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겨진 그림자

박소희 작품전

겨울의 시작을 준비하며, 고미술 상점 고복희와 함께하는 박소희 작품전 《남겨진 그림자》를 시작합니다.

누구에게나 잊히지 않는 순간이 있습니다. 스치듯 짧게 지나가지만, 마음 한편을 환하게 비춰준 작은 기억 하나로 자신을 다시 일으키곤 하는 찰나입니다. 박소희 작가에게는 오랜 고민 끝에 만든 호롱에 첫 불을 붙이던 밤이 바로 그 순간이었습니다.

오는 11월 11일, 박소희 작품전 《남겨진 그림자》를 엽니다. 고미술 상점 고복희(古福囍)의 가구 위에서 피어오르는 호롱의 불빛으로 다가오는 겨울의 시작을 따뜻하게 물들이려 합니다.

온기를 품은 호롱은 다양한 형태와 크기로 전시장을 채웁니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전통 유물의 형태와 색감을 바탕으로 한다는 점입니다. 똬리, 감, 무릎과 같은 연적의 형태를 모티브 한 호롱과 더불어, 새로운 시도를 더한 현대적인 형태의 호롱도 함께 소개합니다.

호롱의 곁에는 그와 가장 잘 어울리는 고가구가 놓입니다. 시간의 흔적과 아름다움이 교차하는 고복희의 서탁과 소반, 등잔대가 어우러져, 호롱의 불빛이 오래된 사물 위에 새겨진 시간의 온기를 비춥니다. 

박소희

전통 등잔을 현대적인 미감으로 풀어내며, 한국의 유물인 향합과 연적의 형태에서 영감받은 호롱을 제작합니다. 따뜻했던 순간의 감정과 기억이 오랜 시간 마음에 머물 수 있기를 바라며, 미적 아름다움을 넘어 내면의 평온과 위로를 전하는 공예를 이어가고 있습니다.

Q. 이번 전시의 제목인 《남겨진 그림자》를 직접 지어주셨어요. 어떤 의미를 담은 제목인지 이야기 나눠 주세요.
A. 《남겨진 그림자》는 빛이 사라진 자리에도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그림자는 언제나 빛과 함께 존재하듯, 그림자가 있다는 것은 여전히 빛이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보통 그림자는 부정적인 표현으로 많이 사용되지만, 빛이 남긴 그림자가 또 다른 모양이 되어 다시금 살아갈 힘을 준다는 의미를 담고 싶었어요. 빛이 사라진 뒤에도 남는 것은 어둠이 아니라, 그 빛이 지나간 자리의 온기가 기억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요.

Q. 매끈한 원형과 정교한 팔각형, 유려한 조롱박을 닮은 모양까지. 호롱의 형태가 무척 다양합니다. 이러한 형태에 대한 영감은 어디에서 비롯되나요?
A. 대부분 호롱은 유물의 형태와 색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지고 있습니다. 그중에서 특히 연적의 선을 좋아해 똬리, 감, 무릎처럼 연적의 형태를 모티브로 한 기물이 많아요. 전통 형태와 색감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이 작업들은 오래된 등잔과 연적, 그리고 수많은 유물에서 비롯된 기억의 조각들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의 흐름을 따라 쌓인 숨결, 오래된 기물에 머무는 빛의 흔적과 같은 것들이 제가 만들고 있는 호롱 속에 자연스럽게 녹아 있어요.

Q. 어느덧 호롱의 불빛이 유난히 잘 어울리는 계절이 찾아왔습니다. 전시를 찾는 분들께 전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부탁드립니다.
A. 저에게 호롱 작업은 한때 막막하고 불안했던 시간 속에서도 스스로를 놓지 않고 이어온 길의 기록이자, 작은 빛이 마음속 깊은 어둠을 비추며 다시 일어설 힘을 주었던 순간들의 흔적입니다. 그 불빛이 제게 그러했듯 이번 전시를 찾아주신 분들에게도 작은 위로가 전해지기를 바라요. 포기하지 않고 나아가는 마음이 쌓여, 어느새 우리 안에 남겨진 희망과 기억이 되어, 다시금 스스로를 일으키는 힘이 되기를. 길을 잃은 순간에도, 빛은 여전히 우리 곁에 머물러 있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작은 호롱의 불빛이 그 기억과 위로를 담아, 여러분의 마음에 조용히 닿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이번 전시에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나의 작은 불빛이 화려하게 빛나기보단 조용히 어둠을 비추어 줄 수 있길 바라며’. 박소희 작가가 호롱 곁에 늘 덧붙이는 문장처럼, 이번 전시 속 호롱의 장면이 따뜻한 위로의 형상이 되기를 바랍니다.

2025년 11월 11일 - 11월 23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녹사평대로 40나길 34, 4층
070-4900-0104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전시 그래픽: 이재민
식물 연출: Botalabo 정희연
가구 연출: 고복희(古福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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