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풍이 아름다운 늦가을, 토림도예 개인전《일상다감》오픈을 앞두고 작가님과 전시에 관해 서면으로 이야기를 주고받았습니다. "일상에서 편히 마시는 한 잔의 차"를 주제로 한 신작과 그간의 작업 과정까지, 흥미로웠던 대화를 여기 나누어 봅니다. Q. 안녕하세요. 전시로는 처음 인사드립니다. 간단한 소개를 부탁드려요. A. 안녕하세요. 안성에서 다기를 만드는 부부작가 신정현, 김유미 라고 합니다. 좋은 기회로 인사드리게 되어 기쁘네요. 부디 많은 분들이 좋아하셨으면 좋겠습니다. Q. 경기도 안성에서도 조금 깊게 들어간 한운리에 집과 작업실을 두고 생활하고 계시지요. 그곳에서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흘러가나요?A. 하루 일과는 아이와 함께 시작합니다. 눈뜨마자마 시작되는 재잘거림과 함께죠. 아이가 등원하면 그때부터 작업을 시작해서 별 일이 없다면 하원때까지 쭉 이어집니다. 바쁠 때는 저녁 늦게까지 작업이 이어지기도 하구요. 작업실의 시간은 언제나 같아요. 다만 주변의 풍경은 계절에 따라 부지런히 바뀌어가죠. 어느새 반려 동물들은 나이를 들어가고 있고요. 거의 매일이 비슷한 삶인지라 계절이 지난 것을 논으로 알아차려요. 모내기를 하면 봄이구나- 벼가 커지면 여름이구나 - 노랗게 익고 수확을 하기 시작하면 가을이구나 하죠. Q. 동료이자 부부인 두 분이 토림도예에서 각각 어떤 역할을 맡고 계신지 궁금합니다.A. 물레 작업은 신정현 작가, 조각이나 그림 작업은 김유미 작가가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거시적인 흐름은 김유미 작가가 정하고 미시적인 계획들과 방향은 신정현 작가가 정하는 편입니다. 물론 모든 것을 결정할 때에 서로 상의하는 시간을 거치죠. 이제는 함께 토림도예를 꾸린지가 꽤 되어서 서로 합이 잘 맞아요. Q. 한편, 작업실 곁 차실을 통해 방문객 분들께도 차를 내어드리고 계세요. 작업을 하시는 중에도 차실을 여실만큼 차를 좋아하시게 된 계기가 있으실까요?A. 저(신정현)는 어려서부터 차를 마셨어요. 그냥 물처럼 마셔서 다도라던가 차의 맛이라던가 구분하지 않고 그냥 마셨죠. 그래서 도자기를 업으로 삼기로 마음 먹었을 때 그냥 당연하게 다기를 만들어야겠다 라고 생각했었어요. 저(김유미)는 신정현 작가를 만나며 차를 마시기 시작했는데 지금은 훨씬 깊이 빠져버렸어요. 기분에 따라, 계절에 따라 차를 고르는 시간부터 그에 맞는 다기를 고르는 시간이 다 재미있어요. 작업실에 있는 차실은 저희가 차를 마시는 공간 겸 쇼룸입니다. 기물을 실제로 보고 구매하시려는 분들이 방문하시는데, 먼 길을 오시는게 감사해서 뭐라도 해드리고 싶은 마음에 차를 내어드리고 있습니다. 함께 차를 마시면서 대화를 나누면 돌아가실 때 대부분 기분좋게 가셔서 그 모습을 보면 보람차기도 하구요. 저희 둘 모두 차를 마시는 걸 좋아하고 이것을 즐기고 나누는 것도 좋다고 생각해요. Q. 토림도예의 시작부터 차 기물을 만들어 오셨어요. 작업을 하시며 추구하셨던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A. ‘차를 모르는 사람도 편하게 차를 마실 수 있었으면 좋겠다.’ 는 생각이 저희가 처음에 고민했고 추구하는 방향입니다. 요즘엔 다양하고 멋진 찻집들이 많아져서 차를 접하기에 부담없고 좋은 때라고 생각해요. 물론 지금도 차를 접하기 어렵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지만, 저희가 처음 시작했을 때만해도 차를 접할 수 있는 창구도 별로 없었고, 격식을 갖춰야 한다는 이미지 같은 것 때문에 차를 접하기에 큰 벽이 있었죠. 그래서 다가가기 편한 찻자리에 대해 많은 고민을 했던 것 같습니다. Q. ‘일상에서 편히 마시는 차를 위한 다기’는 토림도예의 오랜 지향점이기도 해요. 이번 전시에서는 물처럼 일상에서 편히 마시는 ‘대용차’ 를 위한 크기의 컵들도 만나볼 수 있는데요. 이번 작업이 기존의 작업과 차별화된 지점이 있는지 궁금합니다.A. 이번 전시엔 기존에 작업하지 않았던 양이잔들과 함께 찻자리 뿐 아니라 다양한 일상에서 함께 할 수 있는 잔과 컵 사이 어디쯤 있는 그런 기물들을 작업했습니다. 특히 무언가 애매한 사이즈가 막상 써봤을 때 의외로 손이 많이 가는 경험들이 있었는데, 지금도 작업하고 있는 무용도잔이 그렇습니다. 격식을 차리지 않은 일상에서 숭덩숭덩 차를 마신다거나, 차를 마시지 않을 때 물컵 혹은 술잔으로도 쓸 수 있는 그런 기물이 매력적이라고 생각해요. Q. 기물에 그리신 그림의 모티브에 관해 이야기 해주실 수 있을까요? A. 기물에 그리거나 새겨넣는 모든 모티브는 일상 속에 감동과 기쁨을 준 것들입니다. 평소엔 그냥 지나치던 것들도 어느 순간 아름다워 보일 때가 있거든요. 그러면 그때부터 관찰을 하고 변하는 모습들을 기록하죠. 예를 들면 빽빽하게 박혀 있는 석류 알갱이들이 햇빛에 투명하게 반짝일 때, 빗방울이 보석처럼 매달린 포도송이, 한가롭게 하품하며 늘어져 있는 고양이들이요. 평소에 바쁠 땐 그냥 지나친 모습들인데 눈에 한 번 들어오고나면 멈춰서 보게 되더라구요. 너무 예뻐서요. 이렇게 마음에 들어오고나면 도자기에 그림으로 그려넣기까지는 많은 연습이 필요하지만 기쁘게 하는 작업 중 하나입니다. 기분 좋게 그린 그림들은 완성되었을 때도 흡족한 경우가 대부분이라 언제나 기분 좋은 상태로, 하고싶은 작업을 위주로 작업하는 경우가 많아요. Q. 작업 과정에서 흥미로운 에피소드나 기억에 남는 일화가 있었다면 들려주세요. A. 이번 전시는 꽤 오랜시간 준비한 전시입니다. 크기 선정이나 디자인 등등 규격이 없다보니 크기 선정하는데 많은 시간이 들었어요. 물론 지금도 부족하거나 아쉬운부분들도 있지만 열심히 다듬어 만들었습니다. 특히 여행용 다구 세트인 〈린넨 여행기〉는 방향을 정하는데도 오래 걸렸고 마지막까지 샘플 작업만 몇 차례나 수정에 수정을 더했습니다. 최종 결과가 너무 늦어서 끝까지 긴장하셨을 핸들위드케어에 심심한 사과의 말씀을 올려요. 이번 기물들이 많은 분들의 일상에 녹아들기를 기원해봅니다. Q. 올해 초 도예가 노트이자 에세이인 『차를 담는 시간』 가 발간되었지요. 책 후반부에 실린 ‘정반합’ 이야기가 흥미로웠어요. 토림도예 시작부터 10년간 지켜온 작업의 기준을 뒤바꿔 생각해보는 시도가 인상깊었습니다. 두 분이 그리시는 앞으로의 토림도예는 어떤 모습일까요?A. 작업이라는 것이 생각한 것과 같지 않아 매번 투쟁의 연속인 것 같습니다. 내가 생각한 ‘정’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정의를 내리는 것부터, ‘반’에 대한 작업조차 그것이 정말 ‘반’이 맞는지 고민이죠. ‘합’은 여전히 멀었구요. 다만 내 자리에서 진심과 최선을 다하면 생각과 다를지라도 결국은 좋은 방향을 향해 나아갈거라 생각합니다. 앞으로의 토림도예가 어떤 모습일지 모르겠지만 언제나 최선을 다하는 모습은 변함없을 거예요. Q. 전시를 찾으시는 분들에게 전하고 싶은 메시지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A. 정답이 없는 길에서 때때로 헤맬 때 방향을 잡아주고 정신을 차리게 하는 것은 대부분 저희 도자기를 사용하는 손님들의 이야기들이었어요. 애정이 담긴 이야기들은 항상 새겨듣고 있구요.(칭찬뿐 아니라 비평도요!) 매번 전시를 준비하고 오픈이 가까워 오면 부족한 부분이 더 커보이고 아쉽게 다가옵니다. 이건 저희가 작업을 못하게 되는 그 날까지 계속되겠죠. 토림도예를 시작한 첫 해부터 어수룩한 저희 도자기를 매년 사주신 손님이 계셔요. 그 분이 해주신 말씀이 가슴에 남아있습니다. “저는 작가님의 도자기가 좋아서 사는 것도 있지만 작가님의 인생을 사는거라고 생각해요. 작가님과 작가님의 작품이 발전할수록 저도 좋은 인생과 작품을 사는거죠.” 이 이야기를 들은 뒤론 저희 부부도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하고 작품 역시 어제의 것보다 오늘의 것이 더 좋길 바라며 노력하고 있습니다. 아직 부족하게 느껴지는 부분들이 많지만 서로 많이 이야기 나누며 더 좋은 방향을 찾아가면 좋겠어요. 작가와 손님이 아닌 더 좋은 삶과 더 좋은 작품을 바라는 사람과 사람의 관계길 바랍니다. 토림도예 개인전 《일상다감日常茶感》은 2023년 11월 26일까지 한남동 handle with care에서 진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