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선가경修繕佳景

수안修安과 7팀의 도예 작가가 함께 마련한  킨츠기 작품전 《수선가경修繕佳景》을 소개합니다.

수안修安은 11년 차 안과 전문의입니다. 살피고 고치고 보듬는 일을 좋아해 의사가 되었고, 같은 이유로 다친 기물을 수선하는 공예 ‘킨츠기’를 배웠습니다. 눈을 대하는 세심함과 정성으로 그릇을 치료하는 일이 무척 재밌다 말합니다. 빼어난 킨츠기 작품을 만드는 것 보다 아픈 곳을 콕 집어 기물을 되살리는 것에 보람을 느끼며, 정밀한 작업을 위해 의료용 헤드램프와 루페(돋보기)를 사용하는 모습은 '그릇 의사'라 부르기에 손색이 없어 보입니다.

처음에는 그저 치료된 기물의 빛나는 자태를 많은 분과 나누고 싶었습니다. 전시를 논의하며 킨츠기 작업을 판매한다면 그 결과물은 다시 치료를 필요한 이를 돕는 일에 사용되었으면 좋겠다고 뜻을 모았습니다. '사람을 고치는 손길로 그릇을 고치고, 그 수고가 다시 누군가의 치료가 된다"는 계획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느껴졌어요. 다음으로는 이 계획에 선뜻 공감하며 치료용 작품들을 내어준 분들이 계십니다. 백경원, 소랑요, 오자크래프트, 천광요, 토림도예, 허상욱, 화개요, 7팀의 도예가입니다. 가마 소성 과정에서, 해임하는 도중에, 보관하거나 쓰면서 파손된, 그러나 차마 버리지 못한 애틋한 기물들이 각각의 사연과 함께 도착했습니다.

지난 일년여간 이렇게 모으고 치료한 작업을 한 점 한 점 모아 만든 장면을《수선가경修繕佳景》이라 이름 붙여 소개합니다. 뜨거운 불 속에서, 때로는 생활의 손길로부터 어긋난 조각을 이어 만든 풍경을 만나보세요. 사물의 진솔한 이력을 살피며 불완전으로부터 아름다움을 발견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길 소망합니다.

《Eye of the Beholder》는 전시의 또 다른 타이틀입니다. "Beauty is in the eye of beholder - 아름다움은 보는 사람의 눈에 달려 있다"라는 관용구를 빌려 왔습니다. 온전함과 불완전함, 아름다움과 흠결, 완성과 미완성에 대한 판단은 보는 이의 관점에 따라 얼마든 반전될 수 있다는 것을 수안修安의 작업을 통해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여러모로 '본다는 것'과 얽혀 있는 전시의 맥락이 이재민님이 디자인한 포스터에 또렷이 담겨 있습니다. 


보타라보 정희연님은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꽃 대신 종종 괴이하거나 독특하다는 시선을 받았을 식물들을 모아 생경한 아름다움을 더해주었습니다. 

서로 다른 결을 지닌 7팀 도예가의 온전히 완성된 작업과 파손 후 수리된 작업을 함께 감상하고, 마음이 가는 쪽을 구입할 수 있다는 점도 이번 전시의 작은 즐거움 중 하나입니다. 각 도예가의 시그니처라 할만한 아이템, 가까이 두고 사용하며 여러 이야기의 매개가 될만한 작품들로 엄선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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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각의 킨츠기 기물은 만든 이의 작업 노트와 파손된 사연, 그리고 처방전이라 할 수 있는 수리 노트와 함께 전시됩니다. 읽고 나면 작품이 달리 보이는 흥미로운 사연이 많아 일독을 권합니다. 앞으로 소장하는 분들의 사연도 덧붙여질 것을 기대합니다.

Q. 안녕하세요. 처음 인사드립니다. ‘킨츠기를 하는 안과 의사’라는 이력이 독특한데요. 간단하게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A. 안녕하세요. 망막 수술과 백내장 수술을 주로 하는 11년 차 안과 전문의가 본업입니다만, 최근에는 그릇을 고치는 ‘그릇 의사’를 겸하고 있습니다. 요즘 제 환자 명단에는 그릇 환자분들도 많이 올라가 있어요. 대부분 도자기 환자고, 유리 환자도 드문드문 있답니다.


Q. 작업명인 “수안修安”에 관해 설명 부탁드립니다.

A. 가장 좋아하는 한자가 “편안할 안安”이에요. 학생 시절에는 새로운 것을 찾고 도전하기 위해 늘 감각을 곤두세웠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오래된 일상이 주는 편안함이 좋다는 걸 깨달았어요. 그래서 지금은 주변 사람들에게도, 환자들에게도 편안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그런 마음은 작업에서도 마찬가지죠. 사물의 본디 모습과 속성을 되찾도록 어긋난 것을 고쳐서 바로 잡는 것(修)이 곧 편안함(安)에 이르는 길이라는 의미로 작업명을 ‘수안修安’이라 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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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수선하는 이의 가치관이나 미감에 따라서도 결과물이 달라질 듯합니다. 특별히 염두에 두시는 기준이나 작업 고유의 특징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A. 킨츠기의 기본 원칙은 ‘원래 기물의 상태에 가장 가깝도록 되돌린다'입니다. 깨지고 이가 나간 면을 본래의 상태대로 잘 맞추어 복구하는 거죠. 보통은 쓰던 기물이 상해서 수리를 하게 되니 이 원칙대로 고치면 됩니다. 


그런데 가마에서 소성하는 도중 터진 기물은 앞선 원칙대로 하기도 어렵고, 고쳤을 때 아름답지 않은 경우가 많아요. 센 불을 받아서 뒤틀리거나 늘어나면서 터지다 보니 면 사이가 어긋나있어서 옻 반죽을 좀 더 채워 넣어야 할 때도 있고, 터진 단면에 유약이 묻어있어 수리가 쉽지 않은 일도 있습니다. 이럴 때는 양쪽 면을 반듯하게 맞추기 위해 옻 반죽을 너무 많이 덧대면 기물 고유의 느낌을 해칠 수 있어요. 너무 많이 개입한 느낌이랄까요. 그래서 개입은 최소한으로 줄이되, 원래 기물이 가진 모양과 기능을 최대한 되살린다는 원칙으로 수리합니다.


Q. 새로운 물건을 접하는 일이 어느 때보다 익숙해진 요즘, 다친 물건을 고쳐서 활기를 불어넣는 일은 더욱 특별하게 다가옵니다. 작가님에게 물건을 수리하는 일은 어떤 의미가 있나요?

A. 세 가지 면에서 제게 수리는 기쁜 일인데요. 첫째는 아끼던 기물이 상해도 고쳐서 다시 쓸 수 있게 되니 그 자체로 기쁘고요. 둘째는 기물이 다칠까 봐 편하게 쓰는 것을 주저하던 마음이 사라져서 좋습니다. 이전에는 좋아하는 기물을 쓰려고 하다가도, 혹시 깨지면 어쩌나 싶은 마음에 실컷 즐겨 쓰지 못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깨져도 고칠 수 있다고 생각하니 언제든 마음 가는 대로 쓰고 있습니다. 불안한 마음이 가신 거죠. 셋째는 지구를 아끼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어 기쁩니다. 상해서 버려질 위기에 있는 그릇의 쓸모를 되찾아주는 작업이니까요.

이번 전시의 킨츠기 작품 판매금은 서울대학교어린이병원후원회에 기부하여 치료가 필요한 어린이를 돕는 일에 사용됩니다. 전시의 취지에 공감하며 소중한 기물을 내어주신 백경원, 소랑요, 오자크래프트, 천광요, 토림도예, 허상욱, 화개요 7팀의 도예가와 그릇 환자들을 정성으로 치료한 수안修安에게 다시 한번 깊은 감사를 전합니다.

2022년 7월 5일 - 7월 24일

Tue - Sun, 12 - 7 PM (Monday Closed)  

서울시 용산구 대사관로 43 1층 Handle with Care

02-797-0151

전시 기획: Handle with Care

킨츠기: 수안修安

참여 작가: 백경원, 소랑요, 오자크래프트, 천광요, 토림도예, 허상욱, 화개요

포스터 & 리플렛 디자인: 이재민
식물 연출: 보타라보 정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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