 세넷의 <장인>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어요.“손과 머리는 하나이며, 행동하면서 동시에 생각하는 것이 장인의 일하는 방식이다.”작업을 할수록 이 구절에 동의하게 돼요. 머릿속으로 생각한 무언가를 온전히 제 손으로 만들어내는 데서 보람을 느껴요. 제작을 하다 보면 때로는 마음에 안 드는 순간도 있거든요. 그때 잠깐 멈추고 다시 생각할 수 있는 여유를 배우는 것 같기도 해요. Q. 앞으로의 작업 계획이 궁금합니다.A. 하고 싶은 게 많아요. 위에서 언급한 ‘정중동’이라는 개념을 심화시키고도 싶고, 금속에 색깔을 입힐 수 있는 ‘칠보’를 응용해서 작업해보고도 싶기도 하고요. 규모가 큰 작업도 해보고 싶어요. 워낙 하고자 하는 게 많아서 앞으로 뭘 할지에 대한 고민보다는 내가 원하는 것을 어떻게 잘 정리해서 실현할지를 고민해봐야 할 것 같아요. 《Dining Rhapsody - 윤여동 작품전》은 2022년 10월 9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 전시 소개 자세히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