흙과 나날
청학도방 송춘호 작품전
올가을 핸들위드케어에서 청학도방 송춘호 작가의 작품전 《흙과 나날》을 엽니다.
운명은 언제 운명이라 자신 있게 부를 수 있을까요. 마주친 순간 알아채는 것인지, 한참을 함께한 뒤에야 확신할 수 있는 것인지 궁금해집니다. 당시에는 무심코 내린 작은 선택 하나가 훗날 삶의 방향을 완전히 바꾸어놓기도 하니까요.
송춘호 작가에게는 고등학교 진학을 앞두고 만난 도예가 그랬습니다. 이후 대학과 대학원에서 도예를 공부하고, 고향인 하동 청학동으로 돌아와 지금까지 흙을 만지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쓰임과 아름다움이 조화를 이루는 그릇을 고민하며, 찻자리에서 제 몫을 다하는 다구를 꾸준히 빚어왔지요.
우연처럼 시작된 일이 수십 년의 나날이 된 지금, 작가는 그 만남을 ‘운명’이었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쩌면 운명이란 처음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느 순간 찾아온 인연을 오래 어루만진 끝에 비로소 붙일 수 있는 이름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올가을 핸들위드케어에서 송춘호 작가의 작품전 《흙과 나날》을 엽니다. 하동의 다양한 카올린으로 빚고, 파초와 호박, 엉겅퀴 같은 식물 문양을 박지 기법으로 새긴 분청 차도구를 한자리에 모았습니다.
송춘호
고향인 하동 청학동에서 청학도방을 운영하며 다양한 카올린을 활용한 분청사기 작업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작업에 있어 공예의 쓰임과 예술로서의 아름다움이 서로 충돌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는 그릇을 만드는 것을 중요한 가치로 삼습니다. 흙을 만지는 시간 속에서 한없는 자유로움과 따뜻함을 느끼며, 그 감각을 작업에 담아내고자 합니다.
Q. 하동과 합천 지역에서 나는 카올린을 활용해 작업하고 계신데요. 산에서 채취한 원토를 여러 차례 수비해 몸흙뿐 아니라 화장토와 유약으로도 사용하신다고요. 각각의 흙이 가진 특징과,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한 과정임에도 직접 채취한 지역의 흙을 사용하는 이유도 궁금합니다.
A. 오랜 시간 흙을 만지고 실험하며 제가 내린 나름의 결론은 “모든 흙은 훌륭하다”라는 것입니다. 다만 내가 태어나고 자란 지역의 흙으로 도자기를 만드는 것은 또 다른 의미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동에는 다양한 카올린이 있습니다. 직접 채취하고 수비하는 과정에 많은 시간과 노력이 들지만, 흙마다 다른 성질을 알아가고 결과를 기다리는 일이 제게는 또 하나의 재미이자 기대입니다.
Q. 이번 전시에서 만나볼 수 있는 작업에 대해 소개해 주세요. 특별히 눈여겨보았으면 하는 작업이 있을까요?
A. 도자기를 성형할 때 물레는 좌우대칭의 원형을 만드는 데 가장 효율적인 도구입니다. 이번에는 그렇게 원형으로 만들어진 기물을 사각 형태로 변형하고, 사방을 각기 다른 문양을 조각했습니다. 어느 방향에서 바라보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문양과 형태가 보이기 때문에, 기물을 돌려가며 보는 재미를 느껴보셨으면 합니다.
Q. 고향인 하동 청학동에 작업실을 두고 계세요. 계곡이 흐르는 산골에 자리하고 있고, 어머님께서 운영하시는 식당 뒤편으로 작업장과 전시 공간이 이어져 있다고 들었습니다. 작가님이 매일 마주하는 청학도방의 풍경과 하루 일과가 궁금해요.
A. 청학동은 해발 800m에 자리한, 하늘과 아주 가까운 마을입니다. 고향에 돌아왔을 때는 한동안 계곡 물소리에 하루를 시작하고 또 하루는 마무리하기도 했지만, 지금은 남편 코골이에 적응한 아내처럼 무덤덤합니다. 나름 유명한 관광지인 도인촌과 삼성궁이 자연과 잘 어울려 있으며, 전통의 생활양식을 아직도 고집하며 지내는 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풍경 속에서 저 역시 매일 흙을 만지며 지내고 있습니다.
Q. 작가님의 작업 중 특히 박지기법으로 새긴 식물 문양이 눈에 띕니다. 파초나 호박, 엉겅퀴 같은 식물 문양은 분청사기의 오랜 전통적인 소재이기도 한데요. 이러한 문양을 작업의 주된 소재로 삼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지금은 분청사기의 일곱 가지 장식 기법의 하나인 박지 기법을 활용해 전통 문양을 바탕으로 작업하고 있습니다. 문양의 소재를 선정할 때는 그 안에 담긴 의미나 상징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결국 제가 보기에 마음에 드는가도 중요합니다. 나름대로 예쁘다고 느끼는 문양을 변형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한때의 우연을 운명이라 부를 수 있게 한 송춘호 작가의 오랜 나날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2026년 9월 18일 - 10월 4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0나길 34, 4층
070-4900-0104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전시 그래픽: 이재민
식물 연출: Botalabo 정희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