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빛이 짙어지는 사월, 《영원으로의 걸음》 전시를 앞두고 소호수 김성희 작가님을 만났습니다. 계절에 따라 달라지는 나무처럼 조금씩 변화를 거듭해 온 그간의 작업을 차근히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작지만 명징한 떨림을 만드는 작가의 이야기를 여기 함께 나누어봅니다. Q. 안녕하세요. 《봄은 파랑》 전시 이후 오랜만에 인사드려요. 그동안 어떻게 지내셨나요?A. 꾸준히 나무 모빌을 만들고 있어요. 작업을 계속하다 보니 관절에 무리가 생겨 작년부터는 조금 천천히 작업하고 있습니다. 나무 만지는 일을 무척 좋아하지만, 나이가 들수록 몸에 맞는 속도로 일해야겠다는 것을 체감하게 되었어요. Q. 이전 전시에서는 경쾌한 리듬감과 생명력이 돋보였다면, 이번 작품은 조금 더 차분하고 섬세한 느낌이 들어요. 새로운 모빌 작업에 관해 소개 부탁드립니다. A. 전체적으로 사계절의 식물을 면면이 들여다볼 수 있도록 구성했어요. 모빌은 ‘움직임’과 ‘동세動勢’가 중요한 요소인데요. 이번 전시에서 소개하는 작품은 모빌의 기본 요소를 바탕으로 식물이 지닌 회복력에 특별히 초점을 두고 작업했습니다.일부 모빌은 꽃과 잎의 모양을 구체적으로 조각해 시간성을 뚜렷하게 드러내고자 했어요. 나뭇가지에서 자라난 식물 이나 떨어진 잎을 표현한 시리즈를 새로 시작하기도 했고요. 절망과 희망, 쇠락과 회복, 수행과 애도의 감정을 잘 담아내기 위해 계절이 순환하면서 변화하는 식물의 모습을 더욱 세밀히 표현하게 된 것 같아요. Q. 쇠락과 회복을 다루게 된 배경이 있나요?A. 누구에게나 어두운 시기가 있기도 하잖아요. 작년부터 몸이 안 좋아지기도 했고, 치료와 상담을 받으면서 개인적으로 조금 힘든 시간을 보냈어요. 주변 친구들에게서 힘든 상황의 소식을 전해 듣기도 하며 자연스럽게 쇠락과 회복에 관한 생각을 자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집에서 키우는 식물을 들여다보던 중 바닥에 떨어진 잎을 주워 선반에 올려놨더니 끄덕끄덕 움직이더라고요. 작업실에 이 작은 잎을 가져다 놓고 나무로 비슷하게 만들어 본 것이 〈잎〉 시리즈의 시작이었습니다. 며칠 지났더니 떨어진 잎사귀는 결국 둥글게 쪼그라들더군요. 〈잎〉과 〈낙엽〉은 마르는 과정에서 움직일 수 있는 시간까지의 잎을 표현한 시리즈입니다. 모빌의 전형적인 형태와는 다르지만, 제게 모빌의 ‘움직임'은 생명이자 수행이며, ‘움직일 수 있음'은 회복이자 희망이었어요. Q. 일부 모빌의 꽃이 봉오리 형태를 지니게 된 배경이 있을까요?A. 노랫말이나 시에서 꽃은 흔히 생명과 청춘, 완성 등을 은유하는데, 작년에는 꽃 앞에 붙은 ‘피고, 지고, 흔들리고, 시드는' 상태가 다른 의미로 와닿았어요. 제 개인적인 정서도 불안정했고, 사회적 참사에서 비유되는 꽃의 상태를 보며 일부 모빌의 꽃을 봉오리나 만개하지 않은 모양으로 만들게 되었습니다. 그렇지만 시간의 방향성을 제목에 드러나게 하고 싶지는 않아서 ‘꽃'이라는 단순한 제목을 붙여주었어요. 꽃을 키우고 기다리는 마음을 생각하며 피는 중이거나, 피지 못하더라도 오래 기억하겠다고 말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생과 사의 양의성을 닮은 꽃을 잎과 연결해 모빌이 더 많이 움직일 수 있게 완성했어요. 봄이 되어 산책길에 만발한 꽃을 보며 언젠가는 공들여 활짝 핀 꽃을 조각해 모빌로 만들 수 있기를 희망해보기도 합니다. Q. 절망과 애도. 희망과 수행. 식물을 형태로 한 살아가는 일에 관한 이야기예요. 조금 심오한 질문일 수 있지만, 작가님이 일상을 보내면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도 내심 궁금해져요.A. 최근에는 ‘신뢰'를 많이 생각하고 있어요. 타인과의 관계나 사회적인 신뢰뿐만 아니라 저 자신을 신뢰하는가에 관한 고민인데요. 이번 전시를 준비하면서는 이전과 달리 작업 과정에서 자기 확신을 꽤 얻게 된 것 같아요. ‘이거 어때?’하고 창작자 동료들에게 물어보는 일도 거의 없었거든요. 새로운 시리즈를 만들며 실패작이 생기고, 작업 방향이 바뀌어도 많이 불안해하지 않으면서 준비할 수 있었습니다. Q. 그동안 작가님의 작업을 거슬러 올라가다 보니, 초기 작품들의 경우 행잉 모빌 비중이 컸는데 지난 전시부터 스탠딩이나 월 행잉 모빌 형태를 주로 만드시는 이유가 있을지 궁금합니다.A. 두 가지 이유가 있는 것 같아요. 하나는 모빌의 구조를 구상할 때 ‘세운다'에 의미를 크게 두고 있습니다. 모빌 구조물로서의 움직임을 사람이나 삶, 관계에 빗대기도 해서 스탠딩 모빌 형태를 좋아해요. 정립하는 모빌을 다양하게 변주할 수 있어서 아이디어가 더 많이 생기기도 하고요. 스탠딩 형태는 바람이 불거나 공기의 흐름이 있을 때뿐만 아니라 손으로 직접 만지고 보면서 감각을 활성화하기 좋다고 생각해 자주 만들게 되는 것 같아요.다른 하나는 스탠딩 모빌이 쉽게 위치를 옮길 수 있어서예요. 벽에 걸린 모빌도 계절이나 기분에 따라 비교적 쉽게 다른 월 행잉 오브제, 또는 액자와 자리를 바꿀 수 있기도 하고요. Q. 작품을 소장하고 계신 분들, 이번에 새롭게 모빌과 만나게 될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A. 앞서 신뢰에 관한 이야기를 했는데, 작년부터 ‘소호수 모빌 의원'이라는 이름을 짓고 망가진 모빌을 복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하고 있어요. 모빌의 나무 조각은 계절에 따라 온도와 습도의 영향을 받아 조금씩 균형이 달라지기도 하고, 만지거나 자리를 옮기다가 떨어뜨릴 수도 있잖아요. 일상의 사이사이에 아낌없이 모빌을 만지고 보면서 ‘움직임'을 감상해주시면 좋겠습니다. 혹여 떨어뜨려 망가지거나 조각의 균형이 흐트러지면 소호수 모빌 의원에 편하게 맡겨주세요. Q. 앞으로 계획하고 계신 작업이 있다면 소개해주세요.A. 이번 전시에 맞추어 모빌 조명을 만들어보고 싶어 재료를 구하고, 구상하다가 결국 준비하지 못했어요. 새해가 될 때마다 제작 리스트를 적어두는데, 3년째 조명을 써놓았지만 협업이 필요해 완성하지 못하고 있네요. 아직 2023년 봄이니 이곳에 말해놓으면 올해 안에 완성할지도 모르겠어요. 작업 속도가 더뎌지다 보니 언젠가 모빌 조명을 완성하면 반겨주시길 바랍니다. 《영원으로의 걸음 - 김성희 작품전》은 2023년 4월 30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